현장

현장

다른 표기 언어 Hsuantsang , 玄奘
요약 테이블
출생 602, 중국 허난 성[河南省] 옌스 현[偃師縣]
사망 664, 중국
국적 중국

요약 경·율·논의 모든 불교 경전에 정통해 삼장이라고 불린다. 인도에 유학했으며 산스크리트로 된 막대한 양의 불교 경전을 가지고 중국에 돌아와 자국어로 번역했다. 중국에 유식학을 기반으로 한 법상종이라는 종파를 세웠다. 어린 시절 정통적인 유교 교육을 받았으나, 형의 영향으로 불교로 개종했다. 쓰촨 지방에 머물면서 불교 철학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불교 경전들에서 수많은 모순과 상이점을 발견한 이후 인도 유학길에 올랐다. 인도에서 석가모니의 생애와 관련 있는 성지를 순례했으며, 인도 불교교육의 중심지였던 날란다 사원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16년 만에 당의 수도 장안으로 돌아왔을 때 황제의 영접을 받았다. 인도에서 가져온 경전들을 번역하는 데 남은 생애를 보냈고, <대당서역기>를 저술했다.

현장(Hsuantsang)
현장(Hsuantsang)

속성(俗姓)은 진(陳), 이름은 위(褘). 경(經)·율(律)·논(論)의 모든 불교 경전에 정통해 삼장(三藏)이라고 불리기도 하며, 인도에서는 목샤데바(Mok-ṣadeva)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졌다.

인도에 유학했으며, 산스크리트로 된 막대한 양의 불교 경전을 가지고 중국에 돌아와 자국어로 번역했고, 중국에 유식학(唯識學)을 기반으로 한 법상종(法相宗)이라는 종파를 세웠다. 그가 번역한 불교 경전은 그 양이 엄청날 뿐만 아니라 내용도 매우 다양하며, 그가 중앙 아시아와 인도 각지를 여행하면서 남긴 풍부하고 정확한 기록은 역사학자들과 고고학자들에게 소중한 가치를 지닌 것으로 평가된다.

여러 대에 걸쳐 학자들을 배출한 가문에서 태어난 현장은 어렸을 때 정통적인 유교 교육을 받았으나, 형의 영향을 받아 불교 경전에 흥미를 갖게 되었고 곧 불교로 개종하기에 이르렀다.

현장은 그 형을 따라 장안(長安)까지 갔으나, 당시 중국 전체를 뒤흔들던 정치적 혼란을 피하고자 다시 쓰촨[四川] 지방으로 가게 되었다. 그는 쓰촨 지방에 머물면서 불교 철학을 배우기 시작했으나 곧 불교 경전들에서 수많은 모순과 상이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중국의 스승들로부터는 아무런 해결책도 얻지 못하자 현장은 불교의 근원지 인도로 유학하고자 결심했다.

그러나 그는 공식적인 여행 허가를 얻지 못해 629년 비밀리에 쓰촨 지방을 떠나 인도로 향했다. 그는 타클라마칸 사막의 북쪽을 지나 투루판·카라샤르·쿠차·타슈켄트·사마르칸트 등의 오아시스 중심지를 거쳐 철문(鐵門 Iron Gates)을 넘어 박트리아로 들어갔으며, 힌두쿠시 산맥을 가로질러 서북 인도의 카피사·간다라·카슈미르 등지를 통과했다. 카슈미르에서 배에 오른 현장은 갠지스 강을 따라 내려가 마투라를 지나서, 633년에는 갠지스 강 동북유역의 불교 성지에 도착했다.

인도에서 현장은 석가모니의 생애와 관련 있는 성지를 순례했으며, 인도 대륙의 동쪽과 서쪽 해안선을 따라 여행했다. 그러나 현장이 여행의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곳은 당시 인도 불교교육의 중심지였던 날란다 사원이었으며, 이곳에서 그는 산스크리트·불교철학·인도사상 등을 습득했다. 인도에 있는 동안 현장의 학자로서의 명성은 드높아져서 북인도의 강력한 통치자였던 하르샤 대왕마저 그를 만나서 경배하기를 원했다.

643년 귀국 여행을 시작한 현장은 하르샤 대왕의 전폭적인 후원으로 매우 순조롭게 여행할 수 있었다. 현장은 645년 다시 당의 수도 장안에 16년 만에 돌아왔다. 그는 그곳에서 대대적인 환영을 받았으며, 며칠 뒤에는 황제로부터 공식적인 영접을 받았다. 황제는 낯설은 나라들에 대한 현장의 이야기에 매우 큰 매력을 느껴 그에게 대신의 직위까지 수여하고자 했으나, 현장은 승려로서의 길을 택해 황제의 제의를 정중히 거절했다.

현장은 인도에서 520질 657부(部)에 달하는 불교 경전들을 가져왔으며, 그 경전들을 번역하는 데 남은 생애를 바쳤다.

그는 결과적으로 그 엄청난 분량 가운데 매우 적은 부분만을 번역하는 데 그쳤으나, 그가 번역한 76부 1,347권에 이르는 문헌 속에는 매우 중요한 대승불교 경전들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현장은 주로 유가행파의 유식(唯識) 철학에 관심을 두었는데, 그와 그의 제자 규기(窺基:632~682)는 중국의 유식학파 곧 법상종(法相宗)을 형성시키기에 이르렀다. 호법(護法 Dharmapala:530~561)이 찬술하고 현장이 편역한 〈성유식론(成唯識論) Vijñapti matratasiddhisastra〉과 그 주석서로 규기가 저술한 〈성유식론술기 成唯識論述記〉에는 그 교리가 체계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법상종의 중심적인 가르침은 세계 전체가 마음의 표상일 뿐이라는 것이다. 법상종은 현장과 규기가 활약할 당시에는 상당한 명성과 함께 많은 추종자들이 있었으나, 그 두 스승 이후에는 급격히 쇠락했다. 법상종의 난해한 철학, 어려운 전문용어, 머리카락을 쪼개는 것같이 세밀한 마음과 감각의 분석 등은 중국 전통에 매우 낯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쇠락이 일어나기 전인 653년 일본의 승려 도쇼[道昭]가 중국에 들어와 현장 밑에서 배우고, 660년경 배움을 끝내고 일본에 돌아가 유식학파의 가르침을 전했다.

7~8세기에 법상종은 일본의 불교 종파 가운데 가장 영향력 있는 종파로 성장했다. 현장은 번역 작업 외에 〈대당서역기 大唐西域記〉를 저술해 자신이 인도로 여행하던 중에 거쳐간 여러 나라들에 대해서 상세한 기록을 남겼다. 현장이 입적했을 때 의 황제는 그 대담하고 독실했던 구법승을 추모하기 위해 3일 동안 국사를 살피는 것을 중지했다. 현장에 대해서는 서양에서도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는데, 아서 웨일리는 〈실제의 삼장 The Real Tripitaka〉(1952)의 앞부분에서 생동감 넘치고 흥미로운 필체로 그의 생애에 대해 기술하고 있으며, 르네 그루세는 〈부처의 발자취를 따라 Sur les traces du Bouddha〉(1929)에서 당의 역사와 불교 철학을 배경으로 중국의 구법승 현장의 생애를 보다 엄밀하고 체계적으로 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