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르셰미슬가

프르셰미슬가

다른 표기 언어 House of Přemysl

요약 체크 최초의 통치 가문.
Přemyslid dynasty라고도 함.

전설에 따르면 이 가문의 시조는 공주 리부셰와 결혼한 농부 프르셰미슬이라고 한다. 프르셰미슬 왕조 사람들은 800~1306년 보헤미아와 그 주변의 영토를 다스렸다. 이 가문의 우두머리는 보통 공(公) 또는 공작이었으나 1198년 프르셰미슬 오타카르 1세는 보헤미아를 신성 로마 제국 내의 세습 왕국의 지위로 끌어올리고 스스로 왕이 되었다.

프르셰미슬 왕조의 초기에 관한 기록은 매우 적다. 전설에 따르면 이 가문의 보리보이 공은 성 메토디우스(9세기 중반 활동)에 의해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다고 한다. 보헤미아는 10세기에 정치적으로 입지를 굳혔고 이 시기의 보헤미아 통치자들 중 가장 유명한 사람은 보리보이의 손자인 바츨라프였다. 그는 그리스도교 전파를 위해 열성적으로 노력했으나 이때문에 이교도인 동생 볼레슬라프 1세(929~967 재위)에게 살해당했고 죽은 뒤 보헤미아의 존경받는 수호성인이 되었다. 볼레슬라프 2세(967~999 재위)의 치세에 보헤미아의 그리스도교 교회는 체제를 갖추게 되었고 프라하에는 주교구가 세워졌다.

볼레슬라프 2세가 죽은 뒤 왕위를 놓고 그의 아들들 사이에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벌어졌으며 1012년 전쟁이 끝난 후 볼레슬라프 2세의 막내아들 올드리흐가 보헤미아 공이 되었다. 그가 죽고(1037) 난 후에는 아들 브르제티슬라프 1세(1037~55 재위)가 뒤를 이었다. 12세기와 13세기 전반까지 프르셰미슬 왕조 내에는 상속에 관한 법이 제대로 갖추어져 있지 않아 불화와 반목이 끊이지 않았고 이때문에 보헤미아의 정치적 발전이 저해되었다. 연장자가 군주의 지위에 오르는 원칙이 지켜지기도 했으나 큰아들이 그 지위를 세습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이 기간에 혼란에 빠진 보헤미아는 점점 서쪽에 있는 신성 로마 제국에 종속하게 되었다.

브라티슬라프 2세(1061~92 재위)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하인리히 4세로부터 세습은 아니었지만 왕의 칭호를 얻어냈고, 블라디슬라프 2세(1140~73 재위)는 신성 로마 제국 황제 붉은수염왕 프리드리히 1세로부터 역시 세습되는 것은 아니었지만 왕관을 받았다. 1197년 프르셰미슬 오타카르 1세는 프르셰미슬 가문의 지배 영토 내에서 명실상부한 군주가 되었고 1198년에는 자손들에게 물려줄 수 있도록 왕위를 확보했다.

프르셰미슬 오타카르 1세 치하에서 중세 보헤미아는 경제적으로 번영하고 정치적으로도 최고의 명성을 누렸다. 그 뒤를 이은 바츨라프 1세(1230~53 재위)의 아들 프르셰미슬 오타카르 2세(1253~78 재위)는 보헤미아의 가장 위대한 통치자들 가운데 하나였으나 팽창정책의 일환으로 전투를 벌이던 중 1278년 전사했다. 그의 아들 바츨라프 2세는 수완 좋은 외교와 막대한 부로 1300년 폴란드 왕위까지 얻었으나 일찍 죽었다(1305). 그의 외아들인 바츨라프 3세는 보헤미아를 물려받았으나 1306년 폴란드를 여행하던 중 암살당해 보헤미아에서의 프르셰미슬 왕조의 통치는 막을 내렸다. 그뒤 보헤미아의 왕위는 룩셈부르크의 요한(얀)에게 넘어가 룩셈부르크 왕조의 보헤미아 분가가 창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