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한강

다른 표기 언어 漢江

요약 아리수, 한수 등의 이름으로 불리며 남한에서 가장 많은 수량을 갖는 강이다. 유역면적은 2만 6,018㎢로 한반도에서 압록강·두만강 다음으로 넓고, 압록강·두만강·낙동강 다음으로 길다. 한강의 본류는 경기도 양평군의 양수리에서 비슷한 크기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서 이루어진다.
남한강은 태백시의 금대봉 계곡에서 발원해 골지천-오대천을 거쳐 본류를 이루는데 강원도와 경기도의 경계에서 섬강 등의 주요지류와 합류한다. 북한강은 강원도 옥밭봉에서 발원해 금강천·사동천 등과 합류하여 본류를 이룬다. 춘천에서 소양강, 가평 남쪽에서 홍천강 등의 주요지류와 합류한다.
양수리에서 시작되는 한강 본류는 왕숙천·탄천·중랑천·안양천·굴포천 등의 지류를 합치며, 하구에서 임진강과 만나 경기만에 흘러든다.

목차

접기
  1. 유황과 지형
    1. 유황
    2. 지형
  2. 역사적 의의
  3. 수자원과 수질오염
  4. 관광자원

유량을 기준으로 할 경우 남한에서 가장 규모가 크다. 중상류지방은 높은 산지로 되어 있어서 연강수량이 1,200~1,300㎜에 이르는 다우지이기 때문에 유량이 풍부하다. 유역면적은 2만 6,018㎢로 한반도에서 압록강·두만강 다음으로 넓고, 유로연장은 497.25㎢로 압록강·두만강·낙동강 다음으로 길다. 한강의 본류는 경기도 양평군의 양수리에서 비슷한 크기의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서 이루어진다.

남한강(南漢江)은 강원도 태백시의 금대봉 북쪽 계곡에서 발원해 골지천이라는 이름으로 북쪽으로 흐르다가 오대산에서 흘러나오는 오대천을 정선군 북쪽에서 만나 남쪽으로 유로를 틀면서 남한강 본류를 이룬다.

남한강은 영월군에 이르러 평창강을 합류하고 단양을 지난 다음 북서쪽으로 방향을 바꾸어 흘러가는데, 충주시에서 달천, 강원도와 경기도의 도계에서 섬강 등의 주요지류와 합류한다. 북한강(北漢江)은 강원도(북한) 금강군의 옥밭봉[玉田峰 : 1,240m]에서 발원해 금강산의 비로봉 부근에서 발원하는 금강천·사동천(泗東川) 등을 합치면서 북한강 본류를 이루어 남쪽으로 흐르는데, 춘천에서 소양강, 가평 남쪽에서 홍천강 등의 주요지류와 합류한다.

양수리에서 시작되는 한강 본류는 남한강의 유로와 같은 방향, 즉 북서쪽으로 계속 흐르면서 왕숙천·탄천·중랑천·안양천·굴포천 등의 작은 지류를 합치며, 하구에서 다시 임진강과 만난 다음 경기만에 흘러든다. 〈한서 漢書〉 지리지에는 대수(帶水), 광개토왕릉비(廣開土王陵碑)에는 아리수(阿利水), 〈삼국사기〉의 백제건국 설화에는 한수(寒水)로 되어 있으며, '漢'이라는 글자는 중국문화가 도입된 이후에 붙여졌다.

한강은 조선초에 수도를 한성(漢城)으로 옮긴 이래 내륙수로로 중요하게 이용되어 마치 국토의 대동맥과 같은 구실을 해왔다. 시대의 변천과 더불어 한강의 기능도 크게 변화해 오늘날에는 내륙수로로서의 기능은 사라지고 수도권의 수자원(水資源)으로서의 중요성이 매우 커졌고, 관광·휴식 공간으로 이용되고 있다.

유황과 지형

유황

이는 여름철에 연강수량의 60% 이상이 집중되는 한편 집중호우가 빈번하고, 봄철에는 가뭄이 오래 계속되기 때문이다. 집중호우가 내릴 때는 보통 수해가 심하게 발생하고, 가뭄이 계속될 때는 생활용수의 공급마저 어려워진다. 유황이 불안정한 또다른 이유는 유역면적이 좁다는 데 있다. 한강유역은 한국에서는 가장 넓지만 세계적인 대하천들에 비하면 아주 좁다.

한강
한강

홍수는 7~9월에 80~90%가 발생하며, 대체로 1년에 2회, 대홍수는 4년에 1회꼴로 일어난다.

그리고 연간 총유출량의 거의 70%가 홍수로 유출된다. 그러나, 유역면적이 좁아서 홍수의 지속기간이 아주 짧다. 북한강과 남한강에 소양강댐(1973 완공) 및 충주댐(1985 완공)과 같은 대규모의 다목적 댐이 건설된 후 한강의 유황은 과거에 비해 다소 안정된 것으로 보인다. 이들 댐이 보통 규모의 홍수를 조절해 주고 수도권광역상수도취수원으로 축조된 팔당댐(1973 완공)에서 하천유지용수로 일정한 양의 물을 방류하면서 한강의 유황에 큰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더구나 1988년에는 서울 올림픽 대회를 계기로 유람선을 띄우기 위해 김포에 수중보(水中洑)를 설치해, 수위를 높여줌에 따라 갈수기에도 한강의 수위는 일정한 수준을 유지할 수 있게 되었다. 20세기에 들어 1925, 1972, 1984, 1990년에 발생한 홍수로 큰 수해를 입었다.

이 가운데 을축년홍수(乙丑年洪水)로 기억되고 있는 1925년의 홍수는 수위가 가장 높았고 한강 남안의 도진취락이었던 송파는 이때 완전히 물에 쓸려나갔다. 그리고 1990년의 홍수는 일산지방의 제방을 무너뜨려 사회적으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소양강댐·충주댐 등도 집중호우의 강도가 매우 강할 때는 홍수조절능력에 한계를 드러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태계 파괴를 방지하기 위해 대규모의 댐보다는 중소규모의 댐을 건설해가는 추세이다. 한강의 홍수는 하구에서의 만조와 첨두홍수가 겹칠 때 심해진다.

경기만은 조차가 세계적이므로 한강은 조석(潮汐)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김포의 수중보가 건설되기 전에 행주대교에서의 조차는 약 1.5m에 이르렀다. 만조 때는 강물이 마포 부근까지 역류했으며, 과거에는 역류하는 물이 선박 통행에 직접 이용되었다. 수중보의 건설로 조차는 크게 줄어들었지만 강물의 흐름을 가로막기도 한다.

만조 때는 역류하는 물로 수중보가 수면 밑으로 완전히 잠기지만 간조 때는 하류 쪽에서 보면 수면 위로 드러난다. 수중보는 강물의 흐름을 가로막으며 1990년의 일산둑 붕괴도 수중보와 관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형

이곳은 여름철에 서울시민의 휴식공간으로 애용되었으나, 1960년대 후반부터 골재채취가 활발히 진행되어 포인트 바는 모두 사라져서 강폭이 매우 넓어지는 한편 강바닥도 깊게 파였다. 한강은 하상의 구배가 큰 하천이기 때문에 행주대교 부근에서 팔당댐 쪽으로 갈수록 골재가 많이 채취되었으며, 이로 인해 미사리 부근에서는 평수시의 수면이 2m 이상 낮아지게 되었다. 골재채취는 팔당댐 하류에서는 거의 완료되고 지금은 여주 일대의 남한강에서도 활발히 진행되어 하천의 원형이 심하게 파괴되고 있다.

뚝섬 한강시민공원
뚝섬 한강시민공원

남한강과 북한강의 중상류에는 감입곡류하도(嵌入曲流河道)가 널리 나타난다.

감입곡류하도는 한반도가 저평했을 때의 자유곡류하도를 계승한 것이라는 의견과 한반도가 융기한 이후 하곡이 패이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라는 의견이 있다. 감입곡류하도는 목 부분의 절단으로 유로가 반듯하게 펴지기도 하는데, 단종(端宗)이 유배되었던 영월의 청령포에서 전형적인 예를 볼 수 있으며, 이곳에서는 구하도(舊河道)가 논으로 이용된다. 자유곡류하도(自由曲流河道)는 한강 하류로 유입하는 왕숙천·중랑천·탄천·안양천 등의 작은 지류에 형성되어 있었으나 직강공사에 의해 모두 유로가 반듯하게 펴졌다.

하천은 행정경계로 널리 채택된다. 서울특별시와 광명시 사이의 시계(市界)는 직강공사 이전의 안양천을 따라 정해진 것이어서 이들 시의 땅이 지금의 안양천 양쪽에 조금씩 붙어 있게 되어 주민의 생활에 불편을 주기도 한다.

한강 중상류의 산간지방에는 곳곳에 비교적 넓은 침식 분지가 발달되어 있다. 남한강 유역의 제천·충주·원주 분지와 북한강 유역의 춘천분지가 대표적이다. 이들 분지는 모두 중생대에 관입한 대보화강암의 차별침식으로 형성된 것이며, 분지를 둘러싸고 있는 산지는 대부분 경기변성암복합체의 변성암류로 이루어졌다.

남한강 연안의 여주·이천 지방에는 저위평탄면(低位平坦面)이라고 불리는 소기복의 구릉성 침식지형이 광범하게 펼쳐져 있다. 이러한 지형도 화강암과 관련된 것이다. 한편 한강 하류에는 김포평야(金浦平野)·일산평야(一山平野) 등의 넓은 평야가 발달되어 있다. 이들 평야는 근본적으로 후빙기 해면상승(海面上昇) 이후 한강의 범람원으로서 형성되었다. 빙기의 침식곡(侵蝕谷)에 지금의 해면을 기준으로 한강의 토사가 쌓임으로써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이들 평야는 해발고도가 10m 이하로서 매우 낮아 수해를 빈번히 입는데, 한강 연안을 따라서는 지면이 다소 높은 자연제방(自然堤防)이 발달되어 있다.

범람원의 주변에는 소기복의 구릉지가 분포한다. 이러한 곳은 지형적으로 들, 즉 평야에 속하지 않고 주민들에 의해 '야산'(野山)이라고 불린다. 범람원은 한강의 중상류에도 나타나지만 상류로 갈수록 일반적으로 점점 좁아진다. 하안단구(河岸段丘)는 한강 중상류지방에 여러 단씩 발달되어 있으며, 지면이 아주 좁다. 여주·하남 등 중·하류지방에도 하안단구가 나타나는데 이는 1단으로 넓게 형성되어 있는 것이 특색이며, 최후간빙기(最後間氷基)에 형성된 충적단구(沖積段丘)로서 이의 점토질 퇴적층은 벽돌제조의 원토로 채굴·이용된다.

한강
한강

역사적 의의

한강은 한반도의 중부지방을 관류하기 때문에 고대에는 삼국간의 분쟁대상이 되기도 했다.

뚝섬 한강시민공원
뚝섬 한강시민공원

한성이 수도로 정해진 조선시대에 들어오면서 내륙수로로서 경제적 기능을 크게 발휘하게 되었으며, 선박의 가항구간(可航區間)은 남한강은 영월, 북한강은 춘천까지였다. 하구에서 마포(麻浦)까지는 조석의 영향이 크게 나타나는 한편 수심이 깊어서 선박의 항행이 순조로웠으나, 가항구간 내에서도 상류 쪽은 수심이 얕은 여울이 많아 여울을 거슬러 올라갈 때는 인력으로 선박을 끌어올렸다. 그리고 용산을 기점으로 한 소항일수(溯航日數)는 계절에 따라 일정하지 않았으나 대체로 충주까지는 7일, 영월까지는 15일 정도 걸렸다.

하항일수(下航日數)는 영월에서 서울까지 평상시에 6~8일, 여름철의 증수기에 2일 정도 걸렸으며, 선박의 항행은 물이 불어나는 여름철에 많았다. 한강을 오르내리던 선박은 모두 바닥이 평평한 작은 범선(帆船)이었다. 오늘날 토사의 퇴적으로 수심이 얕아져서 선박의 항행이 불가능해졌다는 의견이 있지만 근거가 없다.

한강은 일반 산물의 수송에도 중요하게 이용되었지만 세곡(稅穀)의 수송로, 즉 조운로(漕運路)로서의 기능이 매우 컸다.

남한강 유역의 강원도·충청도·경기도의 세곡은 용산의 강창(江倉)으로 모였고, 경기도 남쪽의 충청도와 전라도의 세곡은 바다로 돌아 김포와 강화도 사이의 염하(鹽河)를 거쳐 서강(西江)의 강창으로 모였다. 경상도의 세곡은 소백산맥의 새재[鳥嶺]를 넘어 충주까지는 육로로, 충주에서 용산의 강창까지는 한강을 통해 수송되었다. 상류지방에서는 서울사람들에게 필요한 각종 식량·땔나무·목재 등이 내려가고, 하류지방에서는 소금·새우젓·어물·잡화·옹기 등이 상류지방으로 올라갔다.

마포는 서해의 수산물이 들어오는 하항(下港)으로, 뚝섬은 상류지방에서 내려오는 목재와 땔나무의 양륙지로 중요했다. 마포는 6·25전쟁 전까지 기선이 들어왔으나, 휴전 후 하구 일대의 수로가 군사분계선이 되어 선박의 통행이 불가능해졌다. 그리하여 경인운하(京仁運河)의 건설이 근래에 추진되고 있는 중이다.

이것은 인천에서 굴포천을 거쳐 김포 부근의 한강으로 통하도록 하는 운하로서, 험난한 조운로였던 김포와 강화도 사이의 염하를 피하기 위해 조선시대에도 김포굴포운하공사가 시도되기도 했다. 한강은 서울지방으로 통하는 중요한 수로였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이를 수호할 필요가 있었다. 영춘의 온달산성(溫達山城)과 양평의 파파산성(婆婆山城) 등은 남한강을, 인제의 한계산성(寒溪山城)과 춘천의 봉의산성(鳳儀山城) 등은 북한강을 지키는 성곽으로 축조되었다. 그리고 김포의 문수산성(文殊山城)은 서해에서 서울로 침투하는 외적을 막기 위해 축조한 성으로서, 1866년(고종 3) 병인양요(丙寅洋搖) 때 프랑스 해군을 물리친 격전지로 유명하다.

한강은 세곡이나 지방의 산물을 수송하는 수로로 중요했지만 건너야 할 때는 불편한 존재였다.

한양에서 남쪽 지방으로 가는 주요길목에는 진(津)이나 도(渡)를 설치해 강을 건널 수 있게 했으며, 국왕이 한강을 건널 때는 선박을 엮어 만든 주교(舟橋)를 가설하기도 했다. 진이나 도에는 지방의 산물이 모여 자연히 상업이 활기를 띠게 되었으며 서강·마포·동작·서빙고·뚝섬·송파 등지는 이른바 경강상인(京江商人)의 활동무대였다. 한강 남안의 송파(松波)는 광주·이천 방면으로 통하는 길목이어서 각종 산물을 집산하는 도진취락(渡津聚落)으로 번영을 누렸다.

한강에 최초로 건설된 다리는 한강철교이다. 경인선의 부설을 위한 이 철교는 1900년에 완공되었고, 지금의 한강대교인 인도교(人道橋)가 건설된 것은 1936년의 일이었다. 서울의 급속한 성장과 더불어 시역(市域)이 넓혀짐에 따라 한강은 오늘날 시역의 중앙부를 동서방향으로 관류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서울은 한강을 기준으로 강북지역과 강남지역으로 크게 나뉘게 되었다.

1970년대 이후 강남지역의 개발을 계기로 강북과 강남을 잇는 교량의 건설이 활발히 추진되어 2000년 현재 한강의 다리는 23개에 이른다.

수자원과 수질오염

수도권의 인구가 증가하고 도시와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한강은 생활용수·관개용수·공업용수 등의 수자원으로서의 중요성이 매우 커졌다.

한강
한강

한강물의 근대적인 이용은 서울에서 상수도(上水道)의 건설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상수도를 위한 최초의 정수장은 뚝섬정수장으로서 1908년에 인구 12만 5,000명을 대상으로 1일 공급시설용량 1만 2,500t의 규모로 가동되기 시작했다. 서울의 인구증가와 더불어 정수장은 그후 계속 증설되어 2000년말 현재 팔당·암사·구의·뚝섬·보광동·노량진·선유·영등포·김포 등 9개 정수장에 1일 공급시설용량이 675만t에 이르게 되었다.

팔당댐에서는 초당 124t의 물을 방류해 이들 정수장의 가동을 원활하게 하는 한편 하천오염의 방지에도 기여하고 있다.

한강은 관개용수의 수원으로도 일찍부터 중요하게 이용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한강물이 관개에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1925년에 김포시 고촌면에 신곡리양수장(新谷里揚水場)이 건설되면서부터였다. 오늘날에는 양수관개가 보편화되었지만 이러한 관개방법이 도입되기 전에는 강물을 농경지로 직접 끌어올려 쓸 수 없었다.

김포평야나 일산평야는 구릉지로 둘러싸여 지형적인 조건이 큰 저수지를 축조하기에 적합하지 않아서 평야의 개발에 처음부터 양수관개방법이 도입되었다. 1973년 시설이 대폭 증설되었으며, 지금의 신곡관리소 양배수장에서 양수되는 한강물은 구릉지를 넘어 인천지방으로도 보내진다. 일산평야는 행주양수장으로부터 관개용수를 공급받는데, 이 양수장은 1945년에 건설되어 평야의 개발이 늦어졌다.

한강수계는 유량이 풍부하고 댐을 건설하기에 유리한 협곡이 많아 포장수력(包藏水力)이 약 180만kW 에 이르며, 총 158만 4,000kW 의 발전시설이 건설되어 있다.

청평수력발전소는 1943년에 건설된 한강수계 최초의 발전소이고, 이어서 화천수력발전소가 건설되었다. 과거에 이들 발전소는 한국의 전력공급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다. 달천 중류의 소수력발전소인 괴산수력발전소도 1957년에 건설되어 오래된 것에 속한다. 현재 한강수계에는 화천(10만 8,000㎾)·춘천(5만 7,600KW)·의암(4만 5,000KW)·팔당(8만KW)·괴산(2,600KW)·소양강(20만KW)·충주(41만 2,000KW) 등의 수력발전소와 청평양수발전소(60만㎾)가 있다.

충주·팔당·괴산을 제외한 68.8%의 발전시설이 북한강수계에 건설된 것은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 가까이에 지형적으로 댐의 건설에 유리한 지점이 많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강수계에는 한국 수력발전시설의 71.3%가 집중되어 있다.

강수량에 근거를 둔 한강수계의 수자원총량은 322억 8,000만t으로 증발과 지하로의 침투에 의한 손실량을 뺀 순유출량은 209억 1,000만t이고, 그 가운데 67.3%에 해당하는 140억 7,000만t이 홍수로 유출된다. 수자원의 수요량은 79억 4,100만t(생활용수 21억 3,000만t, 공업용수 4억 9,700만t, 농업용수 13억 900만t, 하천유지용수 40억 500만t)으로 수자원총량의 24.7%이고, 여러 댐에 의한 총저수용량은 72억 6,000만t, 유효저수용량은 45억 3,000만t에 이른다.

대규모의 다목적 댐으로 건설된 소양강댐과 충주댐은 저수량이 각각 29억t 및 27억 5,000만t, 연간용수공급량이 각각 12억 1,300만t 및 33억 8,000만t, 홍수조절량이 각각 5억t 및 6억t이다. 이들 댐이 건설된 후에도 대홍수가 발생하는 까닭은 홍수조절능력이 유역총강수량의 약 25%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강은 수질오염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강의 수질오염
한강의 수질오염

한강의 오염은 1960년대 이후 서울의 시가지와 주택지구가 급격히 팽창하고 공장과 공업단지가 곳곳에 건설됨에 따라 가속화되어왔다. 생활하수와 공장폐수는 수질오염의 주범이며, 왕숙천·탄천·중랑천·안양천·굴포천 등의 지류는 자정능력을 상실한 지 오래되어 악취가 풍기는 오수가 흐른다. 서울에는 배수구역별로 중랑천·난지·탄천·안양천 등의 하수처리장이 가동되어 한강의 수질이 점차 개선되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구리시를 관류하는 왕숙천, 부천시를 관류하는 굴포천과 그밖의 작은 하천들은 하수처리장을 갖추지 못해 한강을 계속 더럽히고 있다.

과거에 80여 종이나 되던 담수어가 30여 종으로 줄어들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홍수는 수해를 일으키기도 하지만 각종 오염물질을 씻어내어 하천을 깨끗하게 만들어주는데, 여름에 비가 적게 내리거나 가뭄이 계속될 때는 오염이 극심해진다. 소양강댐과 충주댐이 매년 일어나던 보통 규모의 홍수를 막아주기 때문에 오염물질의 자연적인 제거가 순조롭지 않을 수도 있다. 김포의 수중보도 수질오염을 가중시키고 있다.

김포평야와 일산평야에서 생산되는 쌀은 품질이 매우 우수했으나 지금은 오염이 심한 물로 농사를 짓기 때문에 그 명성을 잃어가고 있다. 팔당호도 수질이 나빠졌다. 팔당호를 광범하게 둘러싸고 있는 가평·양평·여주·이천·광주·용인 지구는 팔당호의 수질을 보호하기 위해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자연보전권역으로 설정되어 공해업체 입주를 금하고 있다. 그러나 별장·음식점·숙박업소 등이 불법적으로 호반에 들어서고 낚시꾼들이 많이 모여들어 물을 더럽히고 있다.

그밖의 호수들도 수질이 떨어지고 있으며, 담수어의 가두리양식이 주요오염원으로 지적된다. 남한강보다는 북한강의 물이 깨끗한데, 그것은 북한강 유역이 남한강 유역보다 인구밀도가 낮고 산업시설이 적게 들어섰기 때문이다.

관광자원

한강 유역은 역사적으로 한반도의 중추지역으로 발전해왔기 때문에 각종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뚝섬 한강시민공원
뚝섬 한강시민공원

남한강 유역에는 오대산·월악산·속리산 등의 국립공원이 있고, 하천변의 경승지로는 영월의 청령포, 단양의 도담삼봉(嶋潭三峰), 충주의 탄금대(彈琴臺), 여주의 신륵사(神勒寺) 등과 달천 상류에 있는 괴산의 화양동(華陽洞)이 유명하다. 청령포 가까이에는 단종의 능인 장릉(莊陵)이 있고, 도담삼봉은 남한강의 물 위로 솟아오른 3개의 큰 바위섬이다. 탄금대는 하안단구로 이루어진 남한강변의 언덕으로 가야국의 악성이었던 우륵(于勒)이 가야금을 뜯고 임진왜란 때 신립(申砬)이 새재를 넘어오는 왜적을 배수진을 쳐서 막으려고 했던 곳이며, 신륵사는 남한강변의 고찰로 보물이 많고 가까이에 세종(世宗)의 능인 영릉(英陵)이 있다.

화양동은 화강암의 기암괴석이 골짜기를 따라 즐비하며 물이 맑고 깨끗하여 조선시대의 송시열(宋時烈)이 이름을 붙인 경승지이다. 석회동굴로 남한강 연안에 있는 영월의 고씨굴과 단양의 고수굴도 전국적인 관광지이며 연중 관광객들로 붐빈다. 충주댐의 건설로 형성된 충주호도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아 충주-단양 간에 유람선이 운항된다.

구(舊)단양의 수몰로 인해 신도시로 건설된 신(新)단양은 충주호·단양8경·고수굴 등을 배경으로 관광기능이 점차 증대되고 있는 중이다. 남한강변의 큰 하항이었던 청풍(淸風)이 수몰되어 누각·문루·석불 등 이곳의 문화재들을 충주호반으로 옮겨 조성한 물태리의 청풍문화재단지도 명소 중의 하나이다. 월악산국립공원에 속한 송계계곡(松界溪谷)은 새재보다 앞서서 통일신라시대에 문경지방에서 소백산맥을 넘어 충주와 청풍 사이의 남한강으로 빠지는 주요교통로로 이용되었다.

송계계곡은 미륵사지와 더불어 각종 불교유적이 많으며, 근래에 관광도로가 개통되어 수안보온천과 연계되는 관광지로 부각되고 있다.

북한강 유역에는 설악산국립공원이 있고 하천과 관련된 경승지로는 파로호·춘천호·소양호·의암호·청평호 등의 인공호가 단연 빼어나다. 의암댐의 건설로 호반의 도시가 된 춘천은 서울에 가까운데다가 경춘선과 경춘가도를 통한 교통이 매우 편리해 전국적인 관광도시로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소양호는 춘천에서 인제까지 여객선이 운항되어 관광객들이 이용하며, 화천댐의 파로호는 낚시터가 많고, 청평호는 일찍부터 유원지로 개발되었다. 청평댐의 건설로 완전히 섬으로 고립되어버린 남이섬은 세종 때의 장군인 남이(南怡)의 묘소가 있는 명소로 별장·방갈로·골프장·수영장 등의 위락시설들이 정비되어 있다. 가평을 통해 접근하는 곳이지만 행정적으로는 춘천시에 속해 있다.

북한강의 좁은 골짜기를 따라 달리는 경춘가도는 산과 강이 어우러진 주변의 경관이 수려해 주말에는 서울시민의 차량행렬이 이어지며, 가평과 청평도 관광도시로 발전하고 있다. 팔당호의 주변에는 양평의 용문산·용문사·상원사, 남양주의 운길산·수종사·정다산묘 등이 있어서 서울 근교의 1일관광권으로 인기가 높다.

팔당댐 하류의 한강 본류에서는 임진왜란 때 권율(權慄)이 왜적을 물리친 행주산성(幸州山城)이 사적지 겸 관광지로 유명하다.

한강 범람원 위로 우뚝 솟은 덕양산(德陽山)의 행주산성에서는 한강과 일산평야·김포평야가 시야에 시원하게 들어온다. 한강 연안은 선사시대부터 한민족의 주요 생활무대였다. 암사동과 하남시 미사동의 선사유적지는 사적으로 지정되었고 올림픽 공원 내의 몽촌토성은 백제의 하남위례성(下南慰禮城)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한강은 골재채취와 관련된 집중적인 개발로 뚝섬유원지와 같은 자연적 관광자원은 모두 사라지고 그 대신 인공적 관광자원이 들어서게 되었다.

대표적인 것은 한강고수부지 시민공원과 행주대교-올림픽 경기장 사이에 정기적으로 운항되는 유람선이다. 한강변의 일산둑을 넓혀 만든 서울-문산 간의 자유로(自由路)가 완공되어 새로운 관광도로로 각광을 받고 있다.

한강시민공원
한강시민공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