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철교

한강철교

다른 표기 언어 漢江鐵橋

요약 3개의 교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길이는 A선(중앙에 위치한 교량) 1,110.25m, B선(상류에 위치한 교량) 1,110.25m, C선(하류에 위치한 교량) 1,112.8m이다. 한강철교 A선은 한강에 가설된 최초의 교량으로 1896년 미국인 모스가 조선 정부로부터 경인철도부설권을 얻어 1897년 착공했다. 그러나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되자 일본이 경인철도부설권을 인수하고 공사를 재개해 1900년에 준공했다. 이후 1913년 한강철교 B선이, 1944년에 C선이 완공되었다. 이들 교량은 6·25전쟁으로 모두 폭파되었으나 1950년부터 1951년까지 A선의 가복구공사를, 1952년 B선의 가복구공사를 실시해 임시로 사용하다가 1957년에 C선을 완전 복구했고, 1969년 6월에 A, B선의 개량공사를 실시함에 따라 3선이 모두 완전 복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3개의 교량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총길이는 A선(중앙에 위치한 교량) 1,110.25m, B선(상류에 위치한 교량) 1,110.25m, C선(하류에 위치한 교량) 1,112.8m이다. 한강철교 A선은 한강에 가설된 최초의 교량으로 1896년 3월에 미국인 제임스 R. 모스가 조선정부로부터 경인철도부설권을 얻어냄으로써 그 가설계획이 추진되어 1897년 3월에 착공되었다. 그러나 모스사의 자금난으로 인한 공사 중단에 따라 일본이 경인철도부설권을 인수하고 공사를 재개하여 1900년 7월에 준공했다.

교량의 구조형식은 강재 트러스교로 하여 상부구조는 길이 61m의 단선 플랫트형으로 10연(連)을 설치하고, 형폭(桁幅)은 평균거리 5.1m, 높이 11.3m로 했으며, 양 교대(橋臺) 사이의 총길이는 628.9m로 했다. 하부구조는 2기의 교대 및 9기의 교각(橋脚)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쪽 교대는 암반 위에 화강암을 쌓고 북쪽 교대는 자갈층 위에 콘크리트를 쌓아 시공했다.

남쪽으로부터 4기는 장축 9m, 단축 4.8m의 타원형 정통(井筒)을, 북쪽으로부터 4기는 철제함(鐵製函)을, 나머지 1기는 시판공(矢板工)을 자갈층에 내려 박아 기초 콘크리트를 했다. 이 교량은 당초 사람의 통행을 위해 철도 한쪽 또는 양쪽에 폭 1.2m의 인도를 가설하기로 했으나 일본측이 공사비를 절감하기 위해 이 조건을 폐지시켰다. 이 공사는 국내 최초의 근대식 토목공사로 노동력을 용산 일대에 집중시킴으로써 부근의 도시화에 일익을 담당했다.

한강철교 A선의 준공으로 경인선이 개통된 이후 운행밀도의 심화와 1905년 경부선철도의 부설로 수송량이 증대되어 기존교량의 개축(改築)과 함께 교량의 복선화가 요구되었다. 이에 따라 1911년 7월부터 기존교량의 상류 쪽에 한강철교 B선 가설공사를 착수하여 1912년 9월에 준공했고, 기존 교량의 강형(鋼桁) 철거와 일부 교각의 신규 강형공사를 1913년 5월에 실시했다. 1927년 7월 대홍수로 인해 본교 및 피일교간(避溢橋間)의 제방이 유실됨에 따라 기존의 제방을 개축하여 교각으로 바꾸었으며, 교량의 구형(構桁)을 3척(9.9m)이나 상승시켰다.

한강철교 C선은 1931년 만주사변 이후 경부선의 수송량이 급증함에 따라 가설된 교량으로, 자재난 등으로 인해 1944년에 완공되었다.

이 교량은 A선의 하류쪽으로 약 50m 떨어진 곳에 가설된 복선철교로 교량의 구조형식은 강재 트러스교이다. 기존 교량과의 조화를 고려하여 중앙 경간 교각의 형고(桁高)를 높게 한 곡현형(曲弦型)으로 역 아치형의 3경간 연속복사구형(連續複斜構桁)을 취했으며 중앙 경간을 길게 하고 양쪽 끝 경간을 짧게 했다.

교량의 하부구조는 잠항공법(潛函工法)과 정통법(井筒法)으로 시공했다. 이들 교량은 6·25전쟁으로 3선이 모두 폭파되었으나 1950년 10월부터 1951년 6월까지 A선의 가복구공사를, 1952년 2월부터 6월까지 B선의 가복구공사를 실시해 임시로 사용하다가 1957년 7월에 C선을 완전 복구했고, 1969년 6월에 A, B선의 개량공사를 실시함에 따라 3선이 모두 완전 복구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한강철교 복구기념식
한강철교 복구기념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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