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리네시아

폴리네시아

다른 표기 언어 Polynesia
요약 테이블
위치 태평양 중동부
국가 아메리칸사모아, 사모아, 쿡 제도, 타히티, 소시에테·마르키즈·투부아이 제도, 투아모투 군도, 니우에, 토켈라우 제도, 투발루, 통가·윌리스푸투나·하와이 제도, 핏케언 섬 등

요약 태평양 중동부의 넓은 3각형 지대에 흩어져 있다. 3각형의 정점에 하와이 제도가 있고, 아래에 뉴질랜드와 이스터 섬이 있다.
유럽인과 접촉하기 전에는 주로 사모아와 뉴질랜드의 해안가에 작은 마을을 이루고 생활했다. 타히티·하와이 등의 사회에서는 모계에 따른 친족이 형성되기도 했다. 전통문화에서는 종교와 주술은 중요한 역할을 한다. 1700년대 말 유럽 문화에 접촉하게 되면서 생활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
프랑스의 고갱은 말년에 타히티 섬과 마르키즈 제도에서 살면서 폴리네시아의 사람들과 문화를 그렸다.
1962년 사모아가 독립했고, 1929년 아메리칸사모아가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1959년 하와이는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었고, 1947년 뉴질랜드가 영국 연방 내의 독립국이 되었다.

타히티(Tahiti)
타히티(Tahiti)

태평양 중동부의 넓은 3각형 지대에 흩어져 있다. 3각형의 정점에는 하와이 제도가 있고, 나머지 기저부에는 뉴질랜드와 이스터 섬이 각각 있다. 폴리네시아(그리스어로 '많은'이라는 뜻의 poly와 '섬들'이라는 뜻의 nē soi에서 유래)에는 사모아 제도(아메리칸사모아, 사모아), 쿡 제도, 프랑스령 폴리네시아(타히티, 소시에테·마르키즈·투부아이 제도, 투아모투 군도), 니우에, 토켈라우 제도, 투발루(이전의 엘리스 제도), 통가·윌리스푸투나·하와이 제도, 핏케언 섬 등이 속해 있다.

뉴질랜드의 원주민인 마오리인도 폴리네시아인에 속한다. 피지는 폴리네시아인이 어느 정도 거주하고 있어 종종 폴리네시아에 포함되기도 한다.

고고학적 증거와 언어적 유사성으로 볼 때, 폴리네시아 중부는 3,000~4,000년 전에 멜라네시아에서 건너온 이주민들이 정착했다고 여겨진다. 그후의 2차 이주는 중부의 섬들보다는 외곽의 외딴 섬 지대에서 행해졌다. 300년경 사모아인들이 이미 마르키즈 제도에 정착한 것으로 추정되며, 400년경에는 마르키즈 제도에서 이스터 섬으로의 이주가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마르키즈 제도에서 온 여행자들이 하와이에 정착한 것으로 보이며, 몇 백 년 후에는 소시에테 제도에서도 탐험자들이 건너왔다. 소시에테 제도에서 살았던 폴리네시아인들은 그뒤 쿡 제도에 정착한 것으로 여겨진다. 마르키즈 제도나 소시에테 제도의 주민은 100년 전에 뉴질랜드로 건너가 정착했다. 태평양의 넓은 지역에 퍼져 있는 폴리네시아어 계통의 언어로 보아 폴리네시아 문화가 비교적 최근에 전파되었음을 알 수 있다(폴리네시아 지리적 인종).

유럽인과 접촉하기 이전의 정착촌 형태는 작은 마을(hamlet)과 마을(village)의 2가지 유형으로 나뉜다. 큰 화산섬에는 식량이 여러 환경에서 산출되고 종류가 다양하여 작은 마을을 이루고 생활했다. 집들은 4, 5채가 한 무리를 이루고, 근처에는 정원과 타로토란 밭이 있고, 코코스야자와 빵나무를 심었다.

마을은 30채 이상의 집이 한데 모여 형성되었으며, 주로 사모아와 뉴질랜드의 해안가에 건설되었다. 이곳에서는 때때로 돌이나 나무로 담을 쌓기도 했다. 가장 정교하고 독특한 마을이 뉴질랜드의 마오리인들에 의해 건설되었다.

모든 마을이 친족이나 가족을 기초로 조직되었다. 일반적인 폴리네시아 친족형태는 부계제를 기초로 하여 형성되었다. 그러나 흔히 양자를 들이기도 했으며, 사회관습도 유동적이었다. 타히티·하와이 등의 사회에서는 부계보다는 모계에 따른 친족이 형성되기도 했다.

폴리네시아 사회에서 혈연관계에 기초한 가계 계승의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맏아들에서 맏아들로 혈통이 계승되는 것이다(라미지). 독립된 지방이나 섬에서는 그 지역을 처음 차지하거나 정복한 가문의 장손들이 족장이 되었다.

고대 폴리네시아 사회에서 족장은 사회적 신분이 높고 종교적인 힘을 가진 존재로서 여러 사람들 중 제1인자로 간주되었다. 하와이·타히티·통가 등의 몇몇 섬에서는 족장의 가문이 일반 주민과는 구별되는 하나의 계급이 되었고, 그들의 지위는 세습되었다.

혈통이나 신분이 족장과 같지 않은 사람들이 족장에게 접근하는 것을 막고 족장 권위의 근간이 되는 종교의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 엄격한 금기사항들이 만들어졌는데 이를 위반할 경우 사형에 처해지기도 했다. 이런 사회에서는 계층간의 관계가 뚜렷하고 전쟁이 자주 일어났다.

그리스도교 전도자들은 족장을 개종시켜야만 고대 종교의 관습을 타파할 수 있었다. 권력이 주로 종교적 신앙에 깊이 뿌리박혀 있고, 종교의 금기를 통해 영향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족장의 권력은 이러한 종교 관행의 변화로 상당히 약해졌다.

종교와 주술은 폴리네시아 전통문화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다. 폴리네시아의 신(神)은 선과 악을 비롯한 여러 가지를 한데 포함하는 복합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그들은 신화에 나오는 신들에서 지역적인 신들에 이르기까지 지위와 중요성이 다양하다. 각각의 신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의식을 가지고 있고, 신학교에서 이러한 종교행사를 자주 개최한다. 종교행사 중에는 제물(인간이 제물이 될 경우도 있음)을 바치고, 찬양하며, 대향연을 벌이거나 풍작을 기원하는 의식 등이 있다.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중요한 단면 중의 하나는 모든 생물과 무생물에 초자연적인 힘인 마나(mana)가 있다는 것이다. 마나는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손상되거나 없어지기도 한다. 여자들은 작은 숲을 비롯한 어떤 영역의 신성함이나 그들이 관계하고 있는 많은 무생물의 신성함을 더럽힐지도 모르는 존재로 여겨진다. 마나를 지키고 금기시된 것을 어기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복잡한 사회규칙이 수립되었다. 주술이 넓게 퍼져 있으며, 사랑·전쟁·복수·농업·어업 등에 관한 종교의식이 행해지기도 했다.

폴리네시아 문화는 주로 바다에 기반한 삶의 방식에서 형성되었다. 그러나 원예학과 수목재배도 널리 행해지고 있다. 물고기뿐만 아니라 연체동물·갑각류도 중요한 식량자원이다. 어업은 종종 집단적으로 이루어지는데, 사람들은 물고기 심지어는 돌고래와 고래까지도 해안가나 넓게 구획된 광대한 어장으로 몰고간다. 만과 초호에서만 어로활동이 이루어지지 않고 섬 주변의 대양을 거대한 어장으로 개척했다.

정원과 작은 과수원에서 고구마·타로토란·빵나무열매·바나나·사탕수수·코코넛 등의 작물이 경작된다. 후추나무의 뿌리로 만들어진 무알코올 음료인 카바는 어른들에게 인기가 있으며, 의식을 갖춘 모임이나 행사에서 사용된다. 빵나무는 카누를 만드는 데 사용되며, 그 수액은 틈새를 막는 데도 사용된다. 빵나무의 안쪽 껍질이나 인피는 흠뻑 물에 적시고 두들겨 타파 천을 만든다. 몇몇 나무의 잎은 돗자리, 옷감, 돛, 기타 다른 가정용품을 만드는 데 사용된다.

카누는 좁은 초호를 항행할 수 있고, 초호 위에 기항할 수 있으며, 항로를 쉽게 바꿀 수 있어서 섬 생활에 필요하다. 내륙의 교통이나 식민지 탐험을 위한 더블 카누는 길이 30~45m의 큰 배이다.

폴리네시아의 각 제도는 독특한 예술을 발전시켜왔는데, 소시에테 제도, 이스터 섬, 마르키즈 제도에 남아 있는 석조 사원으로 보아 훌륭한 석공술과 건축술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카누, 전투용 곤봉, 낚싯바늘 등의 제품들도 훌륭하게 디자인되고 정교하게 장식되었다. 하와이에서는 고래 이빨로 만들어진 팬던트가 족장의 장식물로 이용된다.

전통적인 폴리네시아 사회에서는 토지가 공동소유이며, 가족단위로 분배되어 경작된다. 사회가 발전함에 따라 각 제도는 독자적인 토지분배방식을 발전시키기 시작했다. 그중에는 사회적 계급에 따라 토지를 분배하는 방식도 있었다. 1700년대말 유럽 문화를 접촉하게 되면서 폴리네시아의 생활이 근본적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부를 추구하거나 그리스도교를 전파하려 한 스페인 탐험가들이 폴리네시아를 최초로 탐험한 유럽인들이다. 1595년 알바로 데멘다냐 데 네이라가 마르키즈 제도를 방문했고, 1606년 페드로 페르난데스 데 키로스가 투아모투 제도와 쿡 제도 북부를 발견했다. 그후로는 네덜란드인들이 이곳을 방문했는데, 1642년 아벨 타스만이 뉴질랜드를 발견했고, 후에는 통가를 탐험했다.

영국과 프랑스가 폴리네시아를 탐험하기 시작한 것은 1766년 영국의 항해가 새뮤얼 월리스가 타히티를 발견하고, 같은 해에 프랑스의 탐험가 루이 앙투안 드 부갱빌이 타히티와 이후 사모아 제도를 방문하면서부터였다. 영국의 해군장교이며 탐험가인 제임스 은 1769, 1770년에 배로 세계를 일주하고 뉴질랜드의 주요한 두 섬을 해도로 만들었으며, 후에는 타히티를 탐험했다.

1778년에는 하와이 제도를 발견한 뒤 샌드위치 백작을 기념하여 샌드위치 제도로 명명했다. 폴리네시아에 유럽인들이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운동이 모든 섬에서 일어났으나 단기간에 끝났다. 1898년 미국이 하와이를 합병했고, 1880년 프랑스가 마르키즈 제도와 소시에테 제도를 합병했다.

1888년 칠레는 이스터 섬에 대한 권리를 주장했으며 영국은 1840년 뉴질랜드를, 1901년 쿡 제도를 합병했다. 통가는 독립왕국으로 남아 있었으나 1900년부터 영국의 보호령이 되었다. 19세기말 폴리네시아의 모든 섬은 유럽과 미국의 통치를 받게 되었다. 1962년 사모아가 독립했고, 1929년 아메리칸사모아가 미국의 영토가 되었다. 1959년 하와이는 미국의 50번째 주가 되었고, 1947년 뉴질랜드가 영국 연방 내의 독립국이 되었다.

쿡 제도는 뉴질랜드의 자치령이고, 마르키즈·소시에테·투아모투 제도는 프랑스의 해외령인 프랑스령 폴리네시아에 속해 있다. 식민지 개척자, 특히 그리스도교 선교사들이 서방 교회의 신앙과 문화를 강요하면서 폴리네시아의 전통과 관습을 타파하여 대부분의 전통과 관습이 파괴되거나 서방의 방식으로 융합되었다. 그러나 사모아와 통가에는 다른 지역에 비해 전통 문화가 많이 남아 있다.

폴리네시아의 생활방식은 간단하고 자연적이며 문명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서방의 많은 예술가와 작가들에게 낭만적인 매력을 준다. 프랑스의 미술가 폴 고갱은 그의 말년의 수년간을 타히티 섬과 마르키즈 제도에서 살면서 폴리네시아의 사람들과 문화를 그렸다.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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