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트리 앤드 웨스턴

컨트리 앤드 웨스턴

다른 표기 언어 country music

요약 20세기 미국의 대중음악 양식.

이 용어는 대체로 1950년대에 시골이나 남부의 분위기를 나타내는 노래 혹은 연주를 지칭하는 용어로 오랜 시기에 걸쳐 형성되었다.

컨트리 앤드 웨스턴의 근원은 미국 남부의 영국 발라드 전통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그러나 이로부터 여러 갈래의 음악이 파생되어 나왔고, 그결과 컨트리 앤드 웨스턴 가사의 주제들 중 상당수가 이혼, 열차·비행기 여행으로 인한 이별 등과 같이 20세기 생활상의 여러 양상들을 반영했다. 1920년대 초반 산발적으로 미국 남부 산악지방의 전통적인 현악 밴드 음악이 이루어지기는 했지만 서서히 상업적 목적으로 녹음되기 시작했다.

그러나 일부 초기 시골 연주자들의 실린더식 음반에는 피들린 존 카슨, 기드 태너, 릴리 퍼킷, 어니스트 '팝' 스톤맨 등과 같은 연주자들의 특징이 남아 있다. 또한 시골 노래들의 활력과 사실적 색채를 띤 상당수의 가사 내용이 엄격한 칼뱅주의 교도의 도덕주의적 관점을 지닌 비인칭의 이야기체 비극으로 되어 있어서, 당시 대부분 대중음악들의 역겨운 감상주의와 커다란 대조를 보였다. 컨트리 음악의 발전에 음반보다 더 중요한 기여를 한 것은 라디오 방송이었다.

1920년대에 소규모 방송국들이 남부와 중서부 지역의 커다란 도시들에 생겨났고, 이들 방송국들은 방송시간의 상당 부분을 시골의 청취자가 좋아할 음악의 생방송이나 녹음방송에 할애했다. 특히 큰 영향을 끼쳤던 두 방송 프로그램으로 1924년부터 시카고에서 방송된 〈내셔널 반 댄스 National Barn Dance〉와 그 다음해부터 내슈빌에서 방송된 〈그랜드 올 오프리 Grand Ole Opry〉를 들 수 있다.

이 프로그램들이 청취자들로부터 즉각적인 인기를 얻자 더 많은 음반 녹음이 이루어졌을 뿐 아니라 시골의 재능 있는 연주자들이 라디오·레코드 스튜디오에 몰려들었다. 이들 중 하나였던 카터 패밀리의 연주는 특히 후대 연주자들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경제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으로 수많은 인구가 남부에서 북부 도시들로 이주함에 따라 컨트리 앤드 웨스턴 음악에는 새로운 장이 펼쳐졌고, 이에 따라 영향을 주는 요인들도 새롭게 변했다.

상업적 발전의 영향 아래 컨트리 앤드 웨스턴은 음악 자체의 성격까지도 변했다.

변형되지 않은 상태의 옛 노래 가락을 그대로 옮긴 최초의 음반 녹음은 발라드, 컨트리 댄스 가락이 주종이었고 기타밴조의 리듬 반주 위에 피들과 기타가 주요악기로 사용되었다. 때로 덜시머·하모니카·만돌린 같은 악기들을 사용하기도 했고, 노래는 한 사람이 부르거나 여러 명이 고음의 밀집화음으로 불렀다.

1930년대에 수많은 '노래 부르는 카우보이' 영화 스타들이 이른바 '산'(山) 음악인 '힐빌리' 음악을 불렀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진 오트리는 적당히 가사를 변경하여 가짜 '웨스턴' 음악을 부르곤 했다. 좀더 실질적인 2번째 변화는 텍사스-오클라호마 지방에서 컨트리 음악의 한 변종인 '웨스턴 스윙'인 '홍키 통크' 양식으로 나타났다. 이 지방에서는 산악지대로부터 가져온 초기 정착민들의 음악이 블루스, 재즈, 루이지애나와 최남부 산악지방의 케이전(Cajun : 아카디아 출신 프랑스계 이민의 자손들) 음악과 섞이게 되었는데, 이것이 새로운 양식을 낳게 한 계기가 되었다.

이 양식은 밥 윌스, 어니스트 터브 등에 의해 발전되었고, 쇠줄 기타나 전기증폭 기타를 사용한 강한 춤곡 리듬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었다.

1940년대에 컨트리 음악이 이처럼 상당한 정도로 변형되었기 때문에 원래의 상태를 복원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이루어졌다. 만돌린 연주자 빌 먼로는 옛 가락들을 여러 개 복원시켰고, 전통 양식으로 새로운 가락을 만들어 자신의 현악 밴드인 블루그래스 보이스가 연주하게 했다.

빌 먼로는 최근에 컨트리 음악에 채택된 리듬과 악기들을 버리고 대신 옛 악기 피들을 주요선율악기로 복원시키고 고음역의 화성 창법을 복원시켰다. 그의 악단의 밴조 연주자 얼 스크러그스는 3개의 손가락으로 현을 퉁기는 주법으로 유례 없는 기술적 경지를 개척함으로써 이전에는 반주악기로 쓰이던 밴조를 주요선율악기로 부상시켰다. 그 음악은 옛 것과 새것의 기발한 혼합으로 상상력이 넘쳐, 한때 먼로의 밴드로부터 따온 '블루그래스'라는 이름의 독특한 형태로 인정받았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에 컨트리 앤드 웨스턴 음악과 이것의 변종인 블루 그래스는 그때까지 주로 일부 지방의 음악이던 것에서 확대되어 미국 전역, 심지어 외국에서도 인기를 누리게 되었다. 〈그랜드 올 오프리〉 이래 컨트리 음악의 중심지가 되어온 테네시 주 내슈빌의 주요음반회사들이 대규모 스튜디오들을 세우자 컨트리 앤드 웨스턴 음악은 거대한 상업적 사업이 되었다.

이제 컨트리 앤드 웨스턴과 상업적인 대중음악의 본류 사이에는 그다지 차이가 나지 않았다. 대중가요 가수들이 종종 내슈빌 스타일로 노래를 녹음했고, 또한 컨트리 앤드 웨스턴의 음반에는 종종 관현악에 의한 풍부한 배경 반주가 사용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컨트리 앤드 웨스턴은 그 나름의 고유한 성격을 어느 정도 유지해나가면서, 몇 안 되는 미국 고유의 음악 양식 중 하나로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