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명

인명

다른 표기 언어 hetu-vidya , 因明

요약 논증의 근거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

인도의 불교도들은 인도의 학문을 내명(內明)·의방명(醫方明)·인명(因明)·성명(聲明)·공교명(工巧明) 등의 5명(五明)으로 분류했는데 인명은 그중 하나이다.

인(因 hetu)이란 논증의 형식에서 결론을 이끌어내는 원인·이유 등을 뜻하는데, 이것은 논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므로 불교에서는 논리학을 인을 밝히는 학문이라는 뜻으로 인명이라 한다.

인명에서 추론은 자기 자신을 위한 위자비량(爲自比量 svārtha-anumāna)과 타인을 위한 위타비량(爲他比量 parārtha-anumāna)으로 구분된다. 비량이란 불교 유식학의 용어로서 인명에서는 논리적 추론과 동의어로 쓰인다. 유식학에서는 진나 이래 일반적으로 인식의 방법을 현량(現量)과 비량의 2가지로 나눈다.

현량은 감각적 인식, 감각과 동시에 일어나는 의식, 자증분(自證分), 정심(定心) 등의 무분별심(無分別心)에 의한 직각적(直覺的) 인식이고, 비량은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을 근거(因)로 하여 아직 알지 못하는 사실을 추측하여 인식하는 추리적(推理的) 인식이다.

진나 이전의 고인명에서는 추론(推論 anumāna)의 논법으로 종(宗)·인(因)·유(喩)·합(合)·결(結)의 5가지 명제로 구성된 5지작법(五支作法)을 사용했다.

세친의 〈여실론〉에서 제시된 5지작법의 방식은 다음과 같다.

종:소리[聲]는 무상(無常)한 것이다.

인:소작성(所作性:조건에 의존하여 만들어진 것이라는 성질)인 까닭에.

유:비유컨대 병(甁) 등과 같이.

합:병 등과 같이 소리는 무상하다.

결:그러므로 소리는 무상하다.

이 가운데 종(pratijñā)은 주장·제안 등의 의미로 입론자(立論者)의 주장을 논증하고자 제시하는 명제이며 소립(所立)이라고도 한다.

인(hetu)은 입론자가 자신의 주장, 즉 종을 대론자(對論者)에게 승인시키기 위한 논증의 근거이다. 유(dṛṣṭānta 또는 udāharaṇa)는 주장과 근거에 대한 실례(實例)·예증·비유를 말한다. 인과 유는 입론자와 대론자가 모두 이미 알고 있는 사실로서 양자를 능립(能立)이라고도 한다. 합(upanaya)은 유에 의거하여 종과 인을 결합하는 것이며, 결(nigamana)은 종을 결론으로서 확정짓는 것이다.

진나는 이 가운데 합과 결을 불필요한 것이라 하여 제거하고 종·인·유로 이루어진 3지작법을 세웠다. 여기서 유는 동유(同喩)와 이유(異喩)로 구성되는데, 이유는 동유의 명제를 환질환위(換質換位)하고 종의 주장과 반대되는 실례를 제시한 것이다.

위의 예를 3지작법으로 바꾸면 다음과 같다.

종:소리는 무상한 것이다.

인:소작성인 까닭에.

동유(同喩):모든 소작성인 것은 무상하다, 병 등과 같이.

이유(異喩):모든 무상하지 않은 것은 소작성의 것이 아니다, 허공 등과 같이.

이것을 기호로써 공식화하면 다음과 같다.

종:모든 S는 P이다.인:M이기 때문에.

동유:모든 M은 P이다, 예컨대 e와 같이.이유:모든 ∼P는 ∼M이다.

예컨대 e와 같이.

신인명에 의하면, 3지작법의 추론이 오류가 없는 올바른 것이 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논리적 내용을 담고 있어야 한다.

① 종은 주사(主辭) S와 빈사(賓辭) P로 이루어지는데, 이 2개의 개념을 종의(宗依)라고 하고, S와 P가 결합된 종의 명제를 종체(宗體)라고 한다.

여기서 종의, 즉 S, P 각각의 개념은 입론자뿐만 아니라 대론자에게도 승인되어 있어야만 한다. 이를 입적공허(立敵共許)의 조건이라고 한다. 그러나 S와 P의 결합, 즉 종체는 입론자의 주장이므로 입론자에게는 승인되어 있으나 대론자에게는 아직 승인되어 있지 않은 것을 전제로 한다. 이를 입적불공허(立敵不共許)의 조건이라고 한다. 즉 종의는 입적공허이지만 종체는 입적불공허이다.

② 인 M은 종을 대론자에게 승인시키는 근거·이유이기 때문에 입적공허일 것을 필요로 하며, 종의 주사 S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갖는다. 앞의 예에서 말하면, '소작성'인 인은 '소리'에 의해 인정되는 셈이다. 이와 같이 S에 갖추어져 있는 인의 의미를 인체(因體)라고 한다.

인은 S와 P의 결합을 이루게 하는 매개념으로서 추론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다. 타당한 추론이 되기 위해서 인이 반드시 지켜야 할 3가지 조건을 인의 3상이라고 한다.

첫째, 편시종법성(遍是宗法性)은 인 M이 종의 주사 S의 대상, 즉 빈사가 되어 S를 만족시켜야만 한다는 조건이다. 곧 'S는 M이다'가 성립되어야 한다.

둘째, 동품정유성(同品定有性)은 인 M이 종의 빈사 P와 같은 품류(品類:범주), 즉 P의 외연(外延) 전체에 포섭되어야 한다는 조건이다.

곧 '모든 M은 P이다'가 성립되어야 한다.

셋째, 이품편무성(異品遍無性)은 인 M이 종의 빈사 P와 모순된 다른 품류일 때 그 안에 포섭되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이다. 곧 '모든 ∼P는 ∼M이다'가 성립되어야 한다. 인의 3상설을 위의 '소리는 무상한 것이다'라는 예에 적용시켜보면, '소작성'이라는 인이 '소리'를 그 안에 포함하는 것이 편시종법성이고, 무상한 것에 포함되는 것이 동품정유성이고, 무상하지 않은 것, 예를 들어 허공 등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이 이품편무성이다.

또한 진나는 인의 옳고 그름을 판정하기 위해 종의 동품(同品)과 이품(異品)에 대해 관계하는 인의 가능한 모든 조건을 분석하여 9종으로 나누고 그중 2종만이 논증의 능력이 있는 옳은 인이 됨을 밝혔는데, 이를 9구인설이라고 한다.

③ 유는 인과 같이 입적공허일 것을 필요로 하며 동유와 이유로 구분된다. 동유는 종법(宗法), 즉 논증되어야 할 종의 빈사 및 논증의 타당성을 확보해주는 근거인 인과 동류(同類)에 속하는 실례의 비유를 말하며, 인의 동품정유성을 나타내는 '모든 M은 P이다'라는 형식의 명제와 이 명제에 대한 실례로 이루어진다.

이유는 논증되어야 할 종의 빈사와도 관계가 없고 인과도 관계가 없는 실례의 비유를 말하며, 인의 이품편무성을 나타내는 '모든 ~P는 ~M이다'라는 형식의 명제와 이 명제의 실례로 이루어진다. '소작성'이라는 인은 '무상'에만 관계하고 '상'(常)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동유와 이유로써 증명하는 것이다. 동유와 이유의 명제 부분을 유체(喩體)라고 하고 실례를 유의(喩依)라고 한다. 동유의 유체는 '모든 소작성인 것은 무상하다'와 같이 선인후종(先因後宗)의 순서를 취하며, 이유에서는 '모든 무상하지 않은 것은 소작성의 것이 아니다'와 같이 선종후인(先宗後因)의 순서를 취한다.

역사

BC 2세기경부터 인도의 철학과 종교의 여러 학파에서는 자신의 주장이나 논쟁을 목적으로 논리학이 연구되어, 니아야(nyāya 正理)라는 논리학의 대강이 성립되었다. 불교에서 논리학은 특히 유식사상 계통에서 적극적으로 수용되어 인식논리학으로서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

한편 불교 자체 내에서도 고유한 논리학적 전통이 이어져왔는데, 그것은 대승불교의 사상적 토대를 마련한 용수의 〈방편심론 方便心論〉·〈중론 中論〉·〈회쟁론 廻諍論〉 등의 저작과 〈해심밀경 解深密經〉의 제8품인 〈여래성소작사품 如來成所作事品〉, 미륵의 〈유가사지론 瑜伽師地論〉, 무착의 대승아비달마집론 〈大乘阿毘達磨集論〉, 세친의 〈여실론 如實論〉 등에서 찾아볼 수 있다.

6세기경 활동했던 진나는 이와 같은 전통을 계승하면서, 3지작법, 인의 3상설, 구구인론 등의 이론을 확립하여 불교논리학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 일반적으로 진나를 기준으로 하여 그 이후의 인도논리학을 신인명, 그 이전을 고인명으로 구분할 만큼 논리학의 발전에 대한 진나의 기여는 절대적이다. 그의 저술에는 〈집량론 集量論 Pramāṇasamuccaya〉·〈인명정리문론 因明正理門論〉 등이 있다.

진나 이후 그의 문하에서 나온 상갈라주는 〈인명입정리론 因明入正理論〉을 저술했으며, 7세기 중반에 법칭은 〈집량론〉의 해석서인 〈양평석 量評釋 Pramāṇavārttika〉과 〈정리적론 正理滴論 Nyāyabindu〉 등의 논리학서를 저술하여 진나의 논리학을 더욱 정교하게 발전시켰다. 8세기에 활동했던 적호와 그의 제자 연화계는 〈섭진실론 攝眞實論 Tattvasaṃgraha〉과 그에 대한 주석서를 저술하여 불교인식논리학을 집대성했다.

중국에서는 당(唐)의 현장(玄奘)에 의해 인명이 소개되어 일시적으로 활발하게 번역·연구되었으나 법상종 이외의 다른 종파에서는 불교학의 중요한 분야로 인식되지는 못했다. 한국에서는 신라시대에 인명에 대한 활발한 연구 활동이 있었다. 대표적인 학승들로는 원측·원효(元曉)·도증·승장·신방·경흥·대현·도륜·순경·오진 등을 들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학자들의 저서가 산실되었고 행적이 명확하지 않아 이들의 사상을 파악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다.

최근에 발견된 원효의 〈판비량론 判比量論〉은 인명의 비량 형식을 통하여 불교 교리의 근본 문제들을 판석한 책으로 그가 인명에 정통해 있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판비량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