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니테리언주의

유니테리언주의

다른 표기 언어 Unitarianism

요약 이성의 자유로운 활용을 강조하는 종교운동.

대체로 하느님이 한 위(位)로만 존재한다는 견해를 갖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신성과 삼위일체 교리를 부인한다.

하느님의 단일성과 예수의 인성(人性)에 대한 신학적 기반은 2~3세기의 단일신론과 아리우스 및 그 추종자들(아리우스파)의 가르침에서 발견된다. 후에 교회는 이 두 분파의 교리를 모두 이단으로 선언했다. 유니테리언주의의 현대적 뿌리는 16세기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그당시 자유주의적이고 급진적이며 이성주의적인 개혁자들은 플라톤이 강조했던 이성과 하느님의 단일성을 부활시켰다.

이들 사상가 중 많은 사람이 종교재판 때 이탈리아를 떠났다. 주도적인 신플라톤주의적 유니테리언주의자였던 미겔 세르베투스는 결국 제네바로 도망쳤으나 그곳에서 칼뱅주의자들에 의해 화형에 처해졌다. 폴란드에 은신한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 망명자 중 주요인물인 파우스투스 소키누스는 1579년 크라쿠프에 도착했다.

미겔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
미겔 세르베투스(Michael Servetus)

소키누스의 신학은 예수의 완전한 인성을 강조했으며, 대부분의 유니테리언주의자들과 만인구원론자들은 지금도 이 교리를 견지하고 있다. 트란실바니아에서 활동한 초기의 주요인물은 페렌츠 다비드였는데, 예수는 인간에 불과하기 때문에 예수에게 기도할 수 없다고 가르쳐 이단으로 단죄되었다. 다비드는 1579년에 옥사했는데, 그가 세운 교회는 현재 남아 있는 유니테리언 교회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아리우스주의).

영국의 일부 비정통 사상가들도 소키누스와 다른 사람들에게 의지하기는 했지만, 영국 유니테리언주의의 주요흐름은 미국 유니테리언주의와 마찬가지로 칼뱅주의적 청교도사상에서 성장했다.

섭리에 대한 칼뱅의 교리가 점증하는 과학적 우주관과 결합되자 정통 교리는 쇠퇴하게 되었고, 보다 자유주의적인 칼뱅주의 성직자들은 이성과 도덕을 점점 강조하게 되었다. 영국의 과학자이며 비국교도 목사였던 조지프 프리스틀리는 예수의 인성과 하느님의 전능함, 인간의 합리적 기능을 강조하면서 '유니테리언 그리스도교'를 전파하기 시작했다.

영국의 유니테리언주의자들은 의회와 전문직업, 사회개혁 분야에서 세력을 얻게 되었다. '유니테리언'이라는 명칭이 분파적이고 분열적인 느낌을 준다고 해서 이 명칭을 거부했던 몇몇 그룹은 '자유 그리스도교도'라는 이름을 채택했다. 유니테리언 운동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에서는 그다지 많은 호응을 얻지 못했다(영국). 미국 유니테리언주의는 18세기의 부흥 운동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뉴잉글랜드 회중교회에서 좀더 서서히 발전했다.

회중교회의 자율성에 힘입어 영적인 신앙 부흥운동보다는 중용·이성·도덕을 강조했던 목사들은 논쟁에 휘말리지 않았다. 19세기의 초절주의 운동은 종교의 직관적이고 감정적인 면에 새로운 관심을 쏟으면서 유니테리언주의를 도입했다. 유니테리언주의가 미국 중서부지역으로 보급되면서 유니테리언주의의 종교적 기초는 그리스도교와 성서가 아닌 인간의 열망과 과학적 진리로 대체되었다(미국). 영국과 미국의 유니테리언주의 분파들은 1825년에 각각 영국 유니테리언 협회와 미국 유니테리언 협회를 조직했다.

1961년 미국 유니테리언주의자들은 미국 만인구원론자 교회 조직에 흡수되었다. 만인구원론자 교회와 유니테리언주의는 자유주의적 이상주의의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대부분의 유니테리언주의자들과 만인구원론자들의 교회정치는 회중교회 형태이다. 예배 형식은 프로테스탄트 전통에 기초를 두었지만 분파마다 매우 다양하다.→ 만인구원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