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라비아

아라비아

다른 표기 언어 Arabia
요약 테이블
위치 아시아대륙 남서부, 홍해와 페르시아 만과 인도양으로 둘러싸인 반도
면적 3,100,000㎢
대륙 아시아
국가 사우디아라비아, 예멘 공화국, 오만 술탄국,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

요약 아시아 대륙 서남부에 있는 반도 지역.
(아). Jazirat al-⁽Arab.

목차

접기
  1. 자연환경
  2. 국민
  3. 경제
  4. 정치와 사회
  5. 사막 문화
  6. 역사

앞바다의 섬들을 포함한다. 서쪽과 남서쪽으로 홍해를 경계로 하며 남쪽은 아덴 만, 남쪽과 남동쪽은 아라비아 해, 북동쪽은 오만 만과 페르시아(또는 아라비아) 만, 북쪽은 이라크, 요르단, 아카바 만과 접한다.

정치적으로 아라비아는 가장 큰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을 비롯해서 예멘 공화국, 오만 술탄국, 아랍에미리트, 카타르, 바레인, 쿠웨이트의 7개 주권국가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가 함께 관할하는 주권이 없는 작은 중립지역을 포함한다.

아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Arabia, Saudi Arabia)
아라비아, 사우디아라비아(Arabia, Saudi Arabia)

자연환경

아라비아는 3면을 둘러싼 산맥을 경계로 바다와 떨어져 있는 분지 모양의 고원지대이다.

홍해 연안에서 반도 전역으로 뻗은 산맥이 북동쪽 방향으로 완만한 비탈을 이루고 있으며 동부 저지대지역은 페르시아 만과 인접해 있다. 지질학적으로 아라비아 반도 서쪽 홍해 연안의 산맥들은 홍해 건너에 있는 산들과 하나의 지역을 이룬다. 이 산들은 한때 붙어 있었으나 약 5,000만 년 전 동아프리카 지구대의 지각운동으로 홍해가 생겨나면서 분리되었다. 심한 피해를 주는 지진이 발생하는 등 아직까지도 지각운동이 계속되고 있다.

남쪽 산들 역시 지질학적으로 안정된 내륙의 아라비아 순상지 중심부를 향해 완만한 비탈을 이루고 있으며, 순상지 위에는 아라비아 서부 지역에 특징적인 광활한 검은 용암평원과 사화산(死火山)들이 자리잡고 있다. 고원 내륙에는 북서부 안나푸드에서 남부 룹알할리('텅 빈 지역')까지 모래사막이 펼쳐져 있으며 동북부의 페르시아 만 연안에는 모래밭으로 이루어진 연안저지대가 자리잡고 있다.

터틀비치(Turtle Beach)
터틀비치(Turtle Beach)

산악지대 가운데 특별히 높은 지역은 없고 예멘에 있는 해발 3,760m의 하두르슈아이브가 최고봉이다. 고원지대의 3면을 둘러싸고 있는 좁은 연안평야지대에서 경작이 가능한데 경작지 대부분은 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치우쳐 있다. 3,000년 동안 다른 아시아 지역 및 아프리카를 반도지역과 이어 온 대부분의 교역도시들도 이 연안평야에 자리잡고 있다('사우디아라비아' 항목 참조).

인도양 계절풍의 영향을 받는 동부 일부 지역과 산들이 이루는 장벽 때문에 비가 내리는 서부 끝 연안지역을 뺀 아라비아 반도 대부분 지역이 아주 건조하여 보통 연강우량이 100㎜ 이하를 기록한다.

사람이 살기에 가장 적합한 지역은 남부에 있는 예멘으로 연강우량이 500~1,000㎜에 이른다. 그외 다른 지역은 여름 기온이 54℃까지 올라가며 봄·가을에는 기후가 쾌적한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매우 건조하여 많은 농사를 지을 수가 없다. 계절풍으로는 북북서쪽에서 불어오는 샤말풍과 그보다는 드물게 남동쪽에서 불어오는 카우스풍이 있다. 지질학적인 증거에 따르면 옛날에는 아라비아 반도가 사람이 정착하여 살기에 훨씬 더 적합한 지역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기에만 물이 흐르는 와디도 한때는 1년 내내 물이 흐르는 하천이었다.

대추야자나무를 빼고는 대개의 지역에 나무가 전혀 없어 거의 반도 전역에서 자라는 대추야자가 수세기 동안 이 지역 경제의 주요산물이었다.

대추야자|기름야자나무
대추야자|기름야자나무

아카시아·위성류(渭城柳)·미모사와 같은 나무들이 모래언덕을 고정시키기 위한 방풍림으로 이용된다. 가축사료로 알팔파(자주개자리)를 심기도 하며 더 메마른 지역에서는 목화·밀·기장과 같은 작물을 재배한다. 대부분의 사막과 고지 지역에서는 염성(鹽性) 관목이 유일한 야생식물이다. 비교적 물이 풍부한 예멘과 아시르 지역에서는 선인장처럼 생긴 등대풀류, 유카리나무, 취어초 덤불, 알로에를 비롯한 여러 가지 식물들이 자생하고 있으나 대개의 경우 가축들을 방목하고 계단식 밭을 일구어 농사를 짓기 때문에 이러한 자생식물들은 쓸모없는 덤불로 취급되고 있다.

동물로는 늑대·하이에나·여우·오소리·몽구스 등의 포유동물이 널리 분포되어 있으나 그 수가 적고, 조류는 독수리·매·사냥용매·올빼미·홍학 등 훨씬 종류가 다양하지만 상당수가 철새이다. 자연보호 상태는 위태로운 수준으로 많은 종(種)들이 사냥 때문에 사실상 멸종되었다.

홍해의 암초해역을 비롯한 주변 바다에는 다양한 수생생물이 풍부하게 서식하고 있다.

붉은 바다 산호초 모습
붉은 바다 산호초 모습

주요광물자원으로는 세계 전체매장량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석유와 천연 가스가 있다.

석유는 대부분 페르시아 만 해안이나 그 앞바다에 묻혀 있으며 석유 개발시에 황도 함께 추출된다. 석유와 함께 엄청난 양의 천연 가스도 매장되어 있다. 다른 광물자원으로는 구리·인산염·금·은·철광석·중정석(重晶石)이 있으며 석고와 대리석이 채굴된다.

국민

주민은 대부분 아랍인이며 대체로 강우량과 경작지 유형을 따라 분포하고 있다. 고원지대 중앙에 자리잡은 거주지역 나지드에는 리야드 대도시권과 여러 작은 농업도시들이 있으며, 물이 풍부한 남서부 산악지대의 아시르에도 역시 인구가 밀집되어 있다.

예멘의 고원지대는 아라비아 반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 가운데 하나이다. 비교적 소규모 원주민인 베두인족도 공동체를 이루며 살고 있다. 아라비아 반도의 나라들 가운데 사우디아라비아가 가장 인구가 많으며 예멘이 그 다음을 차지한다.

아라비아 반도의 연간 인구성장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으로 추산된다. 출생률이 거의 모든 지역에서 비교적 높은 반면 사망률은 지역에 따라 크게 다르다. 많은 지역에서 인구의 45%가량을 15세 이하의 인구가 차지하는 등 전체적으로 주민의 평균 연령이 낮은 편이다. 언어학적으로는 대부분의 주민이 아랍어를 쓰며 지방방언이 많다. 대다수의 주민이 수니파 이슬람교도로서, 점령한 지역주민을 이슬람교로 개종시키며 스페인과 중국에까지 이슬람교를 전파했던 과거의 위대한 전통을 자신들이 계승했다고 믿고 있다.

오늘날에는 해마다 200만 명의 순례자들이 이슬람교의 유명한 역사적 중심지인 메카를 찾는다. 대부분 지역에서 주민 가운데 2/3 이상이 도시에 거주한다. 오만과 예멘은 주로 작은 농업도시 중심의 생활을 해온 전통 때문에 인구의 약 10~25%만이 도시에 산다. 대부분 나라마다 몇 개의 주요도시가 있으며 정부에서는 환경개선을 통해 현재의 농촌인구를 유지하기보다는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해줄 새로운 도심지를 건설하는 데 역점을 두고 지역·도시 개발계획을 세우고 있다.

경제

왕족 또는 각 국가의 정부당국에서 대부분의 기업을 엄격하게 통제하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자유기업경제체제를 채택하고 있다.

아라비아 7개국의 국민총생산(GNP)은 대부분 원유수출과 정유사업을 통해 얻어지며, 1인당 GNP는 세계 최저수준인 예멘에서 최고수준인 아랍에미리트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예멘은 농업 부문이 국내총생산(GDP)의 7%가 넘는 비중을 차지한다. 제조업은 대개의 경우 GDP의 12% 정도를 차지하고 있으나 사우디아라비아와 오만의 제조업 비율은 여기에 미치지 못한다. 일반적으로 각 나라 GDP의 절반가량을 서비스 부문이 담당하고 있다.

경작지는 토지면적의 1%가 채 안 되지만 전체인구의 1/3 정도가 농업에 종사한다.

농업노동력은 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에 치우쳐 있다. 경작지의 30% 정도에 지하수로 물을 대고 있으나 대부분 지역에서 여전히 날씨에 크게 의존하고 있으며 식량생산도 자급자족을 이루지 못하는 수준이다. 기후가 알맞은 지역에서는 곡류가 재배되며 물이 풍부한 오아시스에서 멜론과 과일이 생산된다. 그밖에도 향수원료·향신료·커피 등과 예멘의 계단식 밭에서 재배되는 흥분제 카트가 주요작물로 손꼽힌다. 양과 염소가 전지역에 걸쳐 사육되고 있는데, 이들은 아라비아 반도의 식물을 황폐하게 하는 데 큰 원인이 되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이밖에 소·당나귀·낙타(예멘과 사우디아라비아 지역) 등의 목축도 행해진다. 대부분의 연안도시에 작은 어선단이 있지만 어업은 그리 중요한 역할을 하지 못한다.

아라비아 반도의 국가 대부분은 20세기 이후를 대비하여 제조업 부문을 확대하는 데 많은 투자를 하는 방향으로 국가발전계획을 추진해왔다. 20세기 이후가 되면 매장된 석유가 고갈될 것이고 빠르게 증가하고 있는 인구가 석유 대신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를 필요로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직까지 주요산업은 정유업이다. 그외 건설 부문이 아주 활발하여 석유가 고갈된 후 이를 대신하여 자립경제를 이끌어나가기 위해 필요한 사회간접자본, 새로운 도시, 송유관을 비롯한 여러 가지 시설들을 건설중이다. 서비스 부문은 석유산업에 대한 금융·기술 지원산업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주요노동문제로 이전의 전통적 경제구조를 석유산업 중심으로 조정하는 문제, 석유소득이 거의 없는 예멘과 같은 나라들의 현대화에 관련된 문제 등이 있다.

특히 작은 석유생산국들의 경우, 1970년 이후 일자리와 기업가가 될 수 있는 기회를 좇아서 아라비아 반도로 온 수백만 명의 외국 노동자들이 중요한 문제가 되고 있다. 이들과 그 부양가족들은 기존 서비스 산업에 부담을 주고 있으며 석유경기 이후에는 사회적·정치적 문제로까지 부각될 것으로 예측된다. 석유산업이 번창하면서 1980년대초 이후 사설·상업·개발 은행들도 활기차게 성장했다.

아라비아 여러 나라들은 아랍 연맹(Arab League)·아랍 석유수출국기구(Organization of Arab Petroleum Exporting Countries/OPEC)·아랍 경제사회개발기금(Arab Fund for Economic and Social Development/AFESD)·아랍 통화기금(Arab Monetary Fund/AMF) 등과 같은 기구들을 통해 경제적·정치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

페르시아 만 주변, 사우디아라비아 중심부, 아시르지역의 도로망이나 반도를 이웃나라들과 연결하는 주요 연안통상로를 제외하고는 내륙의 육상교통은 거의 발달되어 있지 않다.

또한 페르시아 만 지역을 제외하고는 반도 내 국가를 연결하는 도로도 거의 없다. 580km의 철도를 통해 앗담만 항과 리야드가 이어지며, 1960년대 이후 항공교통이 활발해지면서 부족한 도로시설을 대신하고 있다. 걸프 항공, 쿠웨이트 항공,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공항망을 이용하는 사우디 항공들이 장비수송을 거의 전담하고 있다.

오랜 해상여행의 전통을 지니고 있지만, 20세기말 현재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아랍에미리트만이 주로 유조선으로 이루어진 상당히 큰 상선단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항만시설은 매우 많아서 세계에서 가장 크고 기술적으로 가장 현대적인 페르시아 만 항구들의 경우 용량 50만t 이상 되는 거대한 원유수송선이 정박할 수 있다. 1991년 페르시아 만 전쟁(국제연합의 이라크 제재조치)으로 유전이 파괴되거나 손상을 입은 쿠웨이트를 제외하고는 석유·가스·원유 등이 광대한 송유관을 통해 유전과 정유공장에서 페르시아 만 항구까지 운반된 다음 항구에서 배로 수송된다.

국제무역에서는 석유수출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한다.

1970년대와 1980년대초에는 엄청나게 늘어난 수입에 대해서도 별 어려움 없이 재정을 조달할 수 있었지만 1982년 세계적인 경기침체, 세계 석유시장의 공급과잉, 석유가격 하락 등으로 인해 석유소득이 감소하자 외환과 부채상환 문제가 생겨나기 시작했으며 결과적으로 석유생산 부문 이외의 산업개발에 더욱 치중하게 되었다. 주요수입품은 기계·장비·섬유·의류·식품 등으로 장비 부문에서는 특히 건설장비와 트럭 등의 수송장비에 치중하고 있으며 공장 전체 설비를 수입하는 등 완성된 구조물의 수입이 이루어진다. 주요 수출상대국은 서유럽과 북아메리카 등의 공업국이며 주요 수입상대국은 미국·일본·독일 등이다.

정치와 사회

아라비아 여러 나라들의 정치 형태는 아직은 느슨한 예멘의 공화제에서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부분적이었던 바레인과 쿠웨이트의 입헌군주제, 나머지 나라들의 보다 순수한 군주제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입헌군주제는 아라비아의 전통적 형태가 아니기 때문에 잘 발달되어 있지 않다. 지금까지 공개적인 토의형태로서의 정당제를 채택하지 않고 있으며 공공연히 반대의견을 개진하도록 허용하는 나라도 없다.

대부분 지역에서 전통적인 이슬람법인 샤리아를 기초로 민사·형사상의 제재가 내려지며 지방재판관 카디가 샤리아를 집행한다. 오직 쿠웨이트에서만 현대적인 법령이 시행되고 있다. 외교에 있어서는 비동맹권에 가담하거나 친(親)서구적 경향을 보인다. 영국의 속국 또는 피(被)보호국이었던 나라들은 군사적 자문이나 훈련 및 군수품 조달을 위해 계속 영국과 확고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미국은 군사적으로 중요한 지원국이다.

아라비아 반도의 생활수준은 이 지역 국가들이 몹시 가난했던 1970년대초까지도 보잘것없었으나 1970년대에 쏟아져들어오기 시작한 석유소득으로 새로운 사회간접자본이 많이 건설됨으로써 1980년대초에는 쿠웨이트와 같이 가장 발전한 국가들의 경우 평균수명이 70세에 이르게 되었다. 반면 그보다 훨씬 발전하지 못한 지역에서는 평균수명이 여전히 50세 정도에 머물러 있다. 유아사망률과 영양수준도 비슷한 유형을 나타낸다.

과거에는 보건인력의 훈련과 충원이 어려웠던 관계로 대도시에서만 현대적인 위생시설을 이용할 수 있었다. 오늘날 중요한 위생문제는 음료수의 수질개선과 공급의 문제로 염분을 뺀 물의 사용이 늘어남에 따라 이러한 문제는 점차 완화되고 있으나 하수처리, 전염병을 옮기는 곤충 또는 동물들의 관리가 여전히 문제로 남아 있다. 농촌지역에서는 말라리아·트라코마·위염·독감 등이 주요질병이었고 도시에서는 자동차 사고, 심장혈관병, 악성종양(암), 정신질환이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주택사정은 1970년대 석유수익금이 쏟아져들어오고 석유산업을 통해 건설기술에 숙련된 노동력이 생겨남으로써 개선되었지만 빠르게 늘어나는 인구를 충족시키기에는 여전히 부족한 상태이다. 새로운 주택이 많이 세워져 대부분의 옛 도시에서는 전통적인 주택 형태를 더이상 찾아볼 수 없다.

모든 나라에서 교육을 발전의 수단으로 인정하고 있으나 전통적인 성차별 때문에 여성의 취학률이 남성보다 훨씬 낮다. 문자해독률은 예멘과 같이 전혀 발전하지 못한 지역의 경우 아직 낮으나 사우디아라비아 같은 큰 석유수출국들에서는 50%에 이른다. 문자해독률이 70%가 넘는 작은 석유생산국들에서는 대부분 도시의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읽고 쓰는 법을 배우게 하고 있다.

특히 1970년대에는 발전을 추구하면서 동시에 전통적인 종교적·문화적 가치도 유지하기 위해 고등직업학교와 사범학교를 세웠으나 일반적으로 대학교육은 아라비아 반도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쿠웨이트·바레인에 사회보장제도가 있긴 하지만 선진국처럼 광범위하지 못하여 1980년대초까지도 대부분의 주민들이 사회보장제도의 혜택을 받지 못했다.

사막 문화

이슬람 시대 직전인 6~7세기초에 걸쳐 아랍 유목민의 위대한 시대가 존재했다(유목). 유목민들 가운데는 사막에서 자유를 누리기 위해 정착생활을 포기한 경우도 있었으므로 유목민들은 자신들이 정착종족들보다 우월하다는 신념을 지니고 있었다.

이들과 교역관계에 있던 정착민들이 이러한 가치체계를 받아들였으므로 이 시기에는 유목민적 가치관이 아라비아를 지배했다. 사막에 사는 종족들은 모두 같은 조상의 후손으로 여겨진다. 이슬람 시대 이전에는 일처다부제에 기초한 모계친족사회가 일부 존재했었으나 이슬람교에서 남성은 4명의 합법적인 아내와 여러 노예 첩들을 둘 수 있는 반면 여성은 1명의 남편만을 두도록 규정했으므로 초기 이슬람 시대에 부계 중심의 친족관계가 형성되어 그후 확고히 자리잡아갔다.

주민 모두가 유목민이었던 것은 아니며 반도 대부분 지역에 흩어져 있는 오아시스에서는 아열대농업이 이루어졌다.

서부 연안 근처의 일부 지역에서는 열대작물이 재배되기도 했다. 가장 유명한 오아시스는 야스리브로서 마호메트 시대 이후 메디나로 알려져 있다. 야스리브를 비롯하여 아라비아 전지역의 농업을 개척한 것은 유대교를 믿는 부족들인 듯하다. 종교 외에는 이웃 아랍 종족들과 전혀 다를 바가 없었던 이들 부족은 공격을 받을 때에는 그들 소유의 작은 요새나 성으로 피신했으나 평상시에는 자신들의 영토에서 살았다.

마호메트가 등장한 후 야스리브 오아시스에 인구가 집중되기 시작했으며 다른 오아시스들에도 일부 아랍인들이 거주했고 나머지는 유목생활을 영위했다.

오아시스 농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작은 정착촌들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역은 메카였다. 지금의 메카에는 소규모 농업이 행해지고 있으나 6세기에는 전혀 없었던 듯하며 원주민은 사원을 관리하고 섬기는 종족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뒤에 카바로 알려진 사원 주변에는 성역이 있었으며 사원을 순례하는 몇 개월은 성스러운 기간으로 지정되었다. 이 기간 중 성역에서는 피의 복수전이 잠시 멈추고 적대관계에 있는 부족들도 평화롭게 만날 수 있었으므로 메카는 점차 교역의 중심지가 되어갔다. 600년경에는 이미 메카의 상인들이 예멘에서 가자와 다마스쿠스로 가는 교역로를 독점했으며 또다른 교역로를 통해 메카와 페르시아 만 어귀가 이어졌다.

물질적으로 가난했기 때문에 중요한 예술적 표현형태로서 웅변과 가 발달했다.

웅변은 전해지지 않으나 이슬람 시대 이전의 훌륭한 시들은 아직까지 많이 남아 있다. 일반적인 시의 형태는 40~100행, 또는 그 이상의 행으로 이루어지는 송시(頌詩) '카시다'(qasida)로, 각 행마다 똑같은 운(韻)과 복잡한 운율구조가 반복되며 〈무알라카트 Mu⁽allaqāt〉라는 시집에서 가장 훌륭한 예들을 찾아볼 수 있다. 개별 작가들의 시를 모은 시집들도 전해진다.

카시다는 6세기 전반에 발달했다고 하지만 가장 오래된 시까지도 원숙함과 높은 수준, 표준화된 주제의 전개순서를 보여주고 있어 그보다 앞서 실험기가 있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일반적으로 카시다의 첫부분에서는 애조를 띤 서시(序詩) '나시브'(nasib)가 나와 감상을 위한 분위기를 만든다. 시의 중심부에서 시인은 자신을 비롯해 그가 속한 부족을 자랑하며 적대적인 부족을 풍자적으로 조롱하거나 자신의 후원자를 찬양한다.

시인의 예술성은 이렇게 고정된 주제들을 다루는 가운데 명백히 드러났는데, 주제를 다루는 방법 자체가 사막 생활이라는 좁은 한계 속에서 고결하게 행동하려는 노력의 반영이었던 듯하다. 시는 중심적인 예술형태로서 부족을 찬양하고 사막 유목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두는 것을 찬양하는 등 사회적으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다.

어떤 면에서 시인은 지금의 언론인과 비교될 수 있었으며 사람들은 뛰어난 시인의 풍자를 매우 두려워했다.

역사

아라비아 반도(Arabian Peninsula)
아라비아 반도(Arabian Peninsula)

아라비아 반도에 관한 고고학적 연구는 아직 초보단계지만 이 지역이 구석기 시대 수렵민들의 본거지였다는 증거가 있다.

페르시아 만에서 나온 발굴물들은 아라비아가 일찍이 BC 3000년 수메르 문명과 관련이 있다는 사실을 입증해준다.

이슬람 시대 이전 남아라비아(통일 전 남예멘의 옛 이름)에는 큰 왕국들이 번성했다. 남서부 모퉁이 지역에 성서에서 시바로 등장하는 사바 왕국을 비롯해 마인·카타반·하드라마우트 왕국 등이 수익이 많은 유향과 향신료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면서 번성했다.

예맨(Yemen)
예맨(Yemen)

사바인들은 마리브에 댐을 세워 정교한 관개시설을 갖추기도 했다. 사바 왕국은 BC 100년경 히미아르 왕국에 무너졌으며 AD 525년까지 남아라비아를 지배했던 히미아르인들은 그리스도교도인 아비시니아인들에게 함락되었다. 남아라비아에서 BC 400년경 낙타를 가축으로 길들이고 북부에서 유향과 몰약의 수요가 늘어남에 따라 남부에 있던 예멘과 오만 지역이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BC 330년 반도 남부 산악지대를 잇는 도로망이 생겨났으며 북부 지역에서는 나바테아인들이 홍해 연안을 거쳐 이집트와 시리아에 이르는 교역로를 지배했다.

아라비아의 주민들은 반도 바깥쪽 곳곳에서 온 여러 종족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정착하면서 이루어졌다. 반도내륙에는 홍해 부근 헤자즈 북부의 타무드족, 데단과 그 부근에 근거지를 둔 리히안족 같은 토착부족이 살고 있었다(리히안). 아라비아에 살지 않는 아랍인들도 오래 전에는 반도의 대부분 지역에 영향을 미치거나 그 지역을 지배했다.

외곽지역에 거주하던 나바테아인들과 팔미라인들이 북부와 중부 지방까지 영토를 확장하여 교역로를 냈으며 273년 팔미라가 무너지자 최초로 아랍어를 공용어로 받아들였던 트란스요르단의 라흐미드족이 이를 이어받았다. 528년 아라비아 북부 지역이 시리아어를 사용하는 그리스도교도 가산족의 손에 넘어갔다.

이슬람 시대는 622년 예언자 마호메트가 메디나로 피신하면서 시작되어 한 세대가 지나기 전에 아라비아 전지역이 이슬람화되었다.

그러나 마호메트 후계자들 사이의 투쟁으로 우마이야 왕조가 다마스쿠스를 중심으로 세워진 뒤 이슬람의 정치적 중심은 아라비아 반도 밖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그후 아라비아에는 여러 소왕국들이 세워졌고 부족들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으며 비(非)아랍 이슬람 강대국들의 침략이 이어졌다. 오스만 제국이 16세기 아라비아 전지역을 지배하려 했으나 남부만을 잠시 점령했을 뿐 내륙지역과 페르시아 만을 침략하지는 못했다.

17, 18세기에 페르시아인들이 바레인을 침략했고 16, 17세기에는 포르투갈인들이 오만을 지배하려 했으나 두 경우 모두 토착민 지도자들에게 패해 물러났다.

사우디인들이 와하비파의 영향으로 중앙 아라비아 전역으로 퍼져나가자 영국은 페르시아 만에 보호령을 두기 시작하여 1798년 무스카트(뒤의 오만), 1820년 트루셜스테이츠(뒤의 아랍에미리트)와 바레인, 1839년 아덴, 1899년 쿠웨이트, 1915년 마지막으로 사우디아라비아에 보호령을 설치했다(영국사). 영국의 보호령이 된 적이 없었던 뒤의 북예멘 지역은 1934년 독립을 인정받았다.

사우디인들이 1927년 독립을 이룩했으며 1961년 쿠웨이트, 1967년 남예멘, 1970년 오만이 차례로 독립했다. 영국이 철수하자 1971년 바레인, 카타르가 독립했고 아부다비·두바이·아지만·샤르자·움알카이와인·라스알카이마·푸자이라 등 7개 수장국으로 이루어진 아랍에미리트 연합국도 독립했다.

북예멘과 남예멘은 1990년 통일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