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검

부검

다른 표기 언어 autopsy , 剖檢

요약 사망의 원인을 결정하거나 질병의 결과를 관찰하고, 질병에 따르는 일련의 변화를 파악해 질병의 전개와 메커니즘을 파악하기 위해 행해진다. 질병 연구를 위한 최초의 해부는 BC 300년경 알렉산드리아의 의사인 헤로필로스와 에라시스트라토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어떠한 잘못이 있었는지를 가리기 위해 시체를 검사하는 법의부검은 1302년 볼로냐에서 시행된 것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조반니 모르가니는 1761년 인체에서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 기술했다. 병리학과 부검에서 세포변화가 질병을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는 세포설을 도입한 것은 독일의 병리학자인 루돌프 피르호였다. 현대의 부검은 전자현미경을 사용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작은 구조물과 관찰할 수 없는 부분까지 포함하는 분자생물학의 영역까지 확장되었다.

목차

접기
  1. 부검 절차
  2. 법의부검
  3. 목적
부검(autopsy)
부검(autopsy)

사망의 원인을 결정하거나 질병의 결과를 관찰하고, 질병에 따르는 일련의 변화를 파악해 질병의 전개와 메커니즘을 파악하기 위해 행해진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보존하기 위해 사체의 장기를 떼어내기는 했지만, 질병과 사망의 원인을 알아내기 위한 검사는 하지 않았다.

그리스인과 인도인들은 시체를 검사하지 않고 화장했다. 로마인·중국인·회교도들은 시체를 손상시키는 것을 금기시했으며 중세에는 인체의 해부가 허용되지 않았다. 질병 연구를 위한 최초의 해부는 BC 300년경 알렉산드리아의 의사인 헤로필로스에라시스트라토스에 의해 이루어졌다. 그러나 처음으로 환자의 증상(호소하는 내용) 및 징후(겉으로 드러나고 만져지는 것)를 '사망자의 질병 부위'의 검사 내용과 연관시켜본 사람은 2세기 후반 그리스의 의사인 갈레노스였다.

이것은 부검을 향한 큰 도약이었고 의학의 발전을 가로막는 고대의 장벽을 깨뜨린 것이었다.

르네상스 시대에는 해부학이 새롭게 부활되어 비정상적인 해부학적 변화(예를 들어 동맥류 등)와 정상 상태를 구별한 안드레아스 베살리우스의 저서 〈인체의 구조〉(1543) 등이 나왔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는 30번의 인체해부를 통해 '비정상적인 해부학'을 약술했고, 미켈란젤로 역시 여러 번의 인체해부를 했다. 일찍이 13세기에 프리드리히 2세는 매 2년마다 사형이 집행된 2구의 시체를 의과대학에 보내도록 했는데, 이들 의과대학 중의 한 곳인 살레르노의과대학에서는 모든 의사들을 참석시킨 가운데 '공동(共同) 해부'를 실시했다. 어떠한 잘못이 있었는지를 가리기 위해 시체를 검사하는 법의부검(法醫剖檢)은 1302년 볼로냐에서 치안판사의 요청에 따라 시행된 것이 최초라고 알려져 있다.

15세기 피렌체의 의사인 안토니오 베니비에니는 '사망의 원인'을 명맥히 밝히기 위해 15구(具)의 부검을 시행했으며, 사망자의 생전 증상과 부검에서 발견된 내용을 연관지어 생각했다. 제네바의 테오필 보네(1620~89)은 3,000구의 부검을 통해 얻어진 관찰결과를 문헌을 통해 대조했다. 이렇게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많은 임상적·병리적 내용이 정리되어 근대 의술의 문이 열리게 되었다.

부검은 근대 병리학의 아버지인 조반니 모르가니에 의해 더욱 발전되었는데, 그는 1761년 인체에서 육안으로 관찰할 수 있는 내용에 대해 기술했다.

그의 방대한 저서인 〈해부학 연구에 바탕을 둔 질병의 원인과 발병장소에 관하여〉에서는 부검 때 나타난 해부학적인 관찰과 질병의 증상을 약 700명의 환자를 통해 비교했다. 따라서 모르가니의 저작에서는 환자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가 그 이전의 문헌 연구나 주석의 비교를 대체하게 되었다.

빈의 카를 폰 로키탄스키에 이르러 육안에 의한 부검은 절정에 달했다. 로키탄스키는 현미경을 거의 사용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주장한 체액설(體液說)에 몰두했다. 프랑스의 해부학자이자 생리학자인 마리 F. X. 비샤(1771~1802)는 질병 연구에서 여러 기관계와 조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병리학과 부검에서 세포변화가 질병을 이해하는 기초가 된다는 세포설을 도입한 것은 독일의 병리학자인 루돌프 피르호(1821~1902)였다.

그는 질병 연구에서 병에 걸린 조직의 구조를 연구하는 병리해부학만이 발달하는 것을 경고하면서, 미래의 병리학은 생물체의 기능에 대해 연구하는 생리학적 병리학이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대의 부검은 전문화된 현대 기초과학의 모든 도구와 지식을 포함하는 영역으로 발전해 전자현미경을 사용하지 않으면 보이지 않는 작은 구조물과 관찰할 수 없는 부분까지 포함하는 분자생물학의 영역까지 확장되었다.

부검 절차

부검하는 절차 자체는 20세기 동안 거의 변하지 않았다. 첫번째 단계는 어떤 이상이나 외상이 있는지 외관을 육안으로 살피고 그 내부와 장기에 대해 자세히 기술하는 것이며, 그뒤에 세포와 조직의 현미경 검사를 포함한 더 자세한 검사를 시행하는 것이 보통이다. 해부를 하는 주된 절개선도 변하지 않았다.

몸통에 대해서는 Y형의 절개를 한다. 'Y'형의 양쪽 가지는 겨드랑이나 어깨 바깥쪽에서 시작해 유방의 아래쪽을 지나 몸통의 중앙에 있는 흉골(胸骨)의 끝에서 만난다. 이 접점에서 절개를 계속해 하복부를 지나 외음부의 사타구니에 이를 때까지 시행한다. 여기서부터는 2가지 다른 방법이 있다. 1가지 방법은 각각의 장기를 분리해 떼어낸 뒤 절개와 실험을 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일괄처리법이라는 방법인데, 이것은 흉부(胸部)의 모든 장기를 한꺼번에 떼어내고 복부의 장기를 다른 덩어리로 떼어내 검사하는 것이다. 목과 머리, 그리고 팔 쪽으로 가는 큰 혈관은 결찰(結紮:묶는 것)하고 장기들을 한 묶음으로 떼어내 박리한다. 목에 있는 장기들은 제자리에 두고 검사하거나 아래쪽에서부터 떼어낸다. 그뒤 해부를 진행하는데, 외견상 특별한 이상이 없는 한 등쪽에서부터 시행한다. 대개 장기는 그룹별로 같이 떼어내 검사하며 이들의 기능적인 관계에 손상이 있는지를 결정하게 된다. 뇌는 그 자리에 둔 채로 검사한 뒤 연결부위를 떼고 통째로 들어낸다. 척수도 떼어낼 수 있다.

다음으로는 각 장기의 겉 모양과 단면을 검사하고 동맥·림프관·근막·섬유조직을 포함한 혈관구조와 신경을 검사한다. 배양과 화학분석, 그리고 다른 검사들을 위해 검체를 채취한다. 이러한 과정을 마치고 나면 모든 장기들을 즉시 원상태로 돌려놓고 절개선을 조심스럽게 봉합한다.

시체는 적당하게 복구시키고 나면 부검에 따른 보기 흉한 흔적이 남지 않아야 된다.

육안에 의한 검사가 끝나고 나면 상반된 소견들을 대조해 균형을 맞춘 뒤 병적인 소견을 열거하여 정리하는데, 이 목록은 잠정적인 해부학적 진단이 된다. 이 진단들을 비슷한 것끼리 모아 중요한 것부터, 그리고 사건의 순서에 따라 배열한다. 이 목록을 정확히 작성하기 위해 때로는 간단한 현미경 검사를 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그것이 아니었다면 사망하지 않았을 병변, 즉 사인(死因)을 기록한다. 부검은 법적인 문제가 있는 경우뿐만 아니라 법적인 필요가 없는 경우에도 중요한 것이다. 조직학적·화학적·독물학적·세균학적 검사 그리고 바이러스 검사를 모두 완료하고 나서 앞서 내린 잠정적인 해부학적 진단상의 오류를 바로잡아 최종적인 해부학적 진단과 사망 원인을 기록한다. 부검의 내용과 임상적 양상을 연관시켜 서술한 '임상·병리 관계'에 결론을 기록하게 된다.

법의부검

법의 병리학자는 단순한 사망원인뿐만 아니라 사망과 관련이 있든 없든, 형사 또는 민사 소송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모든 사실을 파악해야 한다.

사망의 원인은 시체를 열어본다고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며, 독립적인 유형의 물질도 아니고 경계가 분명한 것도 아니다. 이것은 어떤 메커니즘이나 현상에 대한 개념(의견) 같은 것으로, 그 해석에서 서로 다를 수 있는 주관적인 것이다. 법적인 부검에서는 치밀하고 자세한 기술(記術)과 측정을 하여 문서화해야 한다(→ 법의학).

의료법적인 사례에서는 사망 당시의 상황에 대한 조사경험이 중요한데, 사망이 일어난 주위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사망방법을 알아내는 데 결정적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당시의 상황이나 주위 환경이 분명한 정보를 제공해준다면 부검 자체가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의료법적인 부검에서는 사진기록이 중요하다.

의료법적인 검시는 사망원인의 가능성이 있는 다른 모든 원인을 배제하기 위해서 완벽하게 시행되어야 하므로 부분적인 검사를 해서는 안 된다. 사망자의 신원과 신체에서 얻어진 모든 검체는 매우 중요하다. 사망시각과 가능하다면 혈액형도 확인해야 한다. 모든 부검, 특히 법의부검에 있어서는 나타난 소견을 실제 부검을 하는 동안에 속기사에게 받아 적게 하든지 녹음장치에 기록하게 해야 한다. 이러한 기록들은 법적인 증거가 되는 일이 흔히 있으므로 반드시 완벽하고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

목적

부검은 한 사람에게서 증거로 나타난 특정 질환을 다루는 것이며, 단순한 통계적 평균값 이상의 것이다. 잘못을 발견해내고 새로운 질병이나 질병의 새로운 형태를 찾아내며 미래의 연구를 선도해나가는 데 있어서 모든 부검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환율과 사망률의 통계는 부검이 기초가 되었을 때 정확성과 신뢰성을 가지게 되며, 종종 전염병과 유행병의 첫 지표가 되기도 하고, 의학교육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따라서 부검은 단순히 사망원인을 알아내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의료법적인 부검은 하나의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있지만, 대개의 부검은 더 많은 목적을 가지고 있다(→ 전문교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