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

다른 표기 언어 Minimalism

요약 최대한도로 꾸밈과 표현을 제거하여 예술 형태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를 탐구하는 것을 특징으로 하는 예술 사조. 1960년대에 미국을 중심으로 발달했으며,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형태와 선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으로, 미니멀 음악에도 뚜렷한 영향을 주었다. 한국에서는 동양적 정서와 결합하여 단색화라는 새로운 유파를 낳았다.

목차

접기
  1. 기원
  2. 배경
  3. 미니멀리즘 회화
  4. 미니멀리즘 조각
  5. 음악에 끼친 영향
  6. 의의
  7. 한국의 미니멀리즘
    1. 역사
    2. 주요 작가
    3. 경과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

기원

극도로 단순한 형태의 표현과 즉자적·객관적인 접근을 특징으로 하는 미술 사조. 러시아의 화가 카지미르 말레비치의 1913년 구성 작품에서 출발했다. 흰색 바탕에 검은색 4각형이 그려진 이 그림은 현대미술의 환원주의적 경향을 최초로 보여준 작품이었다.

배경

이후 잠복해 있던 환원주의적 경향은 1950년대 전반을 통해 미국의 전위미술을 지배했던 직관적·자발적인 행위를 바탕으로 하는 미국의 추상표현주의의 한 부류인 액션 페인팅에 대한 반발로 촉발되었다. 잭 영거먼, 엘스워스 켈리, 프랭크 스텔라, 케니스 놀런드, 알 헬드, 진 데이비스 등은 하드에지 회화(hard-edge painting)각주1) 를 통해서 회화에서의 미니멀리즘을 보여주었고, 조각가 도널드 저드, 카를 안드레, 댄 플레빈, 토니 스미스, 앤소니 카로, 솔 레위트, 존 매크래컨, 크레이그 코프먼, 로버트 듀런, 로버트 모리스 등은 프라이머리 스트럭처(primary structure)각주2) 를 통해서 미니멀리즘 조각의 방향을 제시했다.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

미니멀리즘 회화

미니멀리즘 회화는 평면성을 강조하고 보는 사람의 직접적이고 순수한 시각적 반응을 위해서 회화적 접근보다는 기하학적이고 단순한 형태와 선을 사용했다. 그들은 추상표현주의의 색면 추상화가인 바넷 뉴먼과 애드 라인하르트의 침착하고 감정을 나타내지 않는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 전체적으로 하드에지 회화는 평평한 표면에 크고 단순화된 기하학적인 형태, 정확하고 날카로운 윤곽, 밑칠하지 않은 캔버스에 원색을 직접 사용하는 것 등이 특징이다. 미니멀리즘은 서정적이거나 수학적인 구성도 화가의 개인적 표현이 되기 때문에 거부한다는 점에서 일반적인 기하학적 추상과 구별된다.

미니멀리즘 조각

액션 페인팅이 너무 개인적이고 비실체적이라고 믿는 미니멀리즘 작가들은 예술작품에는 그 자체 이외의 다른 어떤 것도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주장했다. 미니멀리즘 조각가들은 이처럼 완전히 객관적이며 비표현적인 작품을 시도했다. 미니멀리즘 조각은 유리섬유나 플라스틱·판금(板金)·알루미늄 등을 원상태 그대로 두거나 그 표면에 원색의 공업용 물감을 고르게 채색하는 정도로 작업하였으며, 결과물은 극도로 단순하고 기하학적인 형태로 이루어졌다.

음악에 끼친 영향

미니멀리즘은 에릭 사티의 음악과 존 케이지의 미학과 함께 미니멀리즘 음악에도 뚜렷한 영향을 주었다. 현대 음악의 복잡하면서도 지적으로 지나치게 세련된 양식에 반발한 미니멀리즘 작곡가들은 극도로 단순하고 이해하기 쉬운 음악을 만들어내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라 몬트 영은 약간의 음조를 발생시킨 후 그것을 전자로 며칠 혹은 몇 주일 동안 유지시켜 주는 곡인 〈연속진동환경 continuous frequency environments〉을 작곡했다. 그는 이 음조에 거의 아무것도 덧붙이지 않았고, 세련된 편곡이나 변주도 없앴다.

그와 마찬가지로 모턴 펠드먼도 변주를 없애고, 서로 관련 없는 부드러운 소리를 통해 악기의 음색을 최대한으로 탐색했다. 다른 작곡가인 필립 글래스, 스티브 라이크, 코넬리우스 카듀, 프레더릭 레즈위스키 등은 인도와 발리, 서아프리카의 음악에 영향을 받았다. 그들은 단순한 유형의 화성과 선율을 사용했으며, 비슷한 곡조가 반복되는 음악을 작곡했다.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운동화
미니멀리즘 스타일의 운동화

의의

음악과 시각예술 두 분야에서 미니멀리즘은 예술형태의 가장 본질적인 요소를 탐구하려는 시도였다. 시각예술에 있어서의 미니멀리즘은 회화와 조각의 순수한 객관적·시각적 요소만을 드러내기 위해 개인적이고 행위적인 요소를 제거했다. 음악에 있어서는 대체로 서구의 청중에게는 낯선 음악적 요소인 음색과 리듬을 탐구하기 위해 형식과 전개에 대한 전통적인 방법을 거부했다.

한국의 미니멀리즘

역사

주로 회화의 부정으로 시작되어 조각 위주로 성립된 서구의 미니멀리즘은 1970년대 들어 한국에 소개되었다. 서구에서는 미니멀리즘의 개념에 대한 논란과 평가가 한창 진행중이었던 가운데 한국 화단에서는 서구 미니멀리즘 미술의 형식과 논리를 변형시킨 한국적 변이형태가 나타났다. 1975년 권영우 · 박서보 · 서승원 · 이동엽 · 허황 등 5인의 작가가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 백색전>을 개최하면서 한국적 미니멀리즘의 싹을 틔웠고, 이후 2년뒤 도쿄에서 열린 <한국 현대미술의 단면전>의 배후에서 지원한 이우환의 영향으로 단색화 운동이 시작되었다. 한국 모더니즘 미술의 성격규정에 있어 강한 논리성을 띠고 대두한 이 경향의 미술을 흔히 단색화(모노크롬 회화)라고 불렀다.

주요 작가

한국적 미니멀리즘인 단색화 운동의 핵심 인물은 이우환이었다. 그는 전통적 미의식, 표현, 작가의 감정, 영감은 아무런 의미도 없다고 보았고, 작가의 철저한 자기부정과 극복을 통해 ‘관계항’을 드러내는 모순적 행위를 예술이라고 보았다. 이러한 모노파의 논리가 이후 동양적 초월과 선의 개념과 결합하면서 무위자연과 같은 전통적 자연관과 동양화의 공간 감각이 단색파의 화면으로 나타난 것이 한국의 미니멀리즘이었다. 따라서 한국의 미니멀리즘은 미국이나 일본의 미니멀리즘과는 다른 양상으로 발전했다. “에꼴 드 서울”의 리더였으며, 한국 단색화 운동의 구심점이었던 박서보는 이우환과 동료이자 경쟁자로서 자신의 미니멀리즘을 추구했고, 1973년 묘법 시리즈를 통해 우리나라 백색 단색화의 한 전형을 보여주었다. 그 외에도 정상화·하종현·윤형근 등이 단색화 운동을 이끈 주역들이었다.

경과

한국적 미니멀리즘은 이우환과 단색화의 깊은 영향 속에서 성립되었으나, 이후 단색화와도 다른 세계를 보였으며, 서구의 미니멀리즘과도 본질에서 차이를 보였다. 평론가 이일은 한국적 미니멀리즘을 서구의 미니멀리즘을 극복하는 ‘포스트미니멀리즘’이라고 부르면서, 서구의 자극에 대응하여 전통을 접목시킨 고유의 모더니즘 미술로 보기도 했다. 단색화는 1970년대말로 접어들면서 양식의 획일화, 몰개성적 집단주의, 논리의 독단성 등을 드러내 화단 전체를 경직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많은 비판을 받기도 했으나, 2010년 이후 단색화에 대한 관심이 촉발되면서 새롭게 그 가치가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