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자이크

모자이크

다른 표기 언어 mosaic

요약 모자이크는 작은 조각들 하나하나가 전체 무늬를 이루었을 때 장식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BC 8세기 잔돌로 된 모자이크가 최초로 만들어졌다. 4세기경 더욱 다양한 효과를 위해 붉은색·초록색을 칠한 조약돌이 함께 사용되었다.
헬레니즘 시대 때 처음 사용된 유리는 비잔틴 시대까지 가장 중요한 재료였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금박·은박 유리 테세라가 발명되었다. 로마인은 모자이크를 다양하게 사용했고 특히 바닥에 많이 썼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 때 교회장식으로 각광받았던 벽면 모자이크는 비잔틴 시대를 통해 장식예술의 중요한 형태가 되었다.
19세기에 많은 공공건물이 모자이크 장식을 하면서 공장에서 타일·유리 테세라가 재생산되었다. 20세기 멕시코의 현대 건축물들은 주로 천연석을 사용한 모자이크 장식이 많았다.

모자이크
모자이크

이 조각들은 보통 작은 4각형·3각형, 또는 다른 일정한 형태(tesserae : 모자이크용 조각)로, 회반죽 또는 접착제를 발라놓은 벽이나 바닥의 표면에 무늬를 맞추어 붙인다(테세라). 이것은 요형(凹形)의 면에 조각들을 집어넣은 것이 아니라 표면 위에 붙인다는 점에서 상감(象嵌)과는 다르다.

모자이크는 작은 조각들 하나하나가 전체 모자이크 무늬를 이루었을 때 그 장식적인 의미를 갖게 된다. 모자이크는 회화와 가장 가까운 예술형태로 무늬나 형태를 평면적으로 표현하며 회화처럼 규모가 큰 표면장식에 적합한 기법이다. 그러나 화가와는 달리 모자이크 제작자들은 재료의 물리적인 한계 때문에 다양한 색깔을 구사할 수 없고, 회화에 비해 원거리 효과는 좋으나 섬세한 명암의 변화는 얻기가 어렵다.

비잔틴풍 모자이크에서는 빛을 받아들이는 유리 테세라를 이용하고, 중간 색조를 제거한 것은 회화에서보다 더 밝은 효과를 얻게 했다. 이처럼 모자이크도 각각의 모든 장식매체처럼 그 독특한 성질이 있어서 그곳에 맞는 장식기능을 가진다.

BC 8세기 잔돌로 된 모자이크가 최초로 만들어졌으며 5세기에는 그리스의 공예가들이 그 기법을 성숙시켰다. 다듬지 않았으나 같은 크기의 흑·백색 잔돌 조각들이 바닥과 도로포장에 쓰이기 시작했고, 이렇게 제한되어 보이는 기법으로도 그들은 1~2㎝ 크기의 작은 조약돌을 쓰고 검은 돌로 테를 둘러 정교하고도 복잡한 무늬를 만들어냈다.

4세기경 더욱 다양한 효과를 주기 위해 붉은색·초록색을 칠한 조약돌이 함께 사용되었다(그리스 예술). 고대 유물을 통해 모자이크 기법이 본래 내구성이 있어야 하고 마모 방지가 우선적으로 고려되어야 하는 바닥이나 도로포장에 쓰였음을 볼 수 있다. 석재 특히 대리석과 석회암 등이 그 재료로 적합했다. 그것들은 작게 자를 수 있었고 그것들이 지닌 천연색으로 자연스런 기본 색조까지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유리는 헬레니즘 시대에 모자이크에 처음으로 사용되기 시작했으며 비잔틴 시대에까지 가장 중요한 모자이크의 재료였다.

유리는 어떤 색도 낼 수 있기 때문에 예술가가 이용할 수 있는 모자이크 색채에는 제한이 없어졌다. 유리는 가벼워서 내구성을 별로 중요시 하지 않는 벽면용으로는 적당하지만 바닥용 석재보다 실용적이지 못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금박·박 유리 테세라가 발명되었는데, 이 반사경은 빛의 강도가 훨씬 더 강렬해서 비잔틴 시대의 금박유리는 매우 반짝이는 효과를 주는 모자이크의 하나가 되었다. 6세기 비잔틴 시대의 작가들은 보통 금박 바탕에 모자이크를 만들기까지 했다(금세공품). 그들은 또한 테세라가 최고로 빛을 반사할 수 있는 각도를 찾아 접착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로마인들은 모자이크를 광범위하게 사용했고 특히 가옥의 바닥에 많이 썼다.

훌륭한 제작품들이 폼페이·헤르쿨라네움·오스티아에 남아 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벽면 모자이크가 교회장식으로서 각광받기 시작했고 비잔틴 시대를 통해 장식예술의 중요한 형태로 남게 되었다. 비잔틴 시대의 뛰어난 모자이크를 라벤나의 산아폴리네르누오보 교회와 산비탈레 교회에서 볼 수 있다. 이 모자이크의 매끈한 표면은 그 건축물의 본질적인 부분을 이룬다. 후기의 것으로서 두드러진 것은 12세기에 베네치아 근처의 토르첼로, 11세기 아테네 근처의 다프니, 11~14세기에 베네치아의 산마르코 대성당에 만들어진 것들이다.

이 비잔틴풍 모자이크의 영향이 유럽 전역에 널리 퍼졌으나 사실주의를 추구하는 르네상스 시대에 비잔틴 예술의 장식적인 특성에 반발이 일어나 점차 인기를 잃어갔다(로마 미술).

19세기에 많은 공공건물이 모자이크 장식을 하면서 공장에서 타일과 유리 테세라가 재생산되어 모자이크가 다시 인기를 되찾았다. 콜럼버스 이전 시대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은 석류석·터키옥·진주모와 같은 준보석 모자이크를 특히 좋아했고 이것들은 보통 방패·가면·신상(神像)과 같은 작은 물건의 표면장식에 이용했다(아메리카 대륙 발견 이전의 문명). 20세기 멕시코의 작가들은 모자이크 장식을 선호하여 멕시코의 현대 건축물을 주로 천연석을 사용한 모자이크로 많이 장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