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크레티우스

루크레티우스

다른 표기 언어 Lucreti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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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미상
사망 미상
국적 로마

요약 루크레티우스는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사상과 철학을 다룬 장편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로 유명하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는 에피쿠로스의 자연학을 가장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는 작품으로 에피쿠로스의 윤리학설과 논리학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또한 자연과 본질에 대한 무지 때문에 생긴 영혼과 신들에 대한 편견을 비판하였으며 고대 원자론적 입장에 기반하여 유물론적 세계관을 전개했다. 시를 제외하고는 생애에 대해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유명한 라틴 성직자 히에로니무스가 쓴 연대기 BC 94년 편에는 루크레티우스가 정신에 이상이 있었으며, 가끔 제정신이 돌아올 때 몇 권의 책을 써 키케로가 나중에 교정했고, 44세에 자살했다고 씌어 있으나 이 또한 확실하지 않다.

유일한 장편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De rerum natura〉로 유명하다. 이 시는 그리스의 철학자 에피쿠로스의 자연학을 가장 완벽하게 보존하고 있는 작품으로 에피쿠로스의 윤리학설과 논리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다.

시를 제외하고는 알려진 바가 거의 없다. 몇몇 행적이 전해지기는 하지만 이것마저도 정확하지 않다. 유명한 라틴 교부 히에로니무스(제롬)가 쓴 연대기 BC 94년(또는 BC 96/93)편에는 루크레티우스가 이해에 태어나 그후 미약 때문에 머리가 돌았으며 가끔 정신이 들 때 몇 권의 책을 써 키케로가 나중에 교정했고, 44세(BC 51/50)에 자살했다고 씌어 있다. 문법학자이자 수사학 교사인 아일리우스 도나투스는 베르길리우스의 전기 〈생애〉에서 베르길리우스가 17세가 되어 성년복(toga virilis)을 입던 바로 그날(BC 54/53) 루크레티우스가 죽었다고 전하고 있다.

그러나 도나투스는 루크레티우스가 죽은 해의 콘술(집정관)이 베르길리우스가 태어난 해의 콘술(BC 55, 크라수스와 품페이우스)과 같은 사람들이라고 함으로써 스스로 앞뒤가 맞지 않는 말을 하고 있다. BC 55년이라는 주장은 BC 54년 키케로가 동생에게 보낸 답장(〈아드 퀸툼 프라트렘 Ad Quintum fratrem〉 2·9·3) 속의 한 문장을 통해 어느 정도 확인할 수 있다. "루크레티우스의 시들은 네가 편지에서 쓴 대로 천재성이 돋보이고 예술적인 면모가 뛰어나다." 이 문장은 루크레티우스가 이미 죽었다는 점과 키케로가 루크레티우스의 시 발간에 관여했을지도 모른다는 점을 암시해준다.

키케로가 남긴 이 한마디를 빼고는 동시대인 중에서 루크레티우스라는 이름을 언급한 사람은 "루크레티우스와 카툴루스가 죽고 난 뒤"라고 말한 로마의 역사가 코르넬리우스 네포스(〈아티쿠스 Atticus〉 12·4)밖에 없다. 루크레티우스가 동시대 사람들 가운데 이름을 인용한 유일한 인물은 그에게 시를 헌정한 멤미우스라는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은 루크레티우스가 우정을 '맺고 싶어한' 가이우스 멤미우스(BC 58년의 프라이토르 술라의 사위로 카툴루스와 가이우스 헬비우스 킨나의 후원자)인 것 같다.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이 저작의 제목은 다원론 자연철학자 엠페도클레스가 쓴 교훈적 서사시와 같은 제목을 가진 에피쿠로스의 주요저서 〈자연에 관하여 Peri physeōs〉의 제목을 번역한 것이다. 루크레티우스는 엠페도클레스를 찬양하긴 했지만 스승 에피쿠로스에게 보낸 찬양과 비길 바는 아니었다.

루크레티우스는 자신의 이야기를 6권으로 나누어 썼다. 각 권은 아주 세련된 서론으로 시작한다.

1, 2권에서는 원자론에 입각한 우주의 주요원칙들을 확립하고 헤라클레이토스, 엠페도클레스, 아낙사고라스 등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우주론을 반박하며, 에피쿠로스 학파와 경쟁관계에 있던 도덕주의 스토아 학파를 은근히 공격한다. 3권에서는 영혼의 원자적 구조와 소멸성을 주장한 뒤, "죽음은 우리에게 무이다"라는 자신에 찬 설교로 끝을 맺는다. 4권에서는 감각·사고·육체 기능 등의 역학을 기술하고 성적 욕망을 비난한다. 5권에서는 이 세계와 천체의 창조 및 활동, 삶과 사회의 발전을 그리고 있다. 6권에서는 땅과 하늘의 놀라운 현상, 특히 천둥과 번개를 설명하고 있다.

이 시는 비너스에 대한 기도를 통해 봄과 탄생을 묘사한 도입부와는 대조적으로 죽음에 대한 음울한 서술인 아테네의 전염병에 대한 묘사로 끝맺고 있다.

루크레티우스 시의 논변

무에서 나오거나 무로 돌아가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주에는 무한히 넓은 빈 공간과, 종류는 한정되어 있지만 그 수가 무한히 많고 더 이상 쪼갤 수 없는 물질 입자들(또는 원자들)이 있다.

원자는 모양·크기·무게만 다를 뿐, 꿰뚫을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고 영구불변하여 더 이상 물리적으로 나눌 수 없는 최소의 입자나 단위로 구성되어 있다(→ 원자론). 큰 원자는 이런 입자를 많이 갖고 있지만 미세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만일 모든 원자가 이따금 극미한 정도로 이탈하지 않았다면, 원자는 무한한 공간 속에서 끊임없이 아래로 움직여 결코 충돌하지 않았을 것이고 원자체계도 형성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러한 우연적 이탈이 무수히 많은 세계를 산출하며, 인과 고리를 어지럽혀 자유의지가 발생할 여지를 제공한다. 결국 모든 사물은 운동하는 원자들의 체계인데, 이 원자들은 빈 공간의 크고 작은 간격에 의해 분리되어 있으며 그 모양새에 따라 크거나 작은 형태로 결합한다. 모든 체계는 분리될 수 있기 때문에 소멸할 수 있고(신은 예외), 모든 변화는 불변적인 원자들의 가감이나 재정돈으로 설명할 수 있다.

영혼은 극히 섬세한 원자로 이루어져 있으며 서로 연결된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하나는 육체 전체에 퍼져 있는 아니마(anima)로서 감각을 불러일으키는 원인이며, 다른 하나는 가슴 속에 있는 아니무스(animus)로서 의식의 중심을 이룬다. 영혼은 육체와 함께 생겨나서 자라다가 죽을 때는 '연기'처럼 흩어져버린다.

신들은 존재하지만, 세상을 만들거나 조종하지는 않는다

극히 정교한 원자체계인 신은 인간사에 관심을 두지 않고 멀리 떨어져 살면서 인간에게 완전한 행복(정신적 두려움, 정서적 혼란, 육체적 고통이 없는 상태)의 이상적 삶을 본보기로 보여준다.

인간은 감각적 지각을 통해 지식을 얻고 특정한 규칙에 따라 이성을 통해 논증한다

감각은 틀릴 수 없지만 이성은 잘못된 추론을 할 수 있다. 냄새가 코를 찌르는 것과 같이 사물은 표면에서 피막을 발산하여 눈을 찌르기 때문에 볼 수가 있다.

분리된 원자는 발산입자를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감지할 수 없다. 감각은 물체의 속성을 지각하고, 이성은 지각된 물체운동을 설명하기 위해 원자와 진공을 추론한다.

인간은 본래 쾌락을 추구하며 고통을 회피한다

인간의 목표는 결국 쾌락을 극대화하고 고통을 극소화하는 균형잡힌 생활을 영위하는 것이다. 이러한 생활은 인간이 철학을 통하여 죽음과 신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을 때만 이루어진다.

루크레티우스 시의 문학적 성격

언어 양식과 시풍이 탁월하다. 루크레티우스는 에피쿠로스의 대담하고 추상적인 그리스어 산문을 철학적 어휘가 없었던 당시 라틴어의 6보격(六步格)에 맞추어 넣는 문제에 부딪쳤으나 평범한 단어들을 기술적으로 사용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했다.

즉 '원자체계'에 대해서는 '콘실리움'(concilium:사람들의 모임)을, '원자'에 대해서는 '프리모르디아'(primordia:초벌로 엮은 피륙)라는 용어를 사용했고, 그밖에 필요한 말은 만들어내기도 했다. 시의 어법과 양식은 고대 로마 시인들, 특히 로마 시의 대부 퀸투스 엔니우스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두운과 유운(類韻), 엄숙하면서도 때로는 운율상 편리한 고어체, 옛 구문 등을 자유자재로 사용했고, '살짝 잠든 개의 마음', '숲을 무너뜨리는 폭풍'과 같이 아우구스투스 시대의 기호에는 맞지 않았던 풍부한 합성형용사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루크레티우스는 호메로스, 극작가 아이스킬로스와 에우리피데스, 시인이자 비평가 칼리마코스, 역사학자 투키디데스, 의사 히포크라테스 등을 모방하거나 흉내냈다. 그의 6보격 시는 라틴어에 운율을 도입한 엔니우스의 시와 이를 완성한 베르길리우스 시의 중간단계에 있으며, 음의 생략이 심하고 특이한 작시법이 들어 있을 뿐 아니라 리듬이 맞지 않은 부분도 있다. 루크레티우스가 베르길리우스에게 끼친 영향은 특히 그의 〈농경시 Georgics〉에 스며들어 있다. 베르길리우스가 "사물의 원인을 파악할 수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농경시〉 2권, 490)라고 한 것은 분명히 루크레티우스를 암시하고 있다.

그는 무지하고 불행한 사람들에 대해 꾸밈없는 연민을 가지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의 도덕적 열정은 에피쿠로스에 대한 감사에 나타나 있으며, 사후에 영원한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협박하면서 종교적 두려움을 설교한 예언자, 천둥이나 번개에 대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던 에트루리아 점쟁이, 신의 섭리를 믿는 스토아 학파나 영구불멸한 영혼의 환생을 가르친 플라톤주의자 및 피타고라스 학파 등 엉터리 철학자 등에 대한 경멸에서도 나타나 있다. 이 시에서 종교(religio)는 우선 하늘나라에서 무시무시한 머리를 내밀고 있는 괴물로 나타난다.

이 귀신을 보고도 두려워하지 않은 에피쿠로스는 '세상의 불타는 성벽'을 넘어 무한한 우주를 돌아다니다가 자연의 성채로 쳐들어가서는,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지식과 아울러 사물의 서로 다른 속성들 즉 실재를 비실재와 구분하는 '깊숙한 곳에 놓인 경계석'에 대한 지식을 갖고 개선했다. "따라서 종교는 우리의 발에 짓밟혔으며, 에피쿠로스의 승리는 우리를 하늘높이 쳐받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