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지애나 매입

루이지애나 매입

다른 표기 언어 Louisiana Purchase

요약 미국이 1803년 미시시피 강 서부 유역의 광대한 영토를 프랑스로부터 사들인 거래.

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
루이지애나 매입(Louisiana Purchase)

214만 4,520㎢ 달하는 광대한 지역으로 미국은 에이커 당 3센트도 안 되는 값으로 이곳을 사들였다.

이 매입은 미국 역사상 최대의 토지 거래였다. 이곳을 구입함으로써 미국의 크기는 2배가 되었고 물질적·전략적으로 미국이 상당히 강화되었으며 서부 확장에 강력한 추진력이 생기게 되었다. 또한 이 매입으로 연방 헌법이 확대해석될 수 있다는 원리가 확인되었다.

루이지애나는 오래전부터 유럽이 노리던 곳이었다.

17, 18세기에는 탐험과 이주를 통해 프랑스가 미시시피 강 유역 대부분을 지배하고 있었다. 프랑스의 루이지애나 지배에 대한 최초의 심각한 위협은 7년전쟁 동안에 일어났다. 결국 프랑스는 1762년 미시시피 강의 서쪽에 있는 루이지애나를 스페인에게 넘겨주었으며 1763년에는 북아메리카에서 프랑스가 가지고 있는 나머지 모든 영토를 사실상 영국에게 넘겨주었다. 그러나 이러한 조정은 일시적이었다. 이후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군사 지도력으로 프랑스는 다시 힘을 갖게 되었고 1800년 10월 1일 나폴레옹은 마지못해 하는 스페인의 카를로스 4세를 설득하여 루이지애나를 프랑스에게 다시 돌려주게 했다.

카를로스 4세는 프랑스가 그 지역을 제3국에게 양도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구두(口頭)로만 동의했다. '산일데폰소 조약'으로 알려진 이 영토 반환 조약으로 상업적으로 중요한 항구로 번창하고 있던 뉴올리언스뿐만 아니라 전략 요지인 미시시피 강 어귀가 프랑스로 넘어가게 될 예정이었다.

영토가 프랑스에게 반환될 것이라는 소식이 워싱턴에 알려지자 미국측은 깊은 우려를 갖게 되었다.

이전 12년 동안 미국인들은 서부로 계속 뻗어나가 컴벌랜드·테네시·오하이오 같은 강들의 유역에까지 이르렀었다. 이곳에 새로 거주하게 된 사람들의 생존 자체는 미시시피 강을 자유로이 이용하고 뉴올리언스에서 그들의 수출품을 다른 배에 옮겨 실을 수 있는 권리에 달려 있었다. 1795년에 맺어진 산로렌초 조약에 의하면 스페인은 미국에게 미국 항구에서 보내지는 상품들을 미시시피 강 어귀에서 관세없이 실을 수 있고, 또한 뉴올리언스에서 다른 배에 옮겨 싣기 위해 상품들을 위탁하거나 일시 보관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했었다.

그러나 1802년 스페인이 미국의 위탁권을 사실상 없애게 되자 서부 지역에서는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스페인 대신 멕시코 만으로 나 있는 전략적 창(窓)을 가지게 될 강국 프랑스와 협상해야 할 필요를 느꼈다.

제퍼슨은 파리에 있는 로버트 R. 리빙스턴 공사에게 다음과 같은 2단계의 조처를 취할 것을 지시했다.

첫째, 만약 산일데폰소 조약이 완결되지 않았으면 나폴레옹의 각료인 샤를 모리스 드 탈레랑에게 접근하여 영토 반환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고, 둘째, 만약 영토가 스페인에서 프랑스로 이미 넘어갔다면 적어도 뉴올리언스만이라도 사들일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탈레랑과 직접 협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고 리빙스턴은 수개월 동안 프랑스와 미국 사이의 협상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가능성에만 만족해야 했다.

그러나 스페인 총독이 미국의 위탁권을 취소했다는 소식이 리빙스턴에게 전해지자 이러한 기대감마저도 사라져버렸다. 이러한 상황에서 리빙스턴이 내린 최악의 가정, 즉 나폴레옹 보나파르트가 조약을 주도했으며 그의 다음 행동은 미시시피 강을 모든 미국인들에게 폐쇄하는 것이리라고 생각한 것은 당연했다. 리빙스턴은 최후의 수단을 사용했다. 그는 영국과의 친교 회복이 결국은 미국에게 최선의 이익이 될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시기에 미국과 영국의 친교 회복은 나폴레옹이 결코 원하지 않던 것이었다.

프랑스는 산토도밍고에서 실패했고 영국과 곧 전쟁을 다시 시작할 상황에 처했으며 재정적인 어려움을 안고 있었다.

이때문에 1803년 나폴레옹이 루이지애나 영토 매각을 미국에 제의했으리라는 것을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이 중요한 시점에서 제임스 먼로가 제퍼슨의 전권 공사 자격으로 파리에 도착했다. 리빙스턴과 먼로 두 공사가 루이지애나 전체를 매입하는 어떤 지침이나 권한을 가졌던 것은 아니지만 이들과 나폴레옹 대리인 바르베 마르부아와의 협상은 빠르게 결론에 이르렀다.

조약은 5월 2일 서명되었으나 4월 30일에 체결된 것으로 되어 있다. 조약에 따라 프랑스가 스페인으로부터 받은 루이지애나 영토는 미국에 팔렸다. 이 광대한 영토 구입을 위해 미국은 1,125만 달러를 일시불로 지불하기로 했으며 프랑스가 그곳 주민들에게 지고 있던 빚 375만 달러도 미국이 맡기로 했다. 최종 결정에서는 이자지불로 인해 전체 가격이 2,726만 7,622달러가 되었다.

미국이 정확하게 무엇을 사들였는지는 분명치 않았으며 조약의 용어들도 애매하여 정확하게 경계가 설정되어 있지 않았다.

또한 서부 플로리다가 루이지애나에 속하는가에 대한 뚜렷한 언급도 없었으며 남서쪽 경계도 표시되어 있지 않았다. 미국측 협상자들은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이 루이지애나의 확실한 경계선을 정하기에 앞서 매입 자체의 합헌성에 관한 근본적 문제가 일어났다. 미국 헌법이 이러한 종류의 구입 행위를 규정하고 있는가가 문제였다. 헌법을 원칙에 따라 엄격하게 해석하려 했던 대통령은 이러한 거래를 정당한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헌법의 개정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으나 상원은 적절한 심의와 상당한 논의를 거친 뒤 24대 7로 조약을 승인했다.

다음 문제는 스페인·영국과 협상하여 경계선을 결정짓는 것이었다(대륙횡단조약). 이 문제는 서부 플로리다와 텍사스의 소유권을 놓고 스페인과 줄다리기 논쟁을 한 끝에 결국 1819년 스페인으로부터 플로리다를 구입하고 남서 경계선을 확정함으로써 타결되었다. 이렇게 결정된 경계선은 다음과 같다. 먼저 사빈 강을 따라 멕시코 만에서 북위 32°까지 가고 거기서 똑바로 북쪽으로 레드 강까지 갔다가 서경 100°에 이른다.

거기서 북쪽으로 아칸소 강까지 이르고 아칸소 강의 근원지까지 가서 다시 북쪽으로 북위 42°까지 이른 다음 그 선을 따라 태평양까지 간다. 북쪽 경계선은 1818년 영국과 미국 사이의 협약에 따라 순조롭게 정해졌다.

이 협약으로 우드 호(湖)와 로키 산맥 사이의 북위 49°선이 미국과 캐나다의 경계선으로 확정되었다. 로키(그 당시는 '스토니'로 불렸음) 산맥이 루이지애나 영토의 서쪽 경계선이 되었으며, 미시시피 강이 실용적 목적을 고려해서 동쪽 경계가 되었다. 이곳의 상당 부분이 풍부한 광물자원과 기름진 토양, 귀중한 방목지, 숲을 가지고 있으며 야생동물의 보고(寶庫)임이 나중에 밝혀졌다.

이 거대한 지역은 뒤에 루이지애나·미주리·아칸소·아이오와·노스다코타·사우스다코타·네브래스카·오클라호마 등의 여러 주로 나누어졌다. 또 이 지역은 캔자스·콜로라도·와이오밍·몬태나·미네소타 등의 지역 대부분을 포함한다. 루이지애나 매입은 미국 역사상 최대의 거래였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