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몽주의

계몽주의

다른 표기 언어 enlightenment , 啓蒙主義 , Siècle de Lumières

요약 계몽주의의 핵심은 이성중심이며, 이성의 힘에 의해 인간은 우주를 이해하고 자신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또 지식·자유·행복이 합리적 인간의 목표라고 보았다.
이성중심 사상은 고대 그리스 철학에 시작되었으나, 그리스도교가 유럽에 자리잡는 과정에서 이성과 신앙은 연결되었다. 중세 유럽에서 진리로 여겨졌던 그리스도교의 지적·정치적 체계는 인간중심주의 운동인 르네상스와 종교개혁에 의해 신랄한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인간중심주의 사상은 다시 경험적 과학과 수학적 성과를 낳았고 뉴턴의 성공은 그 좋은 예이다. 결국 이성에 근거하여 사물을 보는 움직임은 종교에도 적용되었다. 계몽주의는 처음으로 종교에서 떨어져 나온 심리학·윤리학을 탄생시켰고 더 나아가 개혁과 혁명을 지향하게 되었다. 영국의 로크, 프랑스의 볼테르, 미국의 제퍼슨은 이에 기초하여 정치적 민주주의 국가의 청사진을 그린 인물들이다.
인간의 역사는 진보의 역사라고 하는 계몽주의 특유의 낙관론은 오늘날까지 살아남아있는 계몽주의의 유산이다.

계몽주의
계몽주의

신(神)·이성·자연·인간 등의 개념을 하나의 세계관으로 통합한 사상운동으로서 사람들 사이에서 넓은 공감대를 형성하고 예술·철학·정치에 혁명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계몽주의의 핵심은 이성중심이며, 이성의 힘에 의해 인간은 우주를 이해하고 자신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다고 하는 것이다. 또 지식·자유·행복이 합리적 인간의 목표라고 보았다.

이성중심 사상을 맨 처음 탐구한 사람은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로서, 그들은 자연의 질서정연한 규칙성에 지적인 정신이 작용한다고 생각했다. 로마는 자연의 합리적인 질서와 자연법 사상을 포함해 그리스 문화의 상당 부분을 받아들이고 보존했다. 그러나 로마 제국의 혼란기 동안 개인의 구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생겨났고, 이는 결국 그리스도교의 승리로 연결되었다.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은 점차 그들이 물려받은 그리스-로마 유산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해 절정을 이룬 '스콜라 철학'이라는 사상체계는 사물을 이해하는 데 필요한 도구로서의 이성을 부활시켰으나 동시에 이성을 영적(靈的) 계시와 그리스도교의 계시된 진리에 종속되는 것으로 보았다.

중세 유럽에서 완전한 것으로 여겨졌던 그리스도교의 지적·정치적 체계는 인간중심주의 운동인 르네상스종교개혁에 의해 신랄한 공격을 받게 되었다. 인간중심주의 사상은 다시 프랜시스 베이컨,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경험적 과학과 르네 데카르트, G. W. 라이프니츠, 뉴턴의 수학적 엄정성을 낳았다.

르네상스는 고전문화의 가치를 재발견했으며 그 과정에서 인간을 창조적 존재로 이해하는 인식이 부활되었다.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권위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이었으며 장기적으로 커다란 영향력을 미쳤다. 베이컨·데카르트와 마찬가지로 루터 역시 진리에 이르는 길은 인간의 이성을 적용하는 데 있다고 보았다. 지금까지 프톨레마이오스가 과학에서, 교회가 영적인 문제에서 지녀왔던 권위는 이제 해방된 인간 정신의 검토대상이 되었다.

어떤 문제에 이성을 적절히 적용했는가는 그것이 정확한 적용인가, 즉 타당성을 보장하는 추론 방법론이 어느 정도 발전되어 있는가에 달려 있다. 이러한 방법론은 과학과 수학에서 두드러지게 발전했으며 이 분야에서 이루어진 귀납·연역 논법을 바탕으로 광범위한 새로운 우주관이 탄생했다(→ 과학사).

특히 뉴턴이 행성의 운동 법칙을 몇 가지 수학공식으로 정리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인간의 지식획득 능력에 대해 커져가고 있던 믿음은 더욱 굳어졌다. 우주를 몇 가지 간단한 그리고 발견 가능한 법칙에 지배받는 장치로 이해하는 우주관은 그리스도교의 중심사상인 인격·신과 개인의 구원이라는 개념에 충격적인 영향을 끼쳤다.

결국 이성에 근거하여 사물을 보는 움직임은 종교에도 적용되었다. 자연적, 즉 합리적 종교를 찾으려는 노력의 결과로 이신론이 나왔다(→ 신의 존재, 자연신학). 이신론은 비록 조직적인 종파도 운동도 아니었지만 약 2세기 동안 특히 영국과 프랑스에서 그리스도교와 충돌했다.

이신론자들은 어떤 종교적 진리도 만족하게 생각지 않았으며 진리는 모든 합리적 존재에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또 그들은 우주라는 기계를 만들고 움직이는 유일신이 존재하고, 이 신이 어떤 상벌체계를 주관하며, 인간은 덕과 경건을 실행할 의무가 있다고 생각했다. 이성을 종교에 적용한 결과 회의론·무신론(無神論)·유물론 등 이신론자들의 자연종교를 넘어서는 급진적인 사상들이 나왔다.

계몽주의는 처음으로 종교에서 떨어져나온 심리학·윤리학이라는 근대적인 이론을 탄생시켰다(→ 사회계약). 존 로크는 태어날 때 인간의 마음은 백지상태(tabula rasa)이기 때문에 각 개인의 세계에 대한 경험에 따라 빈 곳이 채워지고 개성이 창조된다고 했다. 따라서 선·원죄 등 원래부터 존재한다고 여겨져왔던 속성은 현실성이 없다고 보았다.

심지어 토머스 홉스는 인간은 오로지 자신의 쾌락과 고통에만 관심이 있고 여기에 의해서만 움직인다고 쓰고 있다. 인간은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으며, 다만 생존과 쾌락의 극대화와 생존에만 관심이 있다는 이러한 생각은 급진적인 정치이론을 낳았다. 과거에는 인간이 세운 국가는 신의 나라를 본뜬 것이며 영원한 질서를 지상에서 실현하고 있다고 생각했으나, 이제 그것은 자연권과 각자의 이익을 주장하는 사람들 사이에 맺어진 상호 유익한 계약관계로 여겨졌다.

그러나 인간의 실제상황이 사회를 사회계약으로 보는 견해와는 너무 달랐으므로 계몽주의는 비판과 개혁, 그리고 마침내는 혁명을 지향하게 되었다. 영국의 로크와 벤덤, 프랑스의 몽테스키외와 볼테르, 미국의 토머스 제퍼슨은 모두 독단적이고 권위주의적인 국가를 비판하면서 자연권에 기초를 두고 정치적 민주주의 기능을 하는 좀더 높은 형태의 사회조직이라는 국가의 청사진을 그렸다. 이런 강력한 사상은 영국에서 개혁을, 프랑스와 미국에서는 혁명을 일으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러나 계몽주의 운동이 진행될수록 그 자체에 쇠퇴 요인이 있음이 분명해졌다. 이신론은 점차 위안과 구원을 찾는 사람들을 만족시키지 못하게 되었다. 또 추상적인 이성을 너무 강조함에 따라 반대되는 정신이 부각되었고 사람들은 뒤에 낭만주의로 알려진 문화운동에서 보여지듯이 흥분과 감동의 세계를 찾았다. 프랑스 혁명을 뒤이은 공포시대는 과연 인간이 자신을 다스릴 수 있는가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갖게 했다. 그러나 인간의 역사는 일반적으로 진보의 역사라고 하는 계몽주의 특유의 낙관론은 계속 살아남아 계몽주의의 가장 지속적인 유산이 되었다.→ 유럽의 역사와 문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