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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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약 고려말에서 조선초에 걸쳐 발생한 문학의 한 형식. 작자에 따라 사대부가사·규방가사·평민가사 등으로 나뉘며, 한 음보는 대개 3·4음절이다.

4음보 율격의 장편연속체로 된 시가이다. '가사'라고도 표기했으나 지금은 '가사'로 표기한다.

가사는 작자에 따라 사대부가사·규방가사·평민가사 등으로 나뉘며, 내용에 따라 기행가사·유배가사·은일가사·도교가사·불교가사·동학가사·천주가사 등으로 세분화되기도 한다. 한 음보는 대개 3·4음절이며, 행수는 제한이 없다. 사대부가사와 같은 정통가사는 마지막 행이 시조의 종장처럼 3·5·4·3으로 되어 있다.

가사는 4음보 율격의 장편연속체로 된 시가라는 형태적 요건을 제외한다면 특별한 제약을 받고 있지 않기 때문에 그 내용과 성격이 매우 다양하다. 이런 사정 때문에 가사의 장르를 어떻게 파악할 것인가를 놓고 많은 논란이 있어 왔다.

조윤제는 가사를 시가와 문필의 중간형태로 보았고, 이능우는 기본성격은 수필이지만 형식은 율문이라 했다. 장덕순은 주관적·서정적 작품군과 객관적·서사적 작품군으로 나누어 각각을 서정 장르와 서사 장르에 따로 귀속시켜야 한다고 했고, 조동일은 교술(敎述) 장르를 따로 설정하여 율문의 교술문학으로 규정했다.

김홍규는 서정적·서사적·이념적·교훈적 작품이 공존하는 장르를 하나의 범주에 귀속시키기보다는, 개방성을 인정하는 시각에서 혼합장르로 파악했다.

역사

가사의 발생에 대해서는 크게 고려말 발생설과 조선초 발생설이 있다.

고려말 발생설의 근거는 고려말 나옹화상이 지었다는 〈서왕가 西往歌〉인데, 국문이 없을 때 창작되어 후대의 문헌에 실린 것이므로 나옹의 작품인지 의심스럽다. 조선초 발생설의 근거는 정극인(鄭克仁:1401~81)의 만년작인 〈상춘곡 賞春曲〉이다. 그러나 이 작품 역시 후대의 문헌에 정착되었으므로 정극인의 작품인지 의심스럽다. 두 설이 모두 의심스럽기는 하나, 많은 가사작품이 승려들에 의해 만들어졌고, 불경의 부록으로 나와 전파되었으며, 〈상춘곡〉보다 앞선 가사의 존재 가능성을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는 점 등에서 고려말 발생설이 좀더 설득력을 갖는다.

가사의 역사는 시조와 마찬가지로 임진·병자 양난을 거친 17세기 중기를 전후로 하여, 조선 전기와 후기 그리고 일제시대의 가사로 나누어볼 수 있다. 조선 전기 가사의 주 담당층은 송순·정철·박인로 등으로 대표되는 양반 사대부 계층이다. 그들은 생활의 체험과 흥취 및 신념을 노래했는데 특히 두드러진 것은 '강호(江湖)가사'이다.

이 작품들에는 혼탁한 세상의 고단함과 갈등으로부터 떨어져나와 자연에 묻혀 심성을 수양하며 살아가는 유학자의 모습이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작품은 자연(우주적 질서)과 자아의 조화로운 합일을 추구하는 높은 정조를 띠게 되었는데, 이러한 서정적 정조는 이 시기 가사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이다.

조선 후기 가사는 담당층이 다양해지면서 작품의 경향도 다양해졌다. 이는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 등 여러 방면의 변화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여성 및 평민 작자층의 성장에 힘입은 문제의식의 확대·심화, 즉 ① 당대의 모순과 학정으로 인한 민중의 고통, ② 추하고 탐욕스러운 인물의 풍자를 통한 전환기적 세태의 희화화, ③ 남녀간의 애정을 중심으로 한 욕구의 좌절 및 성취와, 그 주제를 구현하거나 표출하는 방식의 다변화 등은 특히 중요한 변모이다.

사대부의 가사는 서정적인 기풍이 퇴조했으며, 기행가사·유배가사류 등에서 생기있게 나타나고 있듯이 구체적인 현실을 담아내려는 경향이 보인다.

일제시대의 가사는 사회적 격변기의 요구로 인해 다양함이 후퇴하고, 형태의 변화와 함께 교술적인 면이 강화되었다. 흔히 개화가사라고 하는 이들 가사는 쉽게 부를 수 있도록 길이가 매우 짧아졌으며, 분련형식으로 인한 후렴구가 많이 사용되었다. 〈독립신문〉에 주로 실린 애국가류가 〈대한매일신보〉의 우국가사류보다 좀더 창가적 특징을 띠고 있다.

애국가류는 비교적 짧은 형태로 미래에 대한 낙관 아래 자주독립과 문명개화를 예찬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에 비해 우국가류는 애국가류의 낙관적 개화주의의 도취나 흥분된 분위기보다는 냉혹한 국제질서의 적자생존 원리에 대한 각성을 촉구하는 한편, 현실고발과 풍자적 공격성이 강화되면서 분량도 늘어나는 경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