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제

조윤제

다른 표기 언어 趙潤濟 동의어 도남, 陶南
요약 테이블
출생 1904, 경북 예천
사망 1976
국적 한국

요약 최초로 국문학의 체계를 세운 국문학자로 알려져 있다. 〈조선시가사강〉·〈국어교육의 당면한 과제〉·〈조선 시가사의 연구〉 등을 썼다.

본관은 함안. 호는 도남. 1924년 경성제국대학 문과에 제1기생으로 입학하여 1929년 학사학위를 받았다.

1931년 조선어문학회를 조직하여 기관지 〈조선어문학회보〉를 발간했다. 1932년 경성사범대학교 교유에 임명되었으며, 1934년 진단학회를 조직해 기관지 〈진단학보〉를 발간했다. 1937년에는 최초의 저서 〈조선시가사강 朝鮮詩歌史綱〉을 간행했다. 1939년 〈교주춘향전〉을 출간했고, 조선어연구회 사건으로 용산경찰서에서 며칠간 조사를 받다 풀려났다.

경신학교·이화여자전문학교 등을 출강하다 1945년 해방이 되자 서울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이후 대학원부원장·문과대학장 등을 역임했다. 1948년 국어교육연구회를 조직해 기관지 〈국어교육〉을 간행했다. 1950년 성균관대학교 교수가 되었고 이후 대학원장, 부총장 등을 역임했다. 1952년 서울대에서 문학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60년 한국교수협회를 조직하여 의장이 되었다.

1961년 5·16군사정변이 나자 구속되어 교수직을 사퇴당하고 5년 구형을 받았으나 무죄가 선고되어 8개월 만에 서대문형무소에서 풀려났다. 1963년 제8회 학술원상을 받았다. 1965년 대구 청구대학교 교수가 되었으나 한일협정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대학에서 추방당했다가 1967년 복직되었다. 1969년 대한민국 학술원회원이 되었고, 1974년 영남대학교를 퇴직했다.

〈조선시가사강〉(1937)·〈교주춘향전〉(1939)·〈국어교육의 당면한 과제〉(1947)·〈조선 시가사의 연구〉(1948)·〈국문학사〉(1949)·〈국문학개설〉(1955)·〈한국문학사〉(1963) 등의 저술로서 최초로 국문학의 체계를 세운 국문학자로 국문학연구사에서 평가받는다.

그의 국문학연구의 특성은 첫째, 문학을 생명체로 파악하고 문학이 역사성·시대성 위에서 하나의 유기체로 변화·발전하는 것이라고 본 점, 둘째, 민족의 주체성에 역점을 두어 민족사관을 정립한 위에다 국문학의 체계를 세운 점, 셋째, 과학적 이론에 입각하여 체계화한 점 등을 들 수 있다.

따라서 국문학연구사에서 그가 이룬 학문적 가치는 ① 국문학사상 민족사관의 정립, ② 한국 시가 형태의 기본 이념 정립, ③ 모든 시가군을 문학 장르로서 최초로 체계화시킴, ④ 자연미의 발견을 조선시대 문학의 중요한 현상으로 부각시킴, ⑤ 〈춘향전〉을 국문학의 백미로 확정, ⑥ 한문학의 성격을 밝힘, ⑦ 평론문학의 기틀을 처음으로 마련해놓았다는 것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국문학의 특질을 '은근과 끈기'로 파악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