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봉

가봉

다른 표기 언어 Gabon 동의어 가봉 공화국, République Gabonaise
요약 테이블
위치 아프리카 서부
인구 2,460,785명 (2024년 추계)
수도 리브르빌
면적 267,667.0㎢ 세계면적순위
공식명칭 가봉 공화국 (Gabonese Republic)
기후 열대성기후
민족 구성 반투계부족, 흑인
언어 프랑스어
정부/의회형태 중앙집권공화제 / 다당제&양원제
종교 그리스도교(55%), 토착종교
화폐 세파프랑 (XAF)
대륙 아프리카
국가번호 241
GDP USD 17,461,000,000
인구밀도 9명/㎢
전압 220V / 50Hz
도메인 .ga

요약 적도선이 지나는 아프리카 중부 서해안에 있는 나라. 수도는 리브르빌이며, 언어가 다른 40여 인종집단이 살고 있다. 인구의 40% 정도가 그리스도교도이다. 광물과 삼림자원의 개발에 기초한 개발도상의 혼합경제체제로 석유수출이 상당한 몫을 한다. 성해함 도안, 의식용 가면, 주물 등 전통예술로 유명하며,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프랑스와 밀접한 문화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면적 267,667.0㎢, 인구 2,460,785(2024 추계).

목차

접기
  1. 한국과의 관계
    1. 외교
    2. 경제·통상·주요 협정
    3. 문화 교류·교민 현황
  2. 자연환경
  3. 국민
  4. 경제
  5. 정치와 사회
  6. 문화
  7. 역사
가봉 국기
가봉 국기

수도는 리브르빌. 북쪽은 적도 기니와 카메룬, 남쪽과 동쪽은 콩고, 서쪽은 대서양(대서양 연안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상투메프린시페가 있음)과 접해 있다.

지도
가봉

한국과의 관계

외교

한국은 1962년 10월 가봉과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고, 1973년 상주공관을 설치했으며 가봉에서는 1975년 주한 공관을 개설했다. 오마르 봉고 대통령이 1975년 7월, 1984년 9월, 1996년 8월, 2007년 8월 내한했으며, 한국에서는 1982년 8월 전두환 대통령이 가봉을 방문했다.

경제·통상·주요 협정

2023년 기준 한국의 가봉 수출액은 1,567만 달러, 수입액은 310만 달러이다. 주요 수출품목은 철도용 및 궤도용 외 차량과 부속품, 이소시아네이트 등의 유기화학품 등이며 수입품목은 석유, 망간, 알루미늄 등이다. 양국이 체결한 협정으로 무역협정(1969년 9월, 1977년 5월, 1978년 5월), 경제기술문화 및 과학협력협정(1975년 7월), 한·가봉공동위원회설치협정(1975년 7월), 우라늄탐사협정(1980년 3월), 항공협정(1982년 12월, 1984년 9월) 등이 있다.

문화 교류·교민 현황

한국과 가봉는 1975년 7월 양국간 경제기술문화 및 과학협력협정을 체결하여 경제와 문화, 과학분야의 협력이 지속적으로 강화해왔다. 2023년 기준 가봉에 거주하고 있는 재외동포는 67명이며, 2023년 기준 한국에서 거주하고 있는 가봉 국적의 등록외국인은 81명이다.

자연환경

영토의 대부분이 오고우에 강 본지류(本支流)의 유역으로, 강유역의 90%가 이 나라에 속하며 가봉 면적의 동쪽 2/3를 차지한다. 오고우에 강 유역 대부분과 대서양 사이에 보다 작은 두 지역, 즉 북쪽에 있는 올뢰은템 강 유역과 서쪽과 남서쪽에 활 모양의 고지가 경계를 이루는 해안평야가 있다. 오고우에 강은 랑바레네 아래쪽에 있는 많은 호수의 물을 모아 해안평야를 북쪽과 남쪽으로 가르는 삼각주를 지나 대서양으로 흘러들어간다.

해안평야 남쪽과 오고우에 강 사이에 셸뤼 대산괴가 있으며, 이 대산괴에는 해발 980m로 가봉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인 이뷘지 산이 있다.

해안평야 남쪽은 모래해변·해안사주(海岸)·해안석호 등이 있는 콩고 남쪽과 이어져 있다. 그리고 해안평야 북쪽 지역은 일반적으로 남쪽보다 더 넓고 해안선이 더 불규칙하며, 해발 305∼610m에 이르는 잇달은 고원지대로 인해 오고우에 강 유역과 떨어져 있다. 이 고원지대는 북동쪽으로 뻗어 크리스탈 산맥과 만나 올뢰은템 강과 북서쪽에 있는 오고우에 강 유역을 나눈다.

가봉 기후는 전형적인 적도 열기와 습기로 특징지어진다. 연평균강우량은 리브르빌의 3,050㎜에서 북서 해안의 3,812㎜까지 다양하며, 10월과 5월 사이 집중적으로 비가 오지 않는 건기 때에도 습도는 여전히 높다. 계절에 따른 기온변화는 거의 없으며, 연평균기온은 27℃이다.

면적의 2/3 정도가 빽빽한 열대우림지대로 이 나라 목재산업의 중추를 이루는 경재, 즉 오쿠메(okoumé: 가봉의 마호가니)를 포함한 3,000여 종의 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같은 밀림식물들로 가봉은 동물의 천국을 이루어 영양·원숭이·열대조(鳥)·코끼리 등이 번성하고 있다.

광물자원은 종류는 적지만 중요하다. 망간 보유량은 약 2억t으로 1980년대초에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소련, 오스트레일리아에 이어 세계 4위였다. 철광석 보유량은 8억 5,000만t으로 이중 5억t은 65%의 철을 함유하고 있어 순도가 높다. 가봉은 아프리카에서 에너지 자원의 보유량이 높은 나라로 석유매장량이 약 6,600만t, 천연가스가 140억㎥이며, 수출할 수 있는 다량의 우라늄도 매장되어 있다.

국민

가봉의 국민은 15세 이하 인구가 전체의 1/3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노년층의 나이가 상당히 젊다. 출생률은 어림잡아 인구 1,000명당 31∼36명, 사망률은 1,000명당 21∼22명 정도이다. 인구의 연간 자연증가율은 약 0.9∼1.4%이다. 가봉 정부는 이러한 인구증가 추세를 너무 낮다고 보고, 적당한 공공 의료시설을 갖추고 모자보건계획을 세우는 일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이는 알베르트 슈바이처가 랑바레네에 세운 병원의 영향으로 볼 수도 있다. 2024년 기준 인구는 246만 785명이고 인구밀도는 9명/㎢ 이다. 도시거주자가 전체 인구의 약 80%를 차지한다.

가봉에는 언어가 다른 40여 인종집단이 살고 있다. 팡족은 오고우에 강 북쪽에 살며 중앙 아프리카 공화국의 더 큰 부족인 파우앵족에 속한다. 오고우에 강 남쪽에는 가장 큰 부족인 퓌뉘족·시라족·은제비족과 그들보다 수가 적은 테크족·코타족이 살고 있다. 공용어는 프랑스어이고, 인구의 3/4 정도가 그리스도교이며, 소수의 이슬람교와 그밖에 전통적인 아프리카 종교로 분포되어 있다.

경제

가봉의 경제는 크게 볼 때 광물과 삼림자원의 개발에 기초한 개발도상의 혼합경제라고 할 수 있다. 자유경제정책으로 외국 투자가들을 끌어들이면서도 정부가 직접 감독·계획한다. 1980년에는 국민총생산(GNP)이 25억 6,800만 달러에 이르렀다. 1인당 GNP는 2,334달러로 아프리카 열대지방에서는 가장 높다.

여기에는 석유수출이 상당한 몫을 한다.

노동력의 절반 이상이 농업에 종사하고 있으나 산출량의 감소로 GNP의 5%에도 못 미치고 있다. 농업이 주요한 생활수단이면서도 그 생산량은 내수에도 부족한 형편이다. 주요농작물은 카사바이며 코코아·커피·야자기름 등을 수출한다.

임업은 광물자원이 개발되기 시작한 1960년대초까지는 가봉의 주요산업이었다.

강과 해안 가까이에 있는 삼림자원이 고갈상태에 빠지자, 1970년대 후반에 가봉 횡단철도를 건설하면서 내륙에 있는 자원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삼림자원개발은 유럽의 큰 회사들과 가봉의 기업체들이 맡고 있다.

급속하게 발전한 광업이 가봉의 경제를 성장시킨 주요 원천이다. 석유는 가장 중요한 광산물로 GNP의 3/5에 이르고 수출총액의 2/3 이상을 차지하게 되었다. 개발은 외국의 석유회사들이 맡고 가봉 정부는 개발비용의 30%를 부담한다. 망간과 우라늄도 다량 생산한다.

제조업은 GNP의 10%에도 못 미치며 생산량의 상당부분을 목재(오쿠메) 가공이 차지한다.

경공업은 1967년 포르장티에 정유공장이 세워지면서 발전하고 다양해졌다. 연간 전력생산량이 1968년 7,400만kw/h에서 1980년 5억 6,900만kw/h로 놀라운 증가를 보였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리브르빌 근처의 킹엘레에 건설된 제1수력발전소에 힘입은 것이다.

대체로 수출이 수입보다 많으며, 석유·망간·우라늄·임산물(林産物) 등이 수출의 주종을 이룬다. 주요 무역 상대국은 프랑스·미국·독일 등이다. 가봉 횡단 철도의 건설과 다른 분야 개발을 위해 프랑스, 독일, 유럽 경제공동체(EEC)에서 외채를 많이 빌어 썼다. 채권국들의 강력한 주장을 받아들여 가봉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의 안정화계획에 따라 외채구조를 개선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정치와 사회

가봉은 가봉 민주당(PDG)이 집권하는 일당제 공화국이다. 최고의 권력은 법적 효력이 있는 법령을 공포할 수 있는 33명으로 구성된 PDG 정치국에 집중되어 있다.

헌법은 1961년에 채택되고 1981 년에 개정되었으며 대통령에게 행정권을 부여하고 있다. 대통령은 단독 입후보자를 놓고 보통선거에 의한 비밀투표로 선출되며, 각료 지명권을 갖는다. 입법권은 93명으로 구성된 국민의회에 있다. 84명은 보통선거로 선출하며 9명은 대통령이 임명한다. 최고 사법권은 대통령과 공무원에 대한 재판권이 있는 대법원과 고등법원에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초까지 가봉의 정치는 가봉 공화국의 대통령 겸 PDG의 사무총장인 엘 아즈 오마르 봉고가 지배했다.

가봉은 고용인이 산업재해·출산·노년·신체장애 등의 일을 당할 때 수당을 제공하는 사회복지제도를 두고 있다. 또한 가족수당법은 16세 이하의 자녀를 1명 이상 둔 종업원에게 수당을 지급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부분의 열대 아프리카 국가와 같이 가봉은 열악한 위생환경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곤충과 해충으로 인한 질병이 만연해 있으며, 고온다습한 기후로 인해 심한 호흡기 질환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 유아 사망률은 1,000명당 122명이다. 평균 수명은 44세 정도이다. 인구 1만 명당 의사보유율은 아프리카의 다른 나라들에 비해 높지만, 시골지역의 의료인원은 매우 부족한 형편이다.

의무교육의 대상은 6∼16세까지이고, 이 연령층의 80% 정도가 취학한다. 주요 고등교육기관으로는 오마르봉고대학교가 있다. 그러나 대학교육을 받고자 하는 많은 학생들은 프랑스로 유학을 간다. 방송 언론매체는 모두 정부 소유이며 정부의 통제를 받는다.

문화

가봉의 전통예술은 성해함 도안, 의식용 가면, 주물 등으로 아프리카에서도 유명하며, 리브르빌에 있는 가봉전통예술박물관에 많이 전시되어 있다. 가봉은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 4개의 식민지 가운데 하나였으며, 1960년에 독립했으나 프랑스와 밀접한 문화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가봉 국민들의 지적 활동과 예술 활동은 지금도 프랑스의 문화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

가봉 전통 조각상
가봉 전통 조각상

역사

가봉에서는 후기 구석기시대와 초기 신석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인공유물들이 발견되어 왔다. 가봉 민족을 이룬 반투족의 대이동이 언제 있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일찍이 서력기원이 시작될 무렵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피그미족이 원주민이었을 가능성이 많다. 그후 팡족이 그 땅에 들어가게 된 것은 유럽 상인들의 출현으로 그들이 가봉 연안지역에 관심을 갖게 된 18세기 후반부터이다.

1472년 포르투갈인이 가봉 삼각강(Gabon Estuary)에 처음 도착한 데 이어 프랑스·네덜란드·영국의 상인들이 들어와 연안의 강들에서 내륙 깊이까지 교역망을 설치하며 활약했다.

18∼19세기의 상당 기간은 노예무역이 성행했다. 프랑스인은 지역주민과 가장 성공적으로 협정을 맺음으로써 1839∼42년에 음퐁퀘족의 추장들로부터 처음으로 통치권을 양도받았다. 1843∼86년에 가봉은 프랑스령 서아프리카 정부와 공동으로 프랑스 해군장교가 다스렸다. 1886년 가봉과 콩고를 포함하는 프랑스령 콩고의 일부가 되었으며, 20세기에 들어서 새로 세운 프랑스령 적도 아프리카 내의 단독 식민지가 되었다.

1898년 가봉은 인간과 자연자원을 극심하게 착취한 것으로 악명이 높았던 특권회사들에 의해 분할되었다. 가봉의 끊임없는 저항에도 불구하고 이들 회사는 1930년까지 완전 해체되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중인 1940년 자유 프랑스(Free French)군은 비시 프랑스로부터 가봉을 인수했다.

1946년 가봉은 프랑스의 해외준주(海外準州)가 되어 준주 의회를 두었으며, 1958년에는 프랑스 공동체(French Community) 내의 자치공화국이 되었다. 그뒤 프랑스와 협력협정을 체결하고 1960년 8월 17일 독립을 선포했다. 불안정했던 초기에는 가봉의 초대 대통령 레옹 음바를 전복시키려는 쿠데타가 일어나기도 했다. 그러나 뒤를 이은 오마르 봉고 대통령의 통치 아래 안정된 성장과 번영을 이룩했다. 1967년 이후 계속된 봉고 대통령의 장기집권으로 1980년대초까지 정치적 불안이 고조되었다. 그러나 가봉의 지속적인 번영으로 과격한 정치적 행동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