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와

교와

[ 享和(향화) ]

요약 일본 에도시대의 왕 고카쿠가 사용한 연호(1801~1804년).
원어명 きょうわ

일본 에도 시대[江戸時代]의 왕 고카쿠[光格, 재위 1780~1817] 때의 세 번째 연호이다. 1801년 음력 2월부터 1804년 음력 2월까지 4년 동안 쓰였다. 이 시기에 에도막부[江戸幕府]의 쇼군[將軍]은 도쿠가와 이에나리[徳川家齊, 재임 1787~1837]였다. 

일왕 고카쿠는 신유년(辛酉年)인 1801년(간세이 13) 3월 19일(음력 2월 5일)에 그 해를 원년으로 연호를 ‘간세이[寛政]’에서 ‘교와[享和]’로 바꾸었다. 일본에서는 헤이안 시대[平安時代] 이후 도참설의 영향으로 신유년과 갑자년(甲子年)을 천명(天命)이 바뀌는 해로 여겨서, 정치적 변동이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연호를 바꾸는 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교와 연간인 1802년(교와 2) 음력 1월 에도시대의 유행하던 소설의 양식인 게사쿠[戯作] 작가 짓펜샤 잇쿠[十返舎 一九]가 쓴 《동해도중슬율모(東海道中膝栗毛)》의 첫 번째 편이 출판되었다. 야지로베[弥次郎兵衛]와 기타하치[喜多八]라는 두 사람이 일본 각지를 여행하면서 겪은 기행문 형식으로 된 이 책은 큰 인기를 끌어 1814년까지 잇달아 속편이 발간되었다.

그 해 음력 2월에는 에조치[蝦夷地]라고 불리던 홋카이도 일대의 행정과 방위를 담당하는 에조 봉행[蝦夷奉行]의 관직이 새로 설치되었다. 막부는 도가와 야스토모[戸川安論]와 하부토 마사야스[羽太正養] 2인을 봉행으로 임명해서, 1년씩 번갈아 하코다테[箱館]의 봉행소에 머무르며 러시아의 남하를 경계하게 했다. 그 해 음력 5월에 에조 봉행의 명칭은 하코다테 봉행[箱館奉行]으로 바뀌었다.

일왕 고카쿠는 갑자년인 1804년(교와 4) 3월 22일(음력 2월 11일)에 그 해를 원년으로 연호를 ‘분카[文化]’로 바꾸었다.

참조항목

연호,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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