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연합한국임시위원단

국제연합한국임시위원단

[ United Nations Temporary Commission on Korea ]

요약 국제연합(UN)이 1948년 한반도 총선거(5.10선거)의 관리·감독을 위해 파견한 임시기구이다.

1947년 5월부터 재개된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는 2달이 지난 7월에 이르러서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했다. 8월 초, 미국은 한국 문제를 국제연합(United Nations, 이하 유엔)에 이관하여 남한과 북한이 각각 유엔의 감시하에 선거를 진행할 것을 제안하였다. 만약 소련이 이 제안을 거부할 경우, 남한만이라도 단독으로 선거를 치른다는 방침도 세웠다. 제2차 미·소공동위원회의 지지부진한 교섭을 보더라도 소련의 반대는 거의 확실했으므로 사실상 단독 정부 수립을 의도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를 낮게 평가하여 조속한 철군을 요구해 온 미국 국방부와 한반도가 가지는 정치적 의미를 높게 판단한 미국 국무성의 타협안이기도 했다. 즉, 미국의 역할을 국제기구로 대체하여 국제 사회의 지원을 유도하고 소련의 영향력 확장을 차단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9월에 소련이 미국의 제안을 거절하면서 한국 문제는 유엔의 안건으로 상정되었다.

10월이 되자 미국은 유엔에 ①1948년 3월 31일까지 미국과 소련은 각각의 점령지에서 유엔의 감시하에 선거를 실시하여 국회와 정부를 수립할 것 ②새로 수립된 한국 정부와 미국·소련이 협의하여 조속하고 완전한 철군을 수행할 것을 제의하였다. 이에 소련은 ①유엔에서의 한국 문제 논의에 남·북한 대표를 초청할 것 ②1948년 초까지 소련과 미국이 한반도에서 동시에 완전히 철수하여 한국인에게 정부 수립을 일임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자 미국은 한국인을 대표할 사람이 불명확하다는 점을 들어 한국에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을 설치하여 한국인의 참여를 이끌자는 수정안을 제시하였다. 한편 소련이 제안한 '소련과 미국의 동시 철수와 한국인에 의한 정부 수립'은 미국이 양국 군대가 동시에 철수할 경우 혼란이 예상된다며 반대하였다. 이에 미국은 중국과 인도 등의 제의를 반영하여 유엔의 감시하에 남·북한 별도가 아닌 전국적인 선거의 실시라는 수정안을 제시하였다. 결국 유엔은 1947년 11월 14일에 열린 제2차 유엔 총회에서 미국의 수정안을 따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을 설치하여 남·북 인구비례에 따른 총선거를 시행한다는 결의를 통과시켜 한국 문제는 유엔으로 이관되었다.

제2차 유엔 총회의 결정에 따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1948년 1월에 순차적으로 서울에 입국하였다.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한반도 전역에서의 선거 감시를 수행하기 위해 소련과 교섭하였지만, 소련이 이를 거부하면서 당초 목표한 임무의 수행이 불가능해졌다. 이는 제2차 유엔 총회의 결정에 소련이 이미 따르지 않겠다는 의사를 표현한 상황에서 당연한 결과였다. 또한 유엔의 결의는 권고에 불과한 것이어서 유엔의 결의 사항을 강제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물론 남한의 정치인들도 의견이 나뉘었는데, 이승만을 대표로 한 한국민주당은 남한만의 선거를, 김구를 대표로 한 한국독립당김규식은 한반도 전역의 선거를 주장하였다. 결국 이 문제는 유엔 소총회로 넘어갔고, 1948년 2월 26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이 접근 가능한 한국의 지역에서 선거를 감시한다는 내용의 결의가 통과되었다.

유엔 소총회의 결정에 따라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은 1948년 5월 10일 이전에 접근 가능한 한국의 지역에서 선거를 실시한다는 방침을 세웠고, 주한미군사령관 존 하지(John R. Hodge)는 5월 9일을 선거일로 발표하였다. 다만 1948년 5월 9일이 일요일이기 때문에 하루 연기된 1948년 5월 10일이 최종적으로 선거일이 되었다. 또한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구성원들이 제기한 민주적 권리와 자유로운 선거 분위기를 보장한다는 결의도 통과되었다.

이러한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역할은 남한만의 단독 정부 수립을 위한 선거를 진행시켰다는 점, 한국 역사상 최초로 민주적인 선거를 이끌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또한 유엔한국임시위원단의 결정에 따른 남한만의 단독 선거는 국내 정치계가 이승만의 찬성파와 김구와 김규식의 반대파로 나뉘는 계기로도 작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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