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원

주전원

[ epicycle ]

주전원(epicycle)은 한 원 위를 따라 중심이 이동하는 원을 말한다 (그림 1). 지구를 중심으로 순행역행을 반복하는 태양, 그리고 5개 행성의 겉보기 운동을 기술하기 위하여 도입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가 '알마게스트'에서 집대성하여 천동설을 확립하는 데에 사용된 핵심 개념이다. 주전원의 중심이 그리는 원을 대원 혹은 균륜(deferent)이라고 부른다. 지동설을 제시한 코페르니쿠스, 갈릴레이와 케플러, 뉴턴을 거치면서 이제 천동설은 폐기되었고, 주전원도 더 이상 필요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두 가지 주파수로 회전 혹은 왕복 운동이 일어나면, 주전원의 개념을 도입하여 자연스럽게 기술할 수 있기 때문에, 주전원은 복잡한 회전 운동을 이해하는 데에 여전히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그림 1. 천동설의 핵심 개념인 주전원(epicycle)과 대원(deferent). 주전원의 중심은 대원 위를 따라 이동하고 태양, 달, 행성은 주전원을 따라 원운동한다. 지구(E)는 대원의 중심(C)에서 약간 비껴 위치하고 대원 중심 반대편에는 등심점(Q, equant)이 있다. 주전원 중심은 등심점에 대하여 같은 시간 동안 같은 각도만큼 이동한다. (출처: 이희원/한국천문학회)

목차

주전원의 역사와 개념

태양계 천체의 겉보기 운동을 설명하기 위한 주전원의 생각은 아폴로니우스가 기원전 3세기에 제안하였으며 히파르쿠스를 거쳐 프톨레마이오스의 저서인 ‘알마게스트’에 집대성되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받아들여질 때까지 주전원 이론은 서양 세계의 핵심적인 우주관이었다. 행성들의 겉보기 운동은 순행과 역행이 완벽히 규칙적으로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나중에 케플러가 발견하였듯이 이들의 운동이 실제로는 타원을 따라 궤도 운동하기 때문이다. 온전히 규칙적이지 않은 겉보기 운동을 설명하기 위하여 지구가 대원(deferent)의 중심에서 벗어난 곳에 자리잡고 있다고 가정한다. 대원 중심에 대하여 지구의 반대편에 있는 곳을 등심점(equant)이라고 불렀고, 주전원의 중심은 등심점에 대하여 같은 시간 동안에 같은 각도만큼 운동한다고 보았다. 주어진 각도에 대하여 등심점에 가까이 있으면 원호의 길이가 짧고 멀리 있으면 길기 때문에 등심점에 대하여 일정한 시간에 일정한 각도를 주전원의 중심이 이동하면 지구에 대하여 주전원 중심은 지구에서 가까울 때에 주전원 중심의 이동이 빠르고 멀리 있을 때에 느려진다. 이것은 케플러 제2법칙이 구현되는 바와 같으며, 프톨레마이오스의 주전원 모형이 상당히 큰 성공을 거둔 데에는 이러한 수학적 정교함이 있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 중심의 지동설에 입각하여 행성의 운동을 제안하였으며, 그의 사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갈릴레이가 망원경을 사용한 관측으로부터 금성의 위상 변화를 관찰하고 목성이 거느리는 위성을 발견하여 천동설의 근간을 흔들었다. 브라헤가 당대에 축적한 가장 정밀한 육안 관측 자료를 바탕으로 케플러가 행성의 궤도가 타원 궤도임을 밝힘에 따라 지동설은 더욱 확고해졌다. 코페르니쿠스의 우주 모형이 바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던 이유는 실제 행성의 궤도가 타원 궤도이기 때문에 여전히 원운동에 입각한 지동설 모형으로는 정확하게 기술하기 어렵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 모형은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 모형에 비하여 정확성의 향상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천구에 나타나는 각위치의 변화만을 놓고 볼 때에 지구가 회전하는 모형이나 지구를 중심으로 나머지가 회전하는 모형이나 같은 결과를 준다는 점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그림 2. 주전원 중심의 등심점(Q, equant)에 대한 등각속도 운동. 등심점을 기준으로 30도의 등간격으로 표시하였다. 주전원 중심은 일정한 시간동안 등심점에 대하여 같은 각만큼 이동하기 때문에 Q에 가까울 때 혹은 지구에서 멀 때 천구 위에서 겉보기 운동이 느리게 일어난다. 이것은 케플러 제2법칙이 주전원을 기반으로 구성된 천동설에서 구현된 방식이다. (출처: 이희원/한국천문학회)

타원 궤도와 주전원

케플러의 법칙으로 기술되는 행성의 타원 운동 역시 주전원의 개념을 도입하여 기술할 수 있다. 케플러 제2법칙에 의하여 행성의 운동은 태양에 가까울 때에는 공전이 빠르고 멀어지면 공전이 느려진다. 이러한 행성의 운동을 같은 공전 주기를 가지며 원 궤도를 그리는 관측자가 있어서 이 관측자의 관점에서 행성의 운동을 기술한다고 생각해 보자. 관측자가 태양을 응시하는 방향에 대하여 행성의 운동은 태양을 기준으로 좌우로 오가는 왕복 운동을 할 것이다. 이 때에 좌로 가는 운동은 행성이 태양에 가까울 때이고 우로 가는 운동은 행성이 태양에 대하여 멀리 있을 때이다. 그러므로, 가상의 관측자에게는 행성이 작은 원을 그리는 것처럼 나타난다. 이심률이 크지 않은 경우에 실제 계산에 따르면 주전원 궤도는 원이 아니고 관측자-태양을 연결하는 방향에 대하여 수직 방향으로 2배 긴 타원의 형태를 그린다.

이러한 상황은 달의 경도 칭동(libration)에서 살펴볼 수도 있다. 달은 동주기 회전을 하기 때문에 자전각속도가 평균공전각속도와 같지만, 공전 각속도는 근지점에서 약간 크고 원지점에서 약간 느리다. 따라서 공전각속도에서 자전각속도를 뺀 값은 양의 값과 음의 값이 반복되면서 나타나며 이러한 운동이 경도 칭동으로 나타난다. 이 값이 양수일 때에 지구-달 사이 거리가 짧고 음수일 때에 지구-달 사이 거리가 멀기 때문에 그림과 같이 경도 칭동은 지구-달의 평균 거리를 반지름으로 갖는 대원에 대하여 접선 방향으로 6도 남짓 폭을 가지면서 주전원 운동을 보인다.

그림 3. 지구를 공전하는 달의 궤도 운동과 경도 칭동. 관성좌표계에서 지구는 타원으로 주어진 달 공전 궤도의 초점에 정지해 있다. 가상의 관측자 A는 달과 같은 공전 주기 혹은 자전 주기로 원궤도 운동한다. 오른쪽 회전 좌표계는 지구와 가상의 관측자 A가 정지한 좌표계이다. 가상의 관측자 A에 대하여 달은 접선 방향으로 2배 긴 타원 형태의 주전원 운동을 한다. (출처: 이희원/한국천문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