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병리학

식물병리학

[ Plant Pathology ]

식물병리학은 식물에 발생하는 병에 대해 연구하는 학문 분야이다. 식물의 건강(Plant health)과 식량 안보(food security)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식물병이 발생하는 생물적, 환경적 요인을 연구하며, 이 요인들의 정확한 기작을 이해하는데 초점을 맞춘다. 응용곤충학과 함께 식물의학을 구성하는 학문 분야이다. 이를 통해서 농장과 산림의 식물병을 예방하고 방제하여 경제적인 피해를 최소화하는 것을 추구한다. 세계 인구가 계속 증가하는데 반해 경작 가능 면적이 줄어들고 있어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목차

식물병리학의 시작

1845년 아일랜드에서는 감자가 마르고 썩는 감자 역병이 나타났다. 이러한 증상은 재배지 뿐 아니라 땅 속에 보관 중이던 감자들에게까지 나타났다. (당시는 냉장 창고가 없었기 때문에 땅속에 묻어 두는 방식으로 보관하였다.) 주식으로 이용하던 감자에 생긴 피해였고 마땅히 다른 대체 작물이 없었기 때문에 기근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1849년까지 계속된 대기근(Great Famine)으로 인해 백만 명이 죽고 백만 명이 아일랜드를 떠나게 되었으며, 5년 만에 아일랜드의 인구가 25% 수준으로 떨어지는 위기를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시 이 병의 원인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못했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의 저주나 마귀의 장난으로 생각하였다. 또한 자연발생설에 대한 신념으로 인해 감자 괴경에서 자라는 균을 보았을 때도 식물이 부패한 결과로서 받아들이게 되었다.

1861년 Heinrich Anton de Bary는 감자 역병이 미생물에 의해 생긴다는 것을 실험을 통해 증명하였다. 두 집단에 건전한 감자를 심고 한쪽에는 감염된 감자로부터 모은 포자를 뿌리고 다른 쪽에는 뿌리지 않았다. 이를 통해 포자를 뿌린 쪽의 감자만 병이 생기는 것을 관찰하였고 그 균을 Phytophthora infestans라고 불렀다. 감염성 있는 식물(phyto)의 파괴자(phthora)라는 뜻이다. 이 균은 난균류에 속한다. 또한 de Bary는 감염된 감자괴경에서 겨울을 난 포자가 어린 식물을 감염하고 다른 감자들로 퍼져나감을 보여주었다. 이와 같이 식물병의 원인을 규명하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실용 학문으로 토대를 마련한 de Bary는 식물병리학의 아버지로 여겨지고 있다. 

감자역병에 관한 당시 기사 - 1846년 8월 29 ‘일러스트 런던 신문(The Illustrated London News)’에 실린 기사 (출처: 게티이미지 MARYEV14071365)

감자역병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을 묘사한 당시 기사 - 1847년 2월  ‘일러스트 런던 신문(The Illustrated London News)’에 실린 기사 (출처: 게티이미지 MARYEV10472852)

이 사건 이후에 Louis Pasteur가 미생물의 병원설(germ theory of disease)을 발표한 것을 고려하면 de Bary의 발견은 최초로 미생물이 병을 일으킨다는 것을 증명한 사례가 된다. 1887년 Robert Koch는 질병의 원인균을 진단하는 원칙인 코흐의 가설(Koch’s postulates)을 제시하였으며, 이 원칙은 병의 원인균을 진단하는 기준으로서 지금도 이용되고 있다. 이와 같이 식물병리학은 미생물학(microbiology)의 발달과 함께 한다.

식물병의 원인

식물병의 원인은 사람과 동물에 병을 일으키는 원인과 근본적으로는 같으며 크게 생물적인 원인과 비생물적 원인으로 구분할 수 있다.

생물적 원인

생물적 원인이란 병원균에 의한 감염병을 가리킨다. 감염원의 종류에 따라 바이러스, 바이로이드(viroid), 세균, 곰팡이, 원생동물 같은 병원성 미생물과 선충 및, 기생식물 등의 동식물이 모두 원인이 될 수 있다. 이들 병은 주변으로 전염될 수 있다. 곤충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병을 일으키고 확산시키는데 영향을 준다. 곤충에 묻어서 병원균이 매개되기도 하고 곤충의 섭식을 통해서 식물체의 저항성이 약화되거나 병원균이 침입하기 쉬워질 수 있다. 그러나 곤충 자체가 병의 직접적인 원인으로 정의되지는 않는다. 일반적으로 곤충이나 사람 또는 기타 동식물의 섭식 또는 물리적 가해에 의한 식물피해는 식물병리학의 연구분야로 볼 수 없다.

비생물적 원인

비생물적 원인으로는 양분, 온도, 수분, 빛, 산소 등의 부족이나 과다 등 식물생장에 부적당한 환경조건 그리고 토양 속의 무기양분, 독성 화학물질 등도 병을 일으킬 수 있다.  

이러한 요인을 함께 표현한 것이 병 삼각형(disease triangle)이다. 병원균, 기주(식물), 환경이라는 세 요소를 삼각형으로 배치한 그림으로, 각 요소의 영향력은 한 변의 길이가 되고 면적은 병의 발생량이다. 따라서 어느 한 요소라도 0이라면 병이 나지 않는다. 병원균이 발병력이 크거나 밀도가 높으면 발병량이 커진다. 기주 식물이 병원균에 대해 100% 저항성을 보인다면 한 변의 길이는 0이 되고 병은 발생하지 않는다. 발병을 조장하는 온도나 습도 같은 환경에 가까워진다면 병이 많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앞서 설명했던 아일랜드 대기근의 감자 역병의 경우를 보면, 병원균인 Phytophthora infestans는 운동성 있는 포자를 가지고 있어서 습한 환경에서 쉽고 빠르게 확산되고 물기가 없으면 확산이 잘 되지 않는다. 대기근 당시 습하고 저온인 환경은 병원균의 밀도를 높이고 병원균의 이동을 기주에 접근이 쉽도록 만들어 병이 대발생하게 만들었다. 

감자역병균(Phytophthora infestans)의 포자낭(sporangium) – 포자낭 안에 운동성있는 유주포자(zoospore)들이 발달한다. (출처: SPL C018 0307)

병 삼각형(disease triangle) – 병원균, 기주, 환경 세 요소의 영향력은 삼각형의 변의 길이가 되고 면적은 병 발생량으로 표시된다. (그림: 최재혁/인천대학교)

식물병리학의 범위

식물병리학은 다양한 기초 분야의 지식이 융합되어 있는 종합적 분야이다. 기주가 되는 식물에 대한 지식을 공부하는 식물분류학, 식물생리학, 식물형태학과 병원균에 대해 배우는 균학, 세균학, 바이러스학, 선충학 등과 같은 미생물학(microbiology)을 근간으로 한다. 또한 병원균을 매개하는 곤충에 대한 이해도 필요하다. 병과 저항성은 유전학, 분자생물학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며 육종과 관련해서는 육종학, 원예학, 유전공학, 계통학 등의 분야가 관련된다. 병의 확산에 대해서는 역학과 기상학, 지리정보학 등이 관련되고 환경 측면에서는 토양학, 산림학, 생태학 등의 지식이 연결될 수 있다. 방제와 관련하여 농약학, 독소학, 유기화학, 생화학, 물리학 등이 관련된다. 최근에는 유전체학, 단백질체학, 전사체학, 대사체학, 메타유전체학 등이 접목되어 포괄적인 수준에서 식물병을 이해하려는 연구가 많이 진행되고 있다. 병의 원인이 다양하기 때문에 관련되어 있는 분야도 다양하며,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빠르게 병을 진단하거나 아예 저항성 품종을 개발하는 방향으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식물병리학 관련 분야

식물이 자라고 있는 곳은 모두 식물병리학에 관련된 분야로 적용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크게 농경지와 산림, 기타 지역으로 구분된다. 농경지에 관해서는 농촌진흥청에서, 산림은 산림청에서 식물병리학과 관련된 예찰, 진단, 방제, 육종, 역학조사 등의 분야를 다루고 있다. 각 시도에는 농업기술원이 있으며 여기에서도 지역 내의 공원, 가로수, 정원의 식물에 발생하는 병에 대해서 다룬다. 또한 농림축산검역본부에서도 식물병리 전공자를 검역관으로 선발하여 농산물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국내에 없던 외래 병원균이 유입되지 않도록 차단한다. 또한 종자나 농약 관련 회사들도 식물병리학 관련 전공자를 필요로 한다. 최근에는 식물병원이나 나무병원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며, 우리나라에도 나무의사 국가자격 제도가 2018년부터 시행되었다. 식물병리학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서는 식물병리학과 또는 농생물학과(응용생물학과)가 있는 대학으로 진학하면 된다. 국내 식물병리학 연구자들의 모임은 사단법인 한국식물병리학회가 있으며, 라는 저널을 발행하고 있다.

관련용어

균학, 코흐의 가설(Koch’s postulates), 바이러스, 바이로이드(viroid), 세균, 곰팡이

집필

최재혁/인천대학교

감수

조장천/인하대학교

참고문헌

Agrios, G.N. 2005. Plant pathology. 5th. Elsevier Academic Press. Burlington. MA, USA, pp. 4-22.

동의어

Plant Pathology, Phytopathology, 식물병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