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주노초파남보, 내게 맞는 선글라스는?

빨주노초파남보, 내게 맞는 선글라스는?

주제 물리학
칼럼 분류 만화기사
칼럼 작성일 2011-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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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빛 바다와 철썩이는 파도, 그리고 새하얀 모래사장이 드넓게 펼쳐진 아름다운 해변. 검정색 세단이 스르륵 와서 서고 한 여인이 우아하게 스카프를 넘기며 내린다. 바다빛깔처럼 푸르른 선글라스가 유독 시선을 끈다. 그녀의 이름은 바로, 태연!

“태연아, 극히 부조화스러운 너의 구제불능 패션 감각을 나무랄 생각은 없지만 말이다···. 그 파란색 선글라스는 진짜 아니라고 아빠가 말했잖아. 눈 건강에도 별로 좋지 않다고!”

“에이, 아빤 역시 패션을 모르신다니깐~. 이게 요즘 파리지앵들 사이에서 얼마나 인기 짱인지 아세요? 엊그제 거금 5,000원을 들여 마트 매대에서 획득한 최신 유행 선글라스라고요.”

“그러니까 내 말이 그거야. 뽑기 기계에서 뽑은 선글라스 쓴다고 파리지앵이 되는 건 아니잖아.”

“아, 그럼 어떡하라고요! 패션의 마무리는 선글라스인데 그걸 포기하란 말이에욧?”

“일단 이렇게 햇볕이 강한 바닷가에서 선글라스는 쓰는 건 탁월한 선택이야. 자외선에 오래 노출된 피부가 벌겋게 달아올라 약한 화상을 입는 것처럼 눈동자도 화상을 입는단다. ‘광 각막염’이라는 증상이 나타나는데, 처음엔 아무 이상이 없다가 반나절 쯤 지난 뒤부터 머리가 아프고 시야가 흐려지면서 눈물이 나지. 또 백내장에 걸릴 위험도 높아져요. 그런데 선글라스는 최고 98% 이상 자외선을 차단해주거든. 안과에 가고 싶지 않으면 어릴 때부터 선글라스를 애용해 주는 게 좋지.”

“그런데 왜 파란색은 안 좋다고 하시는 거예욧! 이게 젤 멋있구만.”

“선글라스라고 해서 다 똑같은 건 아냐. 색깔과 색의 진한 정도에 따라 용도가 모두 다르단다. 빨주노초파남보 이런 색들은 굴절률, 다시 말해 빛이 투과될 때 꺾이는 정도가 각기 다르단다. 빨강, 주황, 노랑, 즉 적색계열 색들은 빛이 조금만 굴절된 상태로 바로 망막에 닿아 정확히 상이 맺히지만 파랑, 남색, 보라, 즉 청색계열은 크게 굴절되기 때문에 빛이 망막에 닿기도 전에 상이 맺혀서 시야가 흐릿하게 보이지. 빛의 산란이 심해서 눈도 많이 부시고 말이야. 그래서 청색계열은 선글라스로 적당하지 않다고 하는 거란다.”

“그럼, 다른 색 선글라스들은 어떻게 용도가 다른데요?”

“회색이나 검은색 계열의 선글라스는 모든 색상의 빛을 골고루 줄여주기 때문에 아무 때나 보편적으로 사용하기 편하고, 녹색계열은 눈을 편안하게 해 피로를 덜 느끼게 해준단다. 눈이 심하게 피로할 때 쓰면 좋겠지. 또 주황색이나 노란색 선글라스는 흐린 날이나 야간에 운전할 때 시야를 선명하게 해줘서 좋고, 붉은색은 색깔을 더 뚜렷하게 볼 수 있게 해주면서 동시에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도 크게 줄여주지.”

“에이, 그렇게 다양한 용도의 선글라스를 다 가지려면 엄청 부자여야 할 거 아니에요. 제가 엄마한테 특별히 사탕 뇌물을 주고 얻어 들은 알짜 정보에 의하면 아빠의 월급이 그다지 많지는 않더군요. 저를 미친 듯 사랑하는 아빠의 마음만 감사히 받겠어요.”

“참 나···, 도대체 뭐라는 거니? 아무튼 색깔 다음으로 신중하게 봐야 할 것이 선글라스 색의 진하기란다. 실내에서 조명을 켰을 때는 400~600루멘(lm, 광속 측정 단위), 밝은 날 실외의 그늘은 1,000lm, 고속도로는 6,000lm, 스키장은 1만 2,000lm까지 빛이 강해지지. 빛을 많이 차단하려면 더 진한 선글라스를 쓰면 돼. 하지만 어두운 실내에서 짙은 선글라스를 끼면 눈에 들어오는 빛의 양이 지나치게 줄어들어서 눈의 동공이 아주 크게 확장된단다. 결국 눈이 쉽게 피로해지지. 그러니까 실내에서 선글라스 착용은 되도록 피하는 게 좋아.”

“그럼 실내에서는 일반 안경이다가 밖에 나가면 선글라스가 되는 안경을 쓰면 되잖아요.”

“오호, 그렇지. 감광렌즈로 만든 선글라스를 쓰는 것도 좋은 방법이야. 또 해변의 모래사장이나 자동차 표면에서 반사되는 번쩍거리는 빛을 제거해주는 편광 선글라스, 빛을 아예 반사해 버리는 선글라스 등 독특한 기능을 가진 선글라스도 많단다. 중요한 건 너처럼 멋 부리기 용으로만 선글라스를 구입하지 말고 용도를 잘 생각해가며 사야 한다는 거지.”

“그럼 말만 마시고 당장 안경점으로 가자고요, 아버지. 저에게 딱 맞는 좋은 선글라스를 골라주세요.”

“뭐 별거 있겠니. 너는 주로 바닷가에서 쓸 거니까 렌즈에 붙어있는 라벨을 꼼꼼히 살펴서 자외선 차단 지수가 높은 걸 선택하렴. 라벨이 없으면 안경점에 있는 자외선 차단율 기계로 정확한 수치를 확인해 볼 수 있단다. 또 렌즈 색의 진하기가 일정해야 하는데, 이건 흰 종이 위에 올려놓고 살펴보면 돼. 자동차에서 반사되는 빛에 비춰보면 편광 기능이 있는지 없는지도 알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건··· 뭘까~요?”

순간, 동물적인 본능으로 뭔가를 직감한 태연. 헐크 같은 표정으로 으르렁댄다.

“으으으으~~~ 돈!!! 이라고 하시려는 거죠? 안 돼, 안 돼, 정말 안 돼!! 나도 이제 제대로 된 내 선글라스를 갖고 싶다고요! 진짜 제대로 된 거!!”

갑자기 아빠가 호주머니에서 아주 오래된, 반쯤 썩은 듯 보이는 촌티 폴폴 선글라스를 꺼낸다.

“아이, 왜 그래~. 이게 한때는 파리지앵들도 꼴딱 넘어가는 완전 멋쟁이 선글라스였다고. 쿠할할~. 아빠가 큰 맘 먹고 물려주는 거니까 딱 삼년만 아껴 쓰렴. 돈은 아껴야 제 맛이잖아. 안 그래?”

  • 김희정 - 과학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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