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핀 전투

시핀 전투

[ Battle of Siffin ]

요약 657년 이슬람 공동체 지도자 문제를 둘러싸고 제4대 칼리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와 우마이야 가문의 무아위야 이븐 아비 수프얀 사이에서 벌어진 내전.
원어명 وقعة صفين‎‎
언제 657
어디서 현 시리아 라카, 시핀
누가 무아위야 이븐 아비 수프얀,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
이슬람 공동체 지도자 문제

657년 발발한 무슬림 내전이다. 이슬람 공동체의 지도자 계승 문제를 둘러싸고, 당시 시리아 다마스쿠스 총독이었던 우마이야 가(家)의 무아위야 이븐 아비 수프얀(Muawiyah ibn Abi Sufyan, 재위 661-680)과 이슬람 정통칼리프의 제4대 칼리프 알리 이븐 아비 탈리브(Ali ibn Abi Talib, 재위 656-661)가 전투를 벌였다. 657년 7월 유프라테스강 상류지점인 현 시리아 라카에 위치한 시핀에서 발발하여 시핀전투라 불린다.

이슬람은 아라비아반도에서 예언자 무함마드와 정통칼리프시대(632-661)에 급성장하였다. 그러나 예언자 무함마드가 사망한 후 이슬람 공동체는 누구를 새로운 지도자로 세워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에 직면하였다. 이슬람 공동체는 선거를 통해 아부 바크르(Abu Bakr, 재위 632-634)를 지도자로 선출하였고, 이후 아부 바크르는 제2대 칼리프로 우마르 1세(Umar ibn al-Khattab, 재위, 634-644)를 지목하였다. 이후 우마이야 가문 출신의 제3대 칼리프 우스만 이븐 아판(Uthman ibn Affan, 재위 644-656)이 살해 당한 후 알리가 제4대 칼리프로 추대되었으나 이를 반대하는 세력이 있었다. 우스만을 살해한 세력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스만의 사촌인 무아위야는 4대 칼리프가 된 알리를 새로운 지도자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하였다. 결국 알리의 칼리프 추대에 반대하며 시핀전투가 발발하였다.

전투는 결말이 나지 않고 장기화되었으며, 양 진영에 피해자가 늘어나자 무아위야와 알리는 중재안에 합의하였다. 그러나 알리의 추종자 중 일부는 칼리프의 계승은 타협에 의해 결정될 문제가 아니라 알라(Allah) 즉, 신이 결정할 문제임을 주장하며 알리 진영을 이탈하였다. 이후 이들이 카와리지파(Kharijites)를 형성하였다. 알리는 661년 쿠파에서 암살당하였으며, 무아위야가 스스로 칼리프로 선언하고 이슬람 우마이야 왕조(Umayyad Caliphate, 661-750)를 건립하였다.

카테고리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