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광록
[ 宋光祿 ]
송광록(宋光祿)은 19세기에 활동한 판소리 명창으로, 이른바 전기 팔명창에 속하는 인물이다. 전북 운봉(현재 전북 남원시 운봉읍)에서 태어났다는 설, 전북 함열·웅포(전북 익산시 함열읍·전북 익산시 웅포면) 일대에서 태어나 운봉 비전리에 살았고, 중년 이후에 구례에 거주했다는 설 등이 있다. 정확한 생몰연대는 알 수 없다. 세습예인 집안 출신으로, 판소리 고수 송첨지의 아들이자, 판소리 명창 송흥록(宋興祿)의 동생, 송우룡(宋雨龍)의 부친, 송만갑(宋萬甲, 1865-1939)의 조부이다.
당대 국창(國唱)으로 이름이 높았던 형 송흥록의 고수로 수년간 수행하다가, 고수에 대한 차별 대우에 불만을 품고 종적을 감췄다. 이후 제주도로 들어가 4, 5년간 소리 공부에 전념해 득음했고, 다시 돌아와 명창의 반열에 올랐다. 소리를 가르친 스승에 대한 기록은 따로 전하지 않으나, 집안에 전해오는 소리를 계승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아들 송우룡이 그의 제자였다. 그의 소리는 아들 송우룡과 손자 송만갑, 증손자 송기덕(宋基德)으로까지 이어져 판소리 동편제의 큰 맥을 형성했다.
신재효(申在孝, 1812-1884)는 〈광대가(廣大歌)〉에서 "송낭청(宋郞廳) 광록이난 망망(茫茫)한 장천벽해(長川碧海) 걸릴 데가 없었으니 만리풍범 왕마힐(萬里風帆 王摩詰)"이라고 하여, 송광록의 거침없고 웅대한 창법을 자연시의 대가인 왕유(王維)에 비교한 바 있다.
〈춘향가〉를 장기로 삼았으며, 그 중 "만첩청산 늙은 범이···"로 시작하는 '긴사랑가'가 그의 더늠이다. 느리고 유유한 진양조장단에 화평정대한 우조로 불리는 '긴사랑가'는 여전히 활발히 전승되고 있는 더늠이다. 한편 김창룡(金昌龍, 1872-1943)이 1930년에 녹음한 〈심청가〉 중 '범피중류'(Columbia 40279-A 名唱制 泛彼中流 金昌龍 鼓韓成俊) 유성기 음반 음원에 따르면, 이 대목도 송광록의 더늠이라 한다.
참고문헌
- 정노식, 『조선창극사』, 조선일보 출판부, 19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