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의보감 번역, 그 10년의 여정

동의보감 번역, 그 10년의 여정

동의과학연구소(東醫科學硏究所, 이하 동과연)에서 『동의보감』의 번역에 뜻을 둔 것은 동과연의 전신인 의철학연구소(醫哲學硏究所, 이하 의철연)가 창립된 1992년이었다.

우리가 연구소를 설립했을 때만 해도 한의계의 상황은 암담 그 자체였다. 학회다운 학회는 보기 힘들었고 고작해야 소그룹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으며, 그나마 매우 폐쇄적인 전통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다. 본격적인 한의학 연구서는 물론 당장 필요한 임상 서적조차 믿을 만한 것이 없었다. 당시 우리는 아직 임상의 초년병이어서 한의학에 대한 이해가 깊지 않았으며, 따라서 당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공부도 할 겸 중요 고전을 번역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일차로 우리에게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아직까지 제대로 된 번역본이 없는 『동의보감』을 번역하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번역문은 최대한 우리말로 풀되 자세한 역주를 달아서 연구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원칙을 정했다(자세한 번역 원칙은 를 참조하기 바란다).

352차 동의보감 편집회의

352차 동의보감 편집회의

동의보감 강독회 구성

이렇게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동의보감 강독회(위원장 안규석(安圭錫) 경희대 한의대 교수)를 구성한 것이 1993년 10월이었다. 원래 처음의 계획은 『동의보감』 전체의 번역을 약 5년에 걸쳐 마칠 생각이었다. 그러나 막상 번역을 시작하자 우리의 생각이 너무도 짧았음을 알게 되었다. 『동의보감』은 알다시피 수많은 의서를 인용, 편집한 책이기 때문에 인용문의 출전을 밝히지 않으면 편집 의도를 정확히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번역 자체도 어려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막상 인용한 의서의 출전을 확인하려 해도 그 책들을 구할 수 없거나 어려운 경우가 많았다. 그리고 이를테면 출전을 명기한 곳도 그저 '단심(丹心)'이라고만 되어 있어, 『단계심법(丹溪心法)』을 지칭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주진형의 또 다른 저서나 방광(方廣)의 『단계심법부여(丹溪心法附餘)』를 가리키는 경우도 많아서 출전을 확인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해 보였다.

더구나 다른 학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한의학은 임상에 대한 이해 없이는 어떠한 고전 번역도 수박 겉 핥기 식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번역에 착수하고 나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다. 특히 『동의보감』의 처음에 해당하는 「집례(集例)」와 「신형(身形)」, 「정기신(精氣神)」을 다룬 편(篇) 등을 번역하면서 그 내용의 폭과 깊이에서 큰 어려움을 겪었지만, 우리의 미천한 임상 경험 때문에 더욱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이러한 임상 경험의 부족은 『동의보감』을 번역할수록 구체적인 질환을 다루는 데서 더욱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이러한 문제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부분이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번역 기간이 길어지면서 우리의 임상 경험도 쌓이고 또 몇 년 전에 번역했던 부분을 다시 검토하는 시간을 갖게 되어 큰 실수를 피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또한 평소에는 한문 자체로 이해하고 넘어간 부분들을 우리말로 바꾸는 작업에서 개념 정리가 되지 않아 단어 하나를 놓고 한두 시간씩 토론하는 일도 예사였다. 한 단어가 지니는 미묘한 차이나 서로 이해한 개념의 차이 때문에 때로는 서로 얼굴을 붉히며 논쟁을 벌이기도 했고, 수많은 사전과 의서들을 늘어놓고 몇십 분이고 한 마디의 말도 없이 책만 뒤적인 적도 많았다. 그러다 보니 번역의 진도는 너무도 더디기만 해 한번의 강독에 『동의보감』 원문의 서너 줄도 나가지 못하는 때도 있었다.

또 번역에 참가한 인원의 한두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개원을 한 상태였고, 더욱이 임상과 한의원 경영에서의 짧은 경험이 개인적인 생활에서의 어려움을 배가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에서는 물론 대전, 청주, 천안, 그리고 원당, 의정부, 인천 등지에서 매주 월요일이면 참으로 미련스러울 정도로 모여들었다. 보통은 7, 8명 정도가 모였지만 때로는 두세 명이 모여 조촐하게 진행되기도 했다.1) 평균적으로 매년 43회, 매회 6명, 10년 간으로 계산하면 연인원 2,600명이 넘는 인원이 참가한 셈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원고지로는 8,000매, 3천 개에 이르는 역주를 단 역주본 『동의보감』 제1권이 탄생한 것이다.

처음 계획은 동양철학이나 자연과학(서양의학 포함)을 전공한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관점에서 『동의보감』을 해석하자는 것이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김교빈(金敎斌, 한국철학, 호서대 교수), 최종덕(崔鍾德, 자연철학, 상지대 교수), 이현구(李賢九, 한국철학, 성균관대 강사), 조남호(趙南浩, 동양철학, 서울대 강사), 황희경(黃熙景, 동양철학, 성심여대 겸임교수), 이동철(李東哲, 동양철학, 용인대 교수) 등이 참여해 「집례」와 「신형」까지 함께 작업을 했다. 최소한 이 부분은 한의학 자체만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었고, 또 다양한 각도에서 접근하는 것이 『동의보감』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우리의 기대는 예상을 넘는 성과를 가져왔다. 한문에 밝으면서 각자 자신의 학문에 일가견이 있는 연구자들과의 강독은 우리의 눈을 새롭게 뜨게 하였다. 흔히 말하는 문리(文理)가 트인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웠으며, 글을 읽는 올바른 태도를 배운 것이다. 그래서 이 분들과의 강독은 단순한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글을 대하는 학자의 기본을 배운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한 만남이었다. 당시 우리의 학적 수준은 너무 천박해 감히 번역을 운위할 계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이 만남을 통해 우리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알게 되었으며, 큰 반성과 더불어 새롭게 시작해야 한다는 각오도 다지게 되었다. 절망 뒤에 찾아온 희망이랄까…, 아무튼 이 만남을 계기로 우리의 번역은 사실상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우리는 한의학과 인접한 여러 학제간의 연구를 통해 정확한 번역과 더불어 『동의보감』에 대한 동서의학적 검토와 한의학의 철학적 기초에 대한 규명이 이루어지기를 기대한다. 나아가 각 분과 과학의 연구자들이 함께 토론하는 기회를 마련함으로써 학문간의 연계 작업에도 새로운 진전이 있으리라 생각된다.

번역 과정

번역은 먼저 신형, 정, 기, 신과 같이 각문(各門)을 한 사람씩 맡아서 각자가 분담한 부분을 1차 번역하고, 이를 여럿이 모여 한 문장씩 검토하고 토론을 했다. 이렇게 수정된 번역본을 곽노규(郭魯圭)가 1998년부터 1차로 역주를 달았으며, 2차로 박석준(朴奭濬)이 편집을 하고 다시 교열과 역주를 달았다. 이렇게 편집과 교열, 역주를 마친 원고를 처음 그 부분의 번역을 담당했던 사람에게 교열하게 했으며, 이를 다시 박석준이 교열하고 역주를 보충했다. 이렇게 하여 1차 원고가 준비되었다. 우리에게 1차와 2차 교열은 사실상 거의 재번역에 가까웠다. 1차 교열을 본 시점이 첫 번역 이후 5년 이상이 지나서 『동의보감』과 임상, 한문에 대한 우리의 이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 원고로 2001년 2월 말부터 원진희 등이 교정한 『정교 동의보감』을 참고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했다. 그리고 나서 곽애춘(郭靄春) 등이 교주한 『동의보감』의 판본 비교를 반영하면서 다시 교열을 했다.

이런 상태의 원고를 이현구, 구태환(具台桓, 한국철학 전공), 김시천(金是天, 동양철학 전공) 선생이 교열을 보고 마지막으로 박석준이 교열을 보고 역주를 보충했다. 그리고 출판사에서 나온 교정지로 이동관(한의사), 나선삼(한의사), 박해모(한의사), 오영제(한의사), 동과연 집중교육 1기 학생들과2) ‘내경 강독회’ 회원3), 교열자들이 교정을 보았다.

나름대로 교열과 교정의 과정을 거치기는 했지만 마지막 교열 과정에서까지 나오는 오자를 보며 참담한 마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믿거나 말거나 옛날에는 인쇄할 때 글자 하나 틀릴 때마다 인쇄공의 손가락 마디를 하나씩 잘랐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면서, 글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새삼 느꼈다. 또한 자다 일어나 문장을 읊어도 토씨 하나 틀리지 않았다는 옛 선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과연 오늘날 우리의 사고 구조가 얼마나 방만한 것인지도 알 수 있었다. 외운다는 것은 단순한 암기가 아니다. 외우려는 대상과 내가 동일한 사유 구조를 가질 때만이 외워지는 것이다. 말로만 몇천 년을 거쳐 전해온 단군 신화의 최초 내용과 오늘날의 내용이 거의 같을 것이라는 추정은 가능할 뿐만 아니라 사실일 수밖에 없다고 우리는 믿는다.

우리는 처음에 교열이나 역주 작업에는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기대를 갖고 있었다. 그러나 어떤 경우 역주 하나를 달기 위해 심하게는 한두 달을 아무런 다른 작업도 하지 못하게 되자 상황이 달라졌다. 도저히 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이는 자료를 찾기 위해 온갖 방법을 동원했고, 또 어렵게 구한 자료에서 서너 마디의 글을 찾아 책을 수차례 보면서 포기하려 할 즈음 우연히 펼친 곳에서 그 구절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또 허망함! 그렇지만 이 번역본에는 주를 달지 못한 곳이 즐비하다. 독자 여러분의 도움을 간절히 바랄 뿐이다. 이 책을 보면서 발견하는 오역과 오류, 부족한 부분을 지적해주길 바란다. 이는 완전한 『동의보감』을 완성하는 과정이 될 것이다.

한의학의 인문학적 전통 복원

우리가 『동의보감』을 번역하면서 제일 먼저 생각한 것은 한의학의 인문학적 전통을 어떻게 복원하고 발전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주지하다시피 옛 의서는 대부분 유의(儒醫)나 도교의 이론가가 정리하거나 지은 것이 대부분이다. 모든 학문이 그러하듯이 한의학 역시 단순한 임상만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거기에는 풍부한 개별적인 임상 경험을 아우르는 이론이 있어야 하며, 그 이론의 바탕을 이루는 철학이 있어야 한다.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임상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반드시 인문학적인 접근이 있어야 풀릴 수 있는 문제이다. 옛 의서에는 유교든 도교든 자연스럽게 그 철학이 배어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러한 전통을 일제 강점기를 거치며 상실했다. 더욱이 광복 이후 미국 주도로 불과 50여 년 사이에 이루어진 급격한 근대화는 우리의 전통을 삶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지워버렸다. 여기에 동서(東西)와 고금(古今)이라는 구별과 차이에 대한 반성을 거치지 않은 채 70년대 중반부터 한의계에 도입된 중의학(中醫學)은 오늘날 한의학의 대명사가 되었다.4) 또한 90년대 후반부터 한의계에 대량으로 도입된 대체 의학이나 서양의 근대 의학적 방법들은 한의학의 인문학적 전통을 되살리려는 노력을 무력화시키기도 했다.

이런 점에서 7, 80년대를 통해 우리의 한의학(‘순수’나 ‘전통’ 한의학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했다)을 찾으려는 일부 시도는 오늘날 무의미해 보인다. 중의학을 중심으로 서양의 근대 의학, 일본의 한의학5), 주로 미국에서 전해진 대체 의학 등이 오늘날 한의학을 대표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진단을 할 때 과학화에의 요구, 병명을 중심으로 한 임상의 전문화 경향, 역학 조사의 필요성, 한의원이나 한방 병원의 경쟁과 이에 따른 대형화 등은 한의학에서의 인문학적 전통의 회복이라는 문제를 희석시키고 있다. 단적으로 현재 한의대 대학원에서 나오는 학위 논문의 대다수는 서양의 근대과학적 방법에 따른 연구 일색이다. 동과연은 우리의 한의학을 찾으려는 시도의 끝자락(80년대 후반)과 새로운 기법이나 임상이 도입되는 첫머리(90년대 초반)에 한의대를 다닌 한의사가 중심이 되어 만든 단체이다.

따라서 우리의 관심과 고민은 당연히 이러한 두 흐름 가운데 있다. 과연 동서와 고금이라는 문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해결해야 하는지, 나아가 새로운 사회에 적용될 한의학, 그리고 일반적인 의학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문제 의식은 임상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반드시 인문학적인 접근을 통해 풀려야 한다고 우리는 믿는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한의계만이 아니라 한의학과 인접한 여러 학문 분과들과의 울타리 없는 교류와 연구가 있어야 한다고 믿는다. 우리는 이번에 번역해 내놓는 『동의보감』이 그러한 작업의 첫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기출간된 『동의보감』 번역본들

지금까지 『동의보감』의 번역본이 몇 종이 나왔는지 정확한 통계 자료가 없어 알 수 없다.6) 과문한 필자가 조사한 바로는 열 종이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이 번역본들은 역자의 이름만 다르거나 출판사만 다른 경우도 많다.

출판계의 사람들에 따르면 전국 거의 모든 가구에 『동의보감』 번역본이 한 권씩은 비치되어 있다고 한다. 과장된 말이겠지만 『동의보감』의 대중성과 실용성을 확인할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러한 번역본 중 여기에서 언급할 수 있는 번역본은 단 두 종류뿐이다. 하나는 남산당에서 발행된 것이고, 다른 하나는 여강출판사에서 발행된 것이다.

『동의보감』 강독회가 조직된 1993년에는 남산당에서 나온 번역본이 있을 뿐이었다. 남산당의 번역본은 한 권으로 되어 있어서 『동의보감』의 앞뒤를 연관해 찾아보기에 편하고 휴대하기에도 편하며 또 어려운 부분에서는 대개 토를 다는 수준에 그치고 있었으므로 차라리 심각한 오역을 피하면서, 원문을 함께 싣지 않은 한계도 보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물론 자주 눈에 띄는 오역과 불완전한 번역은 이 번역본의 큰 단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책을 처음 번역한 허민(許珉) 선생에 대해 존경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 한때 우리는 남산당 번역본의 한계를 마치 대표적인 오역의 예로 들먹거리기도 했지만, 막상 우리가 번역 작업을 시작하자 어떠한 고전을 최초로 번역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실감하게 되었고, 거의 아무런 참고 자료도 없이 번역에 나섰을 허민 선생을 생각해 보면, 그리고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번역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없는 출판계 상황을 생각해 보면 번역을 둘러싼 허민 선생의 조건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한의학을 전공하지 않았으면서 우리 고전을 번역해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밤을 지새웠을 허민 선생을 생각하면 마음이 숙연해진다. 아무튼 남산당의 『동의보감』은 번역상 여러 문제가 있었지만 수많은 한의사와 한의대생이 애독하는 책이 되었고, 지금도 판을 거듭하고 있는 역사적인 번역본이기도 하다.

그러던 중 1994년 5월 여강출판사가 북한의 번역본을 재조판해 출간했다. 그때 우리로서는 참으로 천군만마(千軍萬馬)를 얻은 기분이었다. 이 번역본은 1962년 의학출판사에서 조헌영 선생을 중심으로 번역, 간행한 것을 1982년 과학백과사전출판사에서 다시 번역하고 간단한 주해를 달아 다섯 권으로 간행한 것이다. 이를 남한의 여강출판사에서 재조판을 한 것이다. 이 번역본과 우리의 번역을 하나하나 대조하고 또 어려운 부분을 참고하면서 북한의 번역본이 얼마나 큰 고뇌와 땀을 담고 있는 것인지 어렴풋하게나마 느낄 수 있었다. 우리로서는 잊어버린 지 오래인 아름다운 우리말을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부터 우리를 주눅들게 하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오랜 임상 경험을 가진 사람만이 해낼 수 있는 번역을 보면서 참으로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무엇보다 감격한 것은 우리가 번역을 하면서 난관에 부딪힌 부분에서 북한의 그 누군가도 마찬가지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것을 함께 느낀 일이었다. 어떻게 번역해야 할지 도저히 감을 잡을 수 없는 대목에서 그들도 마찬가지로 고민한 흔적이 역력히 보였고, 그런 과정을 거쳐 선택된 역어를 보면서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공감하는 일은 참으로 짜릿한 쾌감이었다.

우리는 『동의보감』의 번역을 통해 너무도 멀리 떨어져 있는 아직 생존해 있는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동의보감』 번역에 참여한 북한의 여러분들과 은밀한 학문적 조우를 가진 셈이다. 정부의 아무런 사전 허가도 받지 않고(!) 북한의 학자들과 교감을 가지면서, 특히 어떤 부분에서는 『동의보감』의 번역을 주도한 것으로 알려진 조헌영(趙憲永) 선생의 체취가 느껴지는 듯해 가슴이 뜨거워질 때도 있었다.7) 그리고 교정 작업이 한창이던 2000년 6월 15일, 남북 정상이 만나게 되었다. 남북 정상의 만남에 느끼는 감회야 누구에게나 남다를 수밖에 없었겠지만, 『동의보감』 번역 하나만으로도 남북 학술 교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한 우리로서는 이날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언제쯤 자유롭게 남북의 학자가 모여 『동의보감』을 비롯한 한의학 연구를 함께 할 수 있는 날이 올런지….

물론 북한의 번역에도 몇 가지 지적하고 싶은 문제가 있다. 북한판에 부분적으로 나오는 오역은 여기에서는 언급하지 않기로 하겠다.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처럼 완전한 번역은 있을 수 없으며, 또 우리가 오역이라고 판단한 부분은 이미 이 번역본에 수정된 내용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의학 이론의 전개상 불필요하다고 판단되는 부분을 자의적으로 제외한 것은 반드시 재고해야 할 부분이다. 이를테면 봉건적 잔재 혹은 비과학적이라는 판단으로 원문의 일부를 생략한 것이다. 우리는 이런 판단은 번역자의 몫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판단은 읽는 독자의 몫일 수밖에 없다.

다음으로 과연 그 번역의 대상이 누구인지에 대해 우리는 이렇게 생각했다. 북한의 번역본은 철저히 대중화를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한의학 연구 수준을 살펴볼 때, 아직은 고전에 대한 천착이 더 중요하고 그런 전문적 연구를 통해 대중화가 가능하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따라서 역어의 선택이나 역주의 범위와 수준 역시 일차적으로는 고전에 대한 연구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기도 하다. 바로 이 점에서 북한의 번역본은 우리와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 북한판은 최대한 우리말을 살리고 누구나 알 수 있는 용어로 풀어내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로 보인다. 이는 대표적으로 약물명(藥物名)을 속명으로 표기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이것은 어떤 것이 맞고 틀리고의 문제는 아니다. 의학은 항상 시대의 산물이다. 따라서 의학은 그 시대의 요구에 충실할 수밖에 없고, 또 그럴 때만이 올바른 의학이 될 수 있다. 우리의 실정과 북한의 실정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런 차이만큼 『동의보감』 번역본의 대상도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적어도 아직까지 한의학의 발전 수준이나 내적 발전에서의 필요성을 감안해 볼 때, 그리고 아직 본격적인 연구 차원에서의 번역본이 나오지 않았다는 점에서 볼 때 우리가 지금 내놓는 이 번역본은 우선은 전문 연구자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다만 우리는 북한판의 장점을 최대한 반영하고 여러 곳에서 우리말을 살리고자 노력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우리말을 많이 배울 수 있었으며, 다른 한편 너무도 많은 우리말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절감했다. 이런 점에서 쉬운 말임에도 흔히 사용되지 않거나 잘못 알고 있는 우리말에 대해 주를 달았다.

번역어 선택과 편집 체제

북한판의 번역어 선택과 연관해 몇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이 있다.

첫째, 한자어를 우리말로 푸는 한계에 관한 것이다. 예를 들어 오장육부는 그 용법 자체가 이미 한의학의 철학 체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心’을 ‘염통’으로 바꾸면 ‘心’이 갖고 있는 오행 논리상의 함축된 의미를 표현할 수 없다. ‘腎’을 ‘콩팥’이라고 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腎’은 한자 사전상의 풀이로도 자지, 불알, 콩팥 모두를 포함한 개념이다. 따라서 ‘腎’은 ‘콩팥’으로 번역할 수 없다.

또한 한의학 관용적으로 사용되는 단어들, 예를 들어 ‘怔忡’과 같은 것은 가슴이 두근거린다거나 뛴다, 벌렁거린다는 식으로 표현할 수 있지만 ‘怔忡’과 ‘驚悸’를 모두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표현하면 그 차이를 알 수 없다. 따라서 가능한 우리말로 풀되 ‘심하게 뛴다’든지, 번역어 뒤에 한자를 병기해 그 차이를 알게 했다.

또한 ‘心煩’과 같이 가슴이 답답하다는 말은 그 안에 열이 있음을 나타내기 어려우므로 ‘열이 나면서 답답하다’고 하거나 한자를 병기했다.

해부학적인 명칭 역시 번역상에서 많은 문제가 제기되었다. 알다시피 서양 의학에서는 해부학 용어를 가능한 우리말로 바꾸었다. 이런 성과를 이 번역본에도 반영해야 한다고 판단을 했지만 몇 가지 이유로 유보한 부분이 있다. 그 한 이유는 한자로 표기된 인체 부위에 관한 용어가 반드시 오늘날 서양 근대 의학에서 말하는 부위와 일치하지 않으며, 아직 의학계에서는 이에 대해 만족할 만한 연구가 없다는 점이다. 또한 해부학적 용어와 연관해 어떤 글자가 가리키는 부위가 반드시 한곳이 아닌 경우가 적지 않았다. 특히 오관(五官)과 관련된 용어들이 그러했다. 이는 본문에서 역주를 통해 언급했으므로 여기에서는 더 다루지 않겠다.

『동의보감』의 출간이 늦춰진 데는 편집에서의 난점이 한 원인이 되기도 했다. 『동의보감』은 전문서라는 성격상 일차적인 편집은 불가피하게 한의사가 할 수밖에 없었고, 인쇄에 이르기 전까지 한의사의 관여 없이는 출판이 불가능하다. 문단을 나누고 구두점을 찍고 글자 크기를 지정하고 세세한 인용 부호에 이르기까지 한의학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에 의한 편집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었다. 이 과정에서 기존에 출판된 한의서들은 편집이라는 관점에서 참고할 만한 것이 거의 없었다. 이는 그만큼 열악한 한의학 서적의 출판 문화를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다. 과거에 나온 원서 『동의보감』은 글 자체나 편집에서 아름다움과 편리함을 고루 갖추고 있다. 최근에 나오는 일본과 미국의 한의서들을 보아도 여기저기 꼼꼼하게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하다. 다른 학문 분야는 전문 편집자가 모두 있지만, 한의학만은 전문 편집자가 없는 현실은 우리 한의계가 크게 반성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동과연에서는 이런 차원에서 휴머니스트와 공동으로 한의학 전문 편집인을 양성하기로 했다. 당장은 어렵겠지만 수 년 안으로 한의학 전문 편집인이 나오리라 기대해본다.

글쓰기로서의 인용

알다시피 『동의보감』은 여러 책을 인용해 이루어진 책이다. 특히 『의학강목』에서의 인용은 정확한 통계는 아니지만 인용문의 반 이상을 차지한다고 할 만큼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이를 두고 한편에서는 『동의보감』의 가치를 폄하하거나 심지어 무시하는 경향도 있는 것으로 안다. 그러나 우리의 입장은 다르다. 우리는 ‘글쓰기로서의 인용’이라는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다시 말해 우리는 ‘술이부작(述而不作)’이라는 것을 창조적인 글쓰기의 한 형태로 이해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세우고 싶다. 특히 조선 시대 중기와 후기에는 이러한 글쓰기가 유행했고, 중요한 것은 인용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인용이 어떤 체계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으며, 어떤 맥락에서 이해되고 있는지를 먼저 파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똑같은 풀도 양이 먹으면 젖이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되듯이, 동일한 책에서 동일한 구절을 인용했다고 해서 그 인용문을 같은 의미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는 인용에서의 소위 ‘오류’라는 문제에 대해서도 보다 조심스러운 접근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명백한 전사(轉寫)의 오류는 분명히 있지만, 인용 구절의 한두 마디나 한두 글자를 바꾸어 자신의 주장을 펴는 경우를 흔하게 볼 수 있다.

『내경』을 예로 들면, 온전한 책으로 성립되기 전에 오랜 기간에 걸쳐 때로는 구전(口傳)을 포함한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내경』의 정오(正誤)를 판정하는 데는 문헌학적인 고증도 필요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이 실제 임상에서, 나아가 철학적으로 온전하게 현실과 맞는지의 여부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내경』은 실질적으로 왕빙(王冰)의 『내경』일 뿐이며, 여기에 아무리 『황제내경태소』나 『침구갑을경』 등을 들이대도 왕빙의 『내경』은 그 자체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왕빙이 『내경』의 글자 하나하나를 얼마나 고쳤는지, 아니면 얼마를 더 첨가했는지는 전혀 알 수 없으며, 이런 상태에서 신교정(新校正)의 임억(林億) 등이 교정한 것을 다시 손조(孫兆)가 6천 곳 이상을 다시 고쳤으므로 편차 문제까지 감안한다면 기간의 『내경』과 비교해 왕빙의 『내경』은 거의 새로운 『내경』으로 이해해야 한다. 이렇게 본다면 왕빙의 『내경』은 새로운 『내경』이나 왕빙 학파의 『내경』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른바 ‘원전(原典)’이라는 것의 존재는 절대 불변의 진리로서 모든 것의 진위를 가리는 잣대로 작용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음(陰)’에서 ‘양(陽)’으로, 그리고 ‘양(陽)’에서 ‘음(陰)’으로의 질점(質點)의 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고 또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필요한 것이기도 하다. 도대체 ‘원전’이나 ‘원본(原本)’이라는 것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일까. ‘원전’에 대한 끊임없는 재해석과 실천만이 남는 것은 아닐까. 결국 중요한 것은 회색 이론이 아니라 늘 푸르른 저 소나무이다(이 말도 괴테의 변형된 인용이다). 현실에 뿌리박고 있으면서, 현실과 끊임없는 작용과 반작용을 하면서 굳건히 서 있는 저 소나무만이 생명이다. ‘왕빙의 『내경』’은 왕빙이 변형했기 때문에 의미가 있는 것이며, 또한 그것이 아직도 현실적인 의미를 전혀 잃지 않고 있다는 점, 다시 말해 오늘날의 임상에서도 매우 정확한 지침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동의보감』도 일견 수많은 인용의 점철(點綴)에 불과한 것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동의보감』은 아직도 우리에게 소중한 소나무이다. 『의학강목』이나 『의학입문』도 엄밀한 고증을 통해 나가다 보면 결국 수많은 책들의 인용서에 불과하다. 다만 그 책들이 어떤 실천적 관점에서 기획되었으며 어떤 이론적 틀 속에서 목차가 정해지고 내용이 채워졌는지가 중요한 것이며, 나아가 그 내용들이 현실에 얼마나 기여하는지, 곧 임상에 얼마나 의미가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분명히 『동의보감』은 『의학강목』이나 『의학입문』을 인용했으면서도 그 책들과는 서로 다른 역사적 위치에서 기획되어 그 책들과는 전혀 다른 이론 구성을 보여주고 있으며 세부적인 실천, 곧 임상에서는 우리의 독자적인 사정에 맞도록 구성된 것이다.8) 이렇게 본다면 ‘왕빙의 『내경』’이 가능한 것처럼 허준 혹은 허준 학파의 『동의보감』이 가능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런 관점에서 허준은 서문에서 ‘동의(東醫)’라는 말을 쓸 수 있었을 것이다. ‘본조(本朝)’가 당연히 명(明) 나라를 가리킬 수밖에 없었던 상황에서 ‘동의’라는 말이 갖는 무게는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이다.

주를 다는 방식

따라서 우리는 번역에서 고증을 철저히 하되 허준으로 대표되는 『동의보감』의 독자적 관점을 최대한 드러내기 위한 고증을 했다. 예를 들어 인용된 『내경』 문장 자체의 정오(正誤)나 그 구절에 대한 여러 주가(注家)의 이해보다는 『동의보감』에서 인용된 맥락을 더 중요하게 여겼다. 따라서 후대에는 그 문장을 이러저러하게 해석한다는 식의 주는 가능하면 달지 않았다. 다만, 『동의보감』을 이해하는 데 의미가 있는 주만 단다는 원칙을 세웠다. 또한 처방의 경우에도 인용한 서적과의 차이점을 밝히기보다는 바로 그런 차이가 『동의보감』의 독자성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관점에서 주를 달았다.

다만 여러 책들에서의 인용과 재인용의 과정을 거쳐 이루어진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최초 출전에 기초해 주를 달았다. 예를 들어 그저 ‘단계(丹溪)’나 ‘자화(子和)’ 등으로 언급된 부분은 대개 『의학강목』 등에서 재인용한 경우가 많지만, 가능한 한 주진형 등의 저서를 직접 확인하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 과정은 생각보다 지난(至難)한 과정이어서 주진형의 많은 저서를 일일이 찾아보아야 했으며, 그렇게 해도 실제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은 매우 적었다. 이러한 한계는 우리의 역량을 넘어서는 것으로, 독자 여러분의 도움이 있어야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가 단 주에는 때로 본문 내용과 상반되는 내용이 실리기도 했는데, 이는 인용한 원문과 『동의보감』의 이해 방식의 차이를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원문은 인용된 문장과 의미 있는 차이가 있을 때만 달았다.

이 번역본을 내면서 우리의 바람은 이 책을 정독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다. 인용된 문장의 출전이나 개념에 대한 역주도 그런 의미에서 다소 불필요하게 보이는 부분까지 신경을 썼다. 처방의 경우, 거의 모든 처방의 약물 용량이 다르며 때로 약재 구성에서도 원방(原方)과 차이가 난다. 이런 차이를 일일이 적을 수 없었으므로 원방을 찾기 쉽도록 출전을 정확히 명기하고자 했다. 최근 중국에서 발간된 『중의방제대사전(中醫方劑大辭典)』(人民衛生出版社)은 우리의 출전 확인 작업에도 도움이 되었다. 일부 처방은 출전을 확인해 대조를 했지만 일일이 대조하지는 못했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이 역주본을 읽으면서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처방이 있다면 반드시 원방을 찾아보는 수고를 덜지 마시기 바란다.

참고 문헌들

이 책의 말미에 실은 은 직접 인용하거나 원문을 확인했거나 역주를 달 때 필요했던 책들이다. 『동의보감』의 편찬에 500권 이상의 참고 문헌이 주어졌다고 하니 최소한 그 정도의 문헌이 우리에게도 있어야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이미 유실된 책도 많고 또 우리가 구할 수 없는 책이 많아서 참고 문헌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다행이라면 그 동안 동과연에서 모아 놓은 책이 어느 정도 있었고, 또 다양한 학문 분야의 전공자들에게 많은 조언을 들을 수 있었던 점이다. 일일이 이 자리에서 밝힐 수는 없지만 다시 한 번 그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참고 문헌을 정리하다 보니 몇 가지 문제점이 드러났다. 다른 학문 분야는 책을 인용함에 있어서 큰 불편이 없었다. 대부분 저본으로 삼은 책의 판본을 밝혔으며 번역자 혹은 편찬자(編纂者), 교주자(校注者) 등과 출판사, 출판 연도를 정확하게 밝혀놓았다. 그러나 영인본과 의서의 경우에는 이런 작업이 최근에야 이루어지고 있으며, 특히 의서는 아직까지도 이런 최소한의 조건을 갖춘 저작이 드물었다. 따라서 그 판본을 확정하는 일이 매우 어려웠다. 찾을 수 있는 책은 일부 판본 등을 밝혔지만 대다수의 문헌은 시간적인 제한과 자료 부족으로 밝힐 수 없었다. 이 점이 큰 아쉬움으로 남는다.

또 하나, 참고 문헌을 정리하면서 느낀 점은 생각보다 도교 계열의 저작이 많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참고 문헌에 도교 계열의 저작이 많다는 것이 곧바로 『동의보감』의 ‘도교적 성격’을 보여주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것은 도교적인 ‘성격’이 아니라 그러한 ‘성격’이 갖고 있는 현실적인 근거, 특히 몸과 연관된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이번 『동의보감』의 번역은 우리에게 하나의 현실적인 근거를 제시했다고 생각한다. 그런 예의 하나로 노자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들 수 있다. 보통 한의계에 있는 사람들은 한의학에는 도교적 세계관과 사상이 깔려 있다는 말을 무수히 들어왔다. 특히 노장의 연관성은 매우 긴밀한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나 막상 기존 노장 연구 성과에 입각해 한의학을 해석하려면 별 연관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거나 때로는 반대되는 입장이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 예로 「기문(氣門)」에 나오는 ‘현빈(玄牝)’을 ‘감한 암’9)이라고 해서는 현빈을 코와 입이라고 주를 달아놓은 『동의보감』을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노자하상공주(老子河上公注)』를 보면서 이제 우리는 왕필(王弼)의 노자가 아니라 하상공의 노자를 만나야 할 필요성을 구체적인 현실에서 발견했다. 그리고 이는 그 동안 주로 사회 정치적인 측면, 그것도 유교의 관점에서 연구되어 온 황노(黃老) 사상의 또 다른 측면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 연구의 방향성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한 분명한 지침이 될 것이라는 점도 발견했다. 이는 이번 『동의보감』의 번역에서 동과연이 얻은 가장 큰 수확 중 하나이다.

참고 문헌을 싣는 방식을 놓고도 많은 고민을 해야 했다. 왜냐하면 『동의보감』은 옛날 식으로 하자면 의학은 물론 문사철(文史哲)을 모두 아우르는 매우 방대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또한 어떠한 분류 방식을 따르더라도 한 문헌이 다른 항목과의 연관이 매우 밀접해, 한 항목으로 분류되는 문헌이 다른 항목으로도 분류될 수 있는 경우가 매우 많다. 따라서 참고 문헌의 분류에서는 대체적으로 일반적인 분류를 따르되 같은 책에 대한 것이거나 연관된 주제를 담고 있는 것들은 모두 같이 모았다.

참고 문헌을 살펴보면 알겠지만, 어떤 주제에 관한 문헌은 『동의보감』 자체에서의 비중이나 분량, 그리고 이 책에 인용되거나 참고된 것보다 더 많은 분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는 그 주제가 관점에 따른 다양한 견해의 차이를 가져올 수 있거나 더 깊이 연구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2001년 2월 마무리 작업을 하던 중 우리는 매우 중요한 두 권의 책을 참고할 수 있었다. 하나는 원진희(元秦喜) 외, 점교(點校), 『정교(精校) 동의보감(東醫寶鑑)』(단촌글방, 2000)이다. 이 책은 『동의보감』에서 인용한 서적들을 찾아 차이점을 상세한 주로 밝힌 매우 귀중한 것이다. 특히 이 책은 『내경』 등의 고전과 처방 등에 대해 상세한 주를 달고 있다. 다만 주를 다는 방식에서 과거 의서들의 관례를 따르고 있어서, 예를 들면 인용한 책의 권수와 항목을 밝히지 않았기 때문에, 이 책에서 정보를 얻어도 우리는 다시 인용한 책을 찾아야 하는 수고를 반복해야 했다. 그러나 이 책의 성과 중 우리의 편집 원칙과 일치되는 부분은 적극적으로 수용을 했다. 그리고 이 책에서 얻은 정보에 대해서는 주에서 모두 밝혔다. 이 책이 좀더 일찍 나왔다면, 그리고 더 널리 퍼졌다면 우리의 작업에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이 남는다. 왜냐하면 같은 작업을 반복해야 하는 수고를 덜었을 것이기 때문이다.10)

다른 하나는 김홍민(金弘敏) 편, 『동의보감보유(東醫寶鑑補遺)』(醫道出版社, 1997)이다. 이 책은 『동의보감』의 주요 처방에 대해 『동의보감』과 기타 의서를 비교한 것이다. 여러 의서의 처방을 비교한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만 임상적인 가치가 높은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을 참으로 꼼꼼하게 정리한 이 책은 일찍이 출판되었지만 우리는 교정의 마지막 단계에서야 볼 수 있었다. 이 책 또한 좀더 일찍 볼 수 있었으면 많은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동의보감』의 처방을 임상에서 활용하려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참고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외에 우리가 참고한 자료는 책 뒤에 정리해 두었다. 보다 정확한 참고 자료 목록은 『동의보감』이 완간될 때 보완할 것이다.

이 『동의보감』은 이제 제1권이 나왔을 뿐이며, 앞으로도 4권이 더 나와야 한다. 우리의 계획은 격년으로 한 권씩 내는 것이지만, 현재 사정으로는 제3권에서 제5권까지는 좀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여러분의 애정 어린 관심을 바란다.

이 『동의보감』은 동과연에서 진행하고 있는 ‘동과연 동의학 고전 역주 총서’ 중 하나이다. ‘동과연 동의학 고전 역주 총서’에는 『황제내경소문』, 『황제내경영추』, 『황제내경태소』 등을 비롯한 고전과 『동의수세보원』과 같은 우리의 고전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작업은 각각 최소한 10년 이상이 걸리는 작업이지만, 이번 『동의보감』의 경험을 바탕 삼아 정진한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만은 아닐 것이며, 또한 그렇게 긴 시간도 아닐 것이다.

2001년 8월 14일
『동의보감』 역주자를 대표해 동과연 연구실에서 박석준이 쓰다.
2002년 6월 17일 박석준이 고쳐 쓰다.11)

추기(追記)

원고를 1차로 탈고한 뒤인 2001년 8월 22일, 중국에서 『東醫寶鑑校釋』이라는 책이 人民衛生出版社에서 2001년 1월에 발간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원고를 출판사에 보내고 9월 7일 박석준이 북경에 가서 그 책을 구입했다. 이 책은 1983년 실질적으로 작업을 시작해 1986년부터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아래 각 한의과 대학의 교수를 비롯해 수많은 인원이 참가해 출간에만 16년 이상이 걸린 대역사(大役事)였으며, 여러 사람에 의한 교감(校勘)과 다양한 판본의 비교 등 참고할 가치가 높은 책이었다. 그러나 출판 기일이 촉박해 이번 판에서는 이 책의 성과를 전혀 반영하지 못했다. 다음 판과 앞으로 출간될 제2권에서는 이 책의 성과도 담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