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브로

구브로

[ Cyprus ]

구리’란 뜻. 수리아 서쪽 100여㎞, 소아시아길리기아 주 남단 74㎞ 지점에 위치한 지중해상에서 세 번째로 큰 섬. 동서로 225㎞, 남북으로 80여㎞의 섬으로, 구리 산지로 유명하다. ‘구브로’라는 지명은 이런 특성에서 유래되었다. 이곳 원주민은 헬라 계통의 깃딤 사람들로서(창 10:4) B.C. 12세기경 아가야 사람들에 의해 식민지가 되면서부터 앗수르의 사르곤 2세(B.C. 709년), 페니키아(베니게), 애굽(B.C. 560년경),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B.C. 480년경), 알렉산더 대제(B.C. 333-323년경)의 지배를 받다가 B.C. 58년부터 로마의 식민 통치를 받았다.

구브로

한편, 유대인들은 B.C. 320년경부터 구브로에 거주하기 시작했는데, 레위 지파 사람으로 바울을 지도자적 위치까지 끌어올린 헌신적인 사역자 바나바고향 역시 구브로였다(행 4:36). 이외에도 구브로 사람 중에는 일찍부터 복음을 듣고 수리아 안디옥 교회를 세우고 다스린 훌륭한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었다(행 11:19-20). 바나바와 바울은 1차 선교여행 때 구브로 동편 항구 살라미에 도착하여 섬의 서쪽 편으로 진행하며 복음을 전했는데, 성읍 바보에서는 총독 서기오를 전도하기도 하였다(행 13:5-13). 또 2차 선교여행 직전 마가 요한 문제로 바울과 다툰 바나바는 바울과 결별하고 요한을 대동한 채 다시 구브로를 방문하여 전도 사역을 벌이기도 하였다(행 15:39). 바울은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귀환할 때, 그리고 로마로 압송되어 갈 때 구브로를 지나쳐 가기도 하였다(행 21:3; 27:14). 이곳 출신 나손은 3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팔레스타인에 도착한 바울 일행에게 거처를 제공해 주기도 하였다(행 21:16). → ‘사도 바울의 선교여행’을 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