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옥

이관옥

[ 李觀玉 ]

요약 성악가(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서울대 음대 교수. 평남 순천(順川) 출생. 무사시노(武藏野)음악학교출신. 경성고등음악전문학원(京城高等音樂專門學院) 교수.
출생 - 사망 1918년 ~ 1976년
이관옥

평양 서문여고보(西門女高普)에 입학해 1학년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했다. 타고난 고운 목소리 때문에 음악선생의 권유로 졸업 후 성악공부를 위해 일본 무사시노음대에 수석으로 입학했으며, 1938년 무사시노를 졸업할 때에도 수석을 차지했다. 1938년 5월 10일 경성음악전문학원 창립기념 연주회 때 출연했고, 6월 14일 조선일보사 주최 제1회 신인음악회 때 출연했으며, 11월 부민관에서 독창회를 열었다.

졸업 후 귀국해 경성음악전문학교 주최로 제1회 독창회를 열었다. 1939년 6월 8~9일 「전조선작곡발표대음악제」(全朝鮮作曲發表大音樂祭) 때 안기영(安基永) 작곡의 가곡 "작별"(作別)·"꿈조차 속였세라"·"오 나의 마음"·"마음의 등대"·"부끄러움"을 독창하였다.

1941년 부민관에서 열린 조선음악협회(朝鮮音樂協會) 주최 「음악보국주간음악대제전」에 김재생·홍지유·이흥렬 등과 함께 출연하였다. 1942년까지 4회의 독창회를 가지는 한편 경성음악전문학교에서 후진을 양성했다. 남편 한규동과 함께 미국·캐나다에서 순회공연을 했으며, 1942년 다시 일본으로 건너가 벨트라메리성악원구원에서 3년간 공부하고 귀국해 경성음악전문학교(京城音樂專門學校) 교수로 재직하면서 해방을 맞이하였다.

그녀에 대한 평론은 『朝光』(1938) 34호에 발표된 임동혁의 글 "신인음악회를 듣고"에 소개됐고, 신진음악가 이관옥에 대한 이야기는 『朝光』(1938) 35호에 발표한 "성악가 이관옥 양"에 사진과 함께 소개되었다. 음악전문학원음악회 때 출연한 소식은 『靑色紙』(1938) 2호에 소개됐으며, 『三千里』(1939) 11권 4호에 게재된 "음악의 전당: 경성고등음악전문학원 구경기(求景記)"에 소개되었다.

1945년 조선음악가협회(朝鮮音樂家協會) 주최 전조선신춘음악회 때 출연했다. 1946년 경성음악전문학교(京城音樂專門學校)가 국립서울대학교의 설립에 따라서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음악부로 개편됐을 때 교수진의 한 사람이었다. 1949년 구노의 "파우스트" 공연 때, 1950년 5월 현제명(玄濟明)의 창작오페라 춘향전 공연 때, 그리고 1956년 12월 3일 헝가리 구호음악회 때 출연하였다. 1957년 독창회를 개최했고, 7월 19일 프랑스 혁명기념 「음악의 밤」 때 및 1961년 12월 17일 KBS교향악단이 시공관에서 열렸을 때 출연하였다.

1962년 당시 서울대 음대 교수였고, 1967년 10월 30일 독창회를 개최했으며, 12월 출간된 『한국가곡전사』에 취입하여 한국가곡의 발전에 공헌하였다. 1971년 10월 30일 국립중앙극장에서 독창회를 열었고, 1974년 11월 4일 국립중앙극장에서 독창회를 열었다. 1975년 국민훈장을 받았다.

참고문헌

  • 『한겨레음악인대사전』 宋芳松, 서울: 보고사, 2012년, 611~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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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옥

이관옥 1918∼1976. 여류성악가.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