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

장군

[ 橫缶 ]

謙山 崔永道 기증. 높이 17.6cm

謙山 崔永道 기증. 높이 17.6cm

삼국시대 고분에 부장되는 도질토기(陶質土器)의 한 기종(器種)으로, 전남과 경남지역의 고분에서 출토된 예가 있다. 삼국시대 백제와 가야지역에서만 출토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오히려 일본 고분시대 스에키(須惠器)의 중요 기종으로 성행하였던 것으로 판단된다. 도질토기로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예는 꽤 많이 있지만 백제와 가야지역에서 정식발굴로 출토지를 확인할 수 있는 예는 4~5점에 불과하여 그 출현과 전개양상을 알기 어렵다.

본래 장군은 전통적인 민속 용기의 한 종류로 보통 질그릇으로 만들어진 것은 소형에 속하고 간장이나 물, 술 따위를 담아두고 따르는데 쓰지만 큰 것은 주로 오줌을 담아 지게로 지고 운반하는데 이용되며 이와 같은 거름 운반용 장군은 나무로 만들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삼국시대의 장군은 형태적으로 근래의 것을 닮아 있어 현재의 이름을 삼국시대 도질토기에 붙이고 있는데 그 역사적인 연원에 있어서도 서로 상통하리라 여겨진다.

고고학자료와 민속학자료를 검토해 보았을 때 가까운 민속품으로서 조선시대의 도기(陶器)와 자기(瓷器)로 제작된 장군으로부터 시작하여 조선 초의 분청사기(粉靑沙器) 장군과 고려시대 도기(陶器)장군의 예로 거슬러 올라가며 통일신라시대 인화문토기(印花文土器) 장군의 예가 있다. 삼국시대의 도질토기(陶質土器) 장군의 예가 오히려 적은 편이지만 고분의 부장용 토기가 아니라 일상용 토기로 성행했을 가능성도 많다.

지금까지 알려진 토기장군으로는 마산 현동 고분군의 제8호 덧널무덤(木槨墓)에서 출토된 것이 가장 이른시기에 속한다. 이 토기장군은 소형에 속하고 특별한 시문을 남기지 않았지만 왜계유물(倭系遺物)인 하지키(土師器) 굽다리접시와 함께 출토되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가야지역에서 정식 발굴품으로는 현동 고분군의 출토품밖에 없는데 전남지방 고분에서 출토된 것이 3점 있다. 우선 일제시대에 발굴된 나주(羅州) 반남면(潘南面) 신촌리(新村里) 9호분의 독널(甕棺), 함평(咸平) 월계리(月溪里) 석계(石溪) 고분군의 4호 앞트기식돌방무덤(橫口式石室墳), 영암(靈岩) 만수리(萬樹里) 2호분 제2호 독널(甕棺) 등에서 출토된 예가 있다. 이중 신촌리 9호분과 월계리 석계 4호분 출토품은 주둥이가 과장되어 있지 않고 약간의 타날문 외에는 특별한 시문이 없는 편이다.

기형 자체도 정형화되어 있지 않은 편이며 원통의 한쪽은 원저(圓底)를 만들 듯 곡면을 이루고 다른 한쪽은 평저(平底)를 만들 듯 평면으로 막았다. 이에 비해 만수리 2호분의 예는 주둥이가 나팔형으로 과장되게 펼쳐지고 몸통은 배가 많이 부른 원통형이며 몸통 양편을 평면으로 막은 기형인데 몸통 전면과 구연부까지 파상문을 시문하였다. 특히 몸통 가운데에 작은 원공이 뚫려 있어 문양과 형태 모두 일본의 스에키 준형(樽形) 하소오와 극히 유사하다. 일본에서는 스에키 이전의 하지키에는 장군형 토기가 없기 때문에 한반도의 도질토기 장군을 모방하였다고 추측되지만 그 관계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점이 많다.

참고문헌

  • 馬山縣洞遺蹟(李盛周·金亨坤, 昌原大學校博物館, 1990년)
  • 靈岩 萬樹里古墳群(徐聲勳·成洛俊, 國立光州博物館, 1984년)
  • 和泉陶邑窯の成立(中村浩, 柏書房, 198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