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산성

성산산성

[ 咸安 城山山城 ]

지역 함안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광정리에 위치하고 있는 해발 139.4m의 조남산(鳥南山) 산정상부에 자연지세를 이용하여 축조한 테뫼식산성으로 사적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다. 성산산성이 위치하는 조남산의 북서쪽은 급경사가 형성되어 있으나 괴항마을이 있는 서쪽과 남쪽은 깊은 골짜기를 이루는 등 비교적 완만한 지형을 이루고 있다. 산성이 위치한 곳은 북서쪽에서 남동쪽으로 완만한 경사를 이루며 동쪽으로 작은 골짜기를 형성하고 있으며, 산성의 평면은 부정형의 직사각형 모양을 하고 있다.

성벽이 산의 자연능선을 따라 축조되어 있어 북벽, 서벽, 남벽 순으로 높은 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동벽은 산성의 가장 낮은 부분에 시설되어 있는 집수시설을 감싸고 가로질러 축조되어 있다. 이 산성에서 북쪽으로 1㎞ 거리에 사적으로 지정되어 있는 도항리(道項里) 고분군과 사적으로 지정된 말산리(末山里) 고분군이 위치하고 있어 이 산성과의 연관성이 예상된다.

성체는 협축기법으로 축조하였는데 남벽 내벽의 경우 자연 암반층을 기저부(基底部)로 이용하기도 하며 부정형 깬돌(割石)을 사용하여 비교적 외면을 잘 맞추어 수직되게 쌓아 올렸으며, 큰 깬돌들 사이에는 작은 돌을 끼워 마무리 하였다. 남벽 내벽의 높이는 기저부에서부터 층수 15단의 3.2m 정도가 확인되는데, 석축된 내벽을 보호하기 위하여 적색의 점질토를 2.4m까지 비슷하게 쌓아 보강하였다. 외벽은 점판암(粘板岩)계통의 석재로 치밀하게 축조되어 있는데 그 높이는 4.8m에 달하며, 체성의 내외 폭은 7.4m이다.

또한 외벽에 기대어 성벽보강구조물이 삼각형 모습으로 비스듬하게 축조되어 있는데, 이 구조물의 하단에는 커다란 돌들이 열을 맞추어 1단으로 나타나고 있어 어떤 버팀석 역할을 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이 버팀석 하부에는 대형 석재를 기저부에 놓았는데 적색 점질토로 덮여 있으며 이 상부로 마사토층이 비스듬하게 깔려 있다. 또 최하단석의 앞에는 불로 다진 흔적이 엿보이기도 한다. 외벽보강구조물의 규모는 하단너비 1.4m, 추정 상단너비 0.7m, 현 높이는 1.1m 정도이며, 경사도는 60。이다.

동벽 외벽의 경우 기저부는 커다란 막돌로 1m 높이까지 축조되고 있는데 이 높이까지 단면 삼각형의 기단보축(基壇補築)이 시설되고, 다시 그 위에 더 큰 외벽 기단보축이 설치되어 있다. 동벽 체성의 높이는 외벽의 잔존 높이가 4.0m, 체성의 내외 폭은 약 8m이다. 외벽 기단의 보축시설은 너비 1.6m, 높이 1.8m이다.

북벽의 기저암반층은 정연한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여기에는 보축토가 자연경사를 따라 덮여 있다. 보축토는 주로 점토층이며, 황색암반이 섞인 층과 사질이 많이 함유된 층으로 대별된다. 북서편의 성벽 단면조사에서 확인되는 성벽의 규모는 내벽 높이 약 2.7m, 외벽의 현재 높이 약 6.1m, 체성 너비 약 7.5m 정도이다.

건물지는 산성의 남동성벽 가까이에서 1개소, 산성 중앙부에서 약간 북쪽으로 경사져 오르는 곳에서 1개소가 확인되고 있다. 남문지(南門址)는 바닥에 판상석(板狀石)을 고르게 깔아 출입통행로로 이용한 듯하며 규모는 너비 4.5m, 길이 8.6m인데 개축한 것으로 보인다. 이 남문지에서는 문주초석 2매가 확인되었다. 동문지(東門址)는 성내에서 가장 낮은 지대인 동쪽에 위치하나 성벽이 북쪽 구릉으로 올라가는 지점에 치우쳐 구축되었는데 바닥에는 역시 판상석이 깔려 있었다. 이 동문지도 여러번 개축하여 사용한 것으로 파악되는데, 초축시의 규모는 너비 약 5m, 길이 9.2m이며, 후대에 개축된 문지의 규모는 너비 약 3.4m, 길이 약 9.2m이다. 동문지 측벽의 외부에도 외벽보강구조물이 시설되어 있는데 그 규모는 너비 0.6m, 높이 0.7m 정도이며, 기울기는 60。정도이다.

동문지의 내부에는 바닥에 개석이 덮여 있는 작은 도수로가 있는데 현재 노출된 규모는 길이, 너비, 깊이가 약 2.0×0.1~0.2×0.15m 내외이다. 그리고 현 표토 2.4m 아래에서 연못지로 보이는 뻘층이 노출되었는데 여기에서 용도를 알 수 없는 목제품, 목간(木簡), 골패류, 견과류, 씨앗, 철기류, 토기편 등이 수습되었다. 그 중 목제품은 96점이 채집되었는데, 목간이 27점으로 28%를 차지하고 있으며 적외선 촬영 결과 24점에서 명문이 확인되었다. 목간의 명문 중에는 감문(甘文), 본파(本波), 하기(下幾), 급벌(及伐), 구리(仇利) 등의 지명이 나타났는데, 대체로 경북지방의 지명으로 파악되므로, 신라에 복속된 함안지역에 외적의 침략에 대비하여 경북의 여러 지방의 인원을 동원하여 이 산성을 축성한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한 조사시 귀면와(鬼面瓦) 및 연화문와당(蓮花文瓦當)과 당초문(唐草文)암막새 등 와류와 토기편 등이 수습되어 시대편년 설정에 도움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 咸安 城山山城(國立昌原文化財硏究所, 1998년)
  • 咸安城山山城發掘調査會議資料-第2次(昌原文化財硏究所, 1992년)
  • 咸安 城山山城 發掘調査槪報-第1次(洪性彬·朴鍾益·趙喜卿, 韓國上古史學報 10, 韓國上古史學會, 1992년)
  • 咸安 城山山城 發掘調査 結果報告(昌原文化財硏究所, 1991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