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북동

성북동

[ Seongbuk-dong , 城北洞 ]

요약 전라남도 나주시에 있는 동.
중앙초등학교

중앙초등학교

위치 전남 나주시
면적(㎢) 8.07㎢
문화재 나주동문외 석당간(보물 49), 나주북문외 삼층석탑(보물 50), 금성관(전남유형문화재 2), 심향사아미타여래좌상(전남유형문화재 99), 정렬사비(전남기념물 48), 심향사(전남문화재자료 88), 사마교비(전남문화재자료 89), 금성토평비(전남문화재자료 175)
인구(명) 8913명(2008)

면적 8.07㎢, 인구 8913명(2008)이다. 전라남도 나주시에 속한 동이다. 동쪽과 남쪽은 금남동과 접하고 서쪽은 다시면, 북쪽은 노안면과 경계를 이룬다.

1981년 나주읍이 금성시로 승격되면서 성북동·중앙동·과원동을 통합하여 성북동이라 하고, 1986년 금성시가 나주시로 바뀜에 따라 나주시 성북동이 되었다. 1998년 인구 5천 명 미만의 과소동을 통폐합하면서 성북동과 송현동을 합해 성북동이 되었다.

법정동은 과원동·성북동·중앙동·송촌동·대호동·석현동·청동 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과원동은 1789년의 '호구총수'에 지명이 나타나 있는 유서깊은 곳으로 1912년 과원리, 1914년 창촌·후청리·입석리의 일부를 합하여 과원정이라 하였다. 조선시대부터 관청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으며, 나라의 양곡창고인 사창(司窓)이 있었던 사창거리와 고려 현종이 몽진 중에 지나갔다는 사매기(옛 사마교가 있었던 부근의 현재 지명)가 남아 있다.

성북동은 조선시대에는 나주목 동부면에 속했으며 1914년 고동리·후청리·창촌·후촌의 일부를 합하여 북문정이 되었다가 1946년 성북동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나주읍성의 동문을 중심으로 동문안과 동문밖으로 나뉘어 발전해 왔는데, 일찍이 나주팔진미의 하나인 동문안 미나리로 유명했으나 지금은 이곳에 상가들이 들어서 시가지가 되었다. 영산강 주위로 나주평야가 펼쳐지고, 호남선국도1호선이 지난다.

주요 기관 및 시설로 전남통계사무소 나주출장소, 영산강홍수통제소, 대한지적공사 나주시출장소, 영산강농지개량조합 나주지소, 나주병원, 동신대학교, 금성고등학교, 나주공업고등학교, 나주여자상업고등학교 등이 있다.

문화재로는 나주동문외 석당간(보물 49), 나주북문외 삼층석탑(보물 50), 금성관(전남유형문화재 2), 심향사 아미타여래좌상(전남유형문화재 99), 정렬사비(전남기념물 48), 심향사(전남문화재자료 88), 사마교비(전남문화재자료 89), 금성토평비(전남문화재자료 175) 등이 전한다.

그밖에 유적 및 볼거리로 율정·청암역터·성향공원·카메라박물관 등이 있다. 율정은 정약용·정약전 형제가 천주교 박해로 유배 가던 중 대호동 율정마을에 있던 율정점(지금의 여관과 같은 곳)에서 하룻밤을 묵었던 곳이다. 이곳은 밤나무가 많이 있어 율정이라 했는데, 위쪽에는 옻밭이 있어 옻칠도료를 생산하기도 하였다.

청암역터는 공무를 수행하는 역마(驛馬)를 관리하던 곳으로 고려 성종(成宗:재위 981~997) 때 처음 설치되었으며, 1885년에 우체사(郵遞司)가 설치되어 역제가 폐지되면서 함께 폐지되었다. 조선시대 서울에서 전라도를 경유하는 역로(驛路)는 6로와 7로가 있었는데, 청암역은 7로에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