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일호의 묘

황일호의 묘

[ 黃一晧의 墓 ]

요약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에 있는 묘(墓).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황일호의 묘

황일호의 묘

지정종목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84년 5월 17일
소재지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가증리 산3번지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무덤 / 무덤 / 봉토묘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로 지정되었다. 조선 중기의 문신 황일호(黃一晧:1588∼1641)의 묘이다. 평범한 원분(圓墳)으로 좌우에 망주석과 문인석 1쌍이 있고, 인근에 사당인 지소사(芝所祠)와 신도비가 있다. 신도비는 1797년 건립된 것으로, 송시열이 찬(撰)하고 황운조(黃運祚)가 글씨를 썼다.

황일호는 1588년 서울 출생으로, 운봉현감·전주판관·임천군수 등을 역임하고, 1624년 이괄의 난을 평정하는 데 공을 세웠다.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인조를 호종하여 남한산성에 들어가서 독전어사(督戰御史)로 전공을 세웠고, 난이 끝난 후 통정대부(通政大夫)에 올라 진주목사에 제수되었다. 1638년 의주부윤으로 재직하며 최효일(崔孝一) 등과 북벌을 모의하다가 발각되어 청나라 병사에게 피살되었다. 강화 충렬사와 부여 의열사에 배향되었고, 시호는 충렬(忠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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