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산서원

칠산서원

[ 七山書院 ]

요약 조선 중기의 문신 유계(兪棨)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칠산서원

칠산서원

지정종목 충청남도 문화유산자료
지정일 1984년 5월 17일
관리단체 기계유씨종중
소재지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부흥로 197-2 (칠산리)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교육문화 / 교육기관 / 서원

1984년 5월 17일 충청남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되었다. 충청남도 부여군 임천면 칠산리에 있다. 지방 유림들의 건의로 1687년(숙종 13)에 건립되었으며, 1697년(숙종 23)에 서원의 이름·토지·서적 등을 하사받은 사액서원이 되었다.

1868년(고종 5)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67년 후손들과 지방 유림들에 의해 재건되었다. 사당·강당·장판각으로 구성된다. 건물 배치는 사당과 내삼문이 중심에 배치되고 주위는 담장으로 둘러쌌다. 강당은 내삼문 앞에, 서쪽에는 장판각이, 내삼문 바로 앞 동쪽에는 신도비가 있다.

사당은 정면 3칸 측면 3칸의 겹처마 맞배지붕이며, 2고주(高柱) 5량가구 구조이다. 기단은 화강암으로 3단을 쌓았으며, 주춧돌은 주좌를 새긴 둥근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창방을 걸고 바깥으로 초익공을 끼운 다음 8각 주두를 올려놓았다.

주두 위에는 툇보를 걸고 장여와 주심도리를 함께 결구하였다. 창호는 정면 3칸 모두 띠살문을 달았으며, 창호 위에는 옆으로 긴 교살문 광창을 하나씩 설치하였다. 내부는 우물마루와 연등천장으로 꾸몄다.

강당은 정면 4칸 측면 1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으로, 가운데 2칸은 대청마루이며, 양옆에 온돌방을 두었다. 자연석으로 기단을 쌓고 덤벙주춧돌에 두리기둥을 놓았다. 기둥머리에는 창방과 익공을 끼우고 주두를 올렸다. 정면에는 띠살문, 뒷면에는 골판문을 달았다.

장판각은 정면 3칸 측면 2칸의 홑처마 맞배지붕이며, 측면에 풍판을 달았다. 자연석으로 기단을 쌓고 덤벙주춧돌 위에 두리기둥을 세웠다. 기둥머리에는 창방과 익공을 끼운 다음 주두를 올려놓았다. 창호는 정면에만 골판문 쌍여닫이를 달았다. 내삼문은 정면 3칸 측면 1칸의 솟을삼문이며, 주춧돌은 덤벙주춧돌을 사용하였으며, 기둥은 직사각형의 네모난 기둥을 세웠다.

칠산서원에는《가례원류》 《가례원류속록》 《시남선생문집》 《시남문집별집》 《계사왕복서》 등의 고문서가 소장되어 있다.

역참조항목

칠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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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동영상

칠산서원 조선시대 유계를 추모하는 서원 충청남도 문화재자료 제102호 1687년(숙종 13)에 건립되었으며, 1697년(숙종 23)에 사액서원이 되었다. 하지만 1868년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67년에 재건되었다. 유계는 김장생의 문인으로 인조 때 문과급제하였고 병자호란 때 척화를 주장하여 유배되었다. 인조가 죽자 묘호에 "종"을 붙히기로 주장하다 선왕을 모독한 죄로 재차 유배되었다.  서원은 사당과 강당, 장판각이 있는데 사당과 내삼문이 중심에 배치되고 주위는 담장으로 둘러쌌다. 강당은 내삼문 앞에, 서쪽에는 장판각이, 내삼문 바로 앞 동쪽에는 신도비가 있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