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희 선생 유적
[ 金正喜 先生 遺蹟 ]
- 요약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유적지. 1980년 10월 23일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김정희 선생 유적](https://dbscthumb-phinf.pstatic.net/2765_000_132/20181204092855978_UKY876SXM.jpg/681641.jpg?type=m250&wm=N)
김정희 선생 유적
지정종목 | 충청남도 기념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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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정일 | 1980년 10월 23일 |
관리단체 | 예산군 |
소재지 |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9외 13필 |
시대 | 조선시대 |
종류/분류 |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역사사건 |
크기 | 면적 18,308㎡ |
1980년 10월 23일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조선 후기의 서예가 김정희의 유적지로 총 18,308㎡에 달한다. 유적지 안에는 김정희선생고택(안채·사랑채)(충남유형문화재), 화순옹주 홍문(和順翁主紅門:충남유형문화재), 김정희가 심은 예산의 백송(白松:천연기념물), 김정희묘(충남문화재자료) 등이 있다.
홍문은 김정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영조의 장녀)의 정절을 기리고자 영조가 하사한 정문(旌門)이다. 고택은 80평 가량의 건물인데 조금 떨어진 곳에는 그가 어려서 공부했던 절 화암사(花巖寺)가 있다. 백송은 김정희가 25세 때 청(淸)나라 연경(燕京)에서 돌아올 때 가지고 와서 고조부 김흥경의 묘 입구에 심었던 것이다.
김정희는 1809년(순조 9)에 생원이 되고 그 후 규장각 대표 충청우도 암행어사, 1846년(헌종 2) 대사성 이조참판에 이르렀다. 일찍이 청국을 통하여 국제문화를 호흡하고 금석학(金石學) 및 고증학(考證學)을 깊이 연구 국학의 문을 열었다. 특히 서예에 뛰어나 추사체(秋史體)를 이룩하였고 묵화(墨畵)에도 조예가 깊어 많은 작품을 남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