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옹주 홍문

화순옹주 홍문

[ 和順翁主 紅門 ]

요약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 있는 조선시대 열녀문.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화순옹주 홍문

화순옹주 홍문

지정종목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
지정일 1976년 1월 8일
관리단체 예산군
소재지 충청남도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7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순절지

1976년 1월 8일 충청남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추사(秋史) 김정희(金正喜)의 유적지 안에 있다. 영조(英祖)의 딸이자 김정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和順翁主)의 정절을 기려 정조(正祖)가 하사하였다.

영의정 김흥경의 아들 김한신(金漢藎)은 1720년(숙종 46) 13세 때 영조의 둘째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月城尉)에 봉해지고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제용감제조(濟用監提調)를 지냈으며, 1758년 사도세자와의 말다툼 끝에 벼루를 맞고 세상을 떠났다. 화순옹주는 이에 격분, 영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열흘 동안 식음을 전폐한 뒤 남편의 뒤를 따라 숨을 거두었다.

영조는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면서도 부왕의 뜻을 저버린 데 대한 아쉬움 때문에 열녀문을 내리지 않았다. 옹주는 조선왕조의 왕실에서 나온 유일한 열녀라고 한다. 가까운 곳에 김한신과 화순옹주의 합장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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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순옹주 홍문 예산군에 있는 조선 왕실열녀문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45호 충남 예산군 신암면에 있는 조선시대 유일한 왕실열녀문으로 영조의 딸이자 추사 김정희의 증조모인 화순옹주의 정절을 기리기 위해 정조가 하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화순옹주의 남편인 김한신은 사도세자와의 말다툼 끝에 벼루를 맞고 죽었다고 전해지는데 화순옹주는 이에 격분하여 영조의 만류에도 식음을 전폐한 뒤 숨을 거두었다고 한다. 열녀문은 화순옹주와 남편 김한신의 합장묘를 관리하는 묘막으로 들어가기 위해 지은 정면 8칸, 측면 1칸의 건물 정문 위에 새겨져 있으며 주변 담장은 최근에 새로 세운 것이다.   홍문 뒤에는 묘막터가 위치하고 있으며 원래 53칸의 큰 건물이었으나 지금은 불에 타서 없어지고 주춧돌 만이 무심하게 남아있다. 김정희선생고택 유적지 안에 위치한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