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씨쌍충일열각

송씨쌍충일열각

[ 宋氏雙忠一烈閣 ]

요약 송제(宋悌), 송덕일(宋德馹), 송제의 처 능성구씨의 자결 열행을 표창하기 위하여 건립한 정려(旌閭). 1985년 2월 15일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송씨쌍충일열각

송씨쌍충일열각

지정종목 전라남도 기념물
지정일 1985년 2월 15일
소재지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서호1길 9 (화산리)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인물사건 / 인물기념 / 사우

1985년 2월 15일 전라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전라남도 고흥군 대서면 화산리에 있으며, 후손 송계필이 상소하여 1797년(정조 21)에 국명으로 건립되었다. 현판에는 ‘쌍충일열지려(雙忠一烈之閭)’라고 쓰여 있다.

송제는 조선 중기의 무신으로, 화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자는 유칙이고 호는 해와, 본관은 남양이다. 1593년(선조 26) 강진군수로 재직할 때 호서로 격문을 보내 병사 200명을 인솔하고 절도사 황진(黃進)의 막하로 들어가 성주전투에서 적을 대피하였다. 이때 적의 기세로 미루어 반드시 적이 진주에 침공할 것을 예측하고 여러 창의사에게 건의하여 복수장 고종후(高從厚), 해미현감 정명세와 함께 진주에 입성하여 성을 지켰다.

그러나 중과부적으로 성이 함락되고, 왜적에서 포박당한 송제는 꿇어앉히려는 적장에게 “내 목은 자를 수 있을지언정 내 무릎을 굽힐 수는 없다” 하고 호령하며 항거하다 마침내 목숨을 잃었다. 왜적도 그의 기개에 감탄하여 시체를 정중히 매장한 후 ‘조선의사송제지시’라고 쓴 나무 표식을 세웠다고 한다. 그후 정조 연간에 호조참의로 추증되고, 쌍충일열지려라는 정문이 세워졌다.

송덕일은 송제의 조카로 자는 치원, 호는 조은이다. 화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1585년(선조 18) 무과에 장원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훈련첨정으로 임금의 가마를 용만에 호종(扈從)하여 호위장군의 호와 함께 은대를 하사받았다.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 때는 진도군수로 임명되자마자 곧바로 이순신(李舜臣) 막하로 달려가 장선사 겸 주사전부장으로서 명량대첩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참조항목

대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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