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 봉림사지

창원 봉림사지

[ 昌原 鳳林寺址 ]

요약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절터. 1993년 12월 27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창원 봉림사지

창원 봉림사지

지정종목 경상남도 기념물
지정일 1993년 12월 27일
관리단체 봉림사
소재지 경상남도 창원시 의창구 봉림동 165,168,175,176,177
시대 통일신라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사찰
크기 면적 6,978㎡

1993년 12월 27일 경상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통일신라시대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봉림산문(鳳林山門)의 개창지이다. 윗봉림 마을에서 북동쪽 골짜기를 따라 600m 정도 올라간 봉림산 중턱 주머니 모양의 분지에 위치한 봉림사는 894년경 심희(審希)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나, 상세히 전하는 바가 없으며 조선시대에 폐사된 채 그대로 면적 6,978㎡의 절터만 남아 있다.

사찰의 규모나 구조 등에 대하여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사지에는 건물지· 연못지·탑지 등의 흔적이 남아 있으며 경복궁 내에 있는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보물)과 창원 봉림사지 진경대사탑비(보물)는 물론 창원 봉림사지 삼층석탑(경상남도 유형문화재)이 일제강점기 때 이곳 봉림사지에서 반출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봉림사지에 대한 역사상 문헌의 실마리는, 이곳에 있던 봉림사 진경대사보월능공탑비의 비문 내용에서 찾을 수 있다. 이에 의하면 심희스님은 868년에 혜목산 고달사에 주석하고 있던 원감(圓鑒) 현욱(玄昱)에게 법맥을 전수받고, 19세 이후로 명산과 절경을 탐방하였으며, 34∼44세 때에는 송계(松溪)와 설악산 등지에서 참선하였다고 한다.

이후 난리를 피하여 명주(溟州)의 산사에서 머물다 김해의 서쪽에 복림(福林)이 있다는 말을 듣고 내려왔다고 한다. 김해 진례(進禮)에 온 심희는 이곳 호족인 김율희의 도움으로 옛터를 보수하고 봉림사를 일으켰다. 비문에 의하면 봉림사지의 전신은 한국 불교가 처음 전해진 가야불교의 터전이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도 있다.

봉림사지의 주산(主山)은 봉림산이고, 조산(朝山)은 창원의 천주산(天柱山, 640m)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봉림사지는 주산 외에도 진산(鎭山)으로 자리매김될 배후의 산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정병산(精兵山)이다. 진산인 정병산은 기세가 강성하고 남성적이며, 진산의 맥이 흘러나온 주산 봉림산은 온화하고 모성적이다. 따라서 정병산은 숫봉황 봉(鳳)이고, 봉림산은 암봉황 황(凰)이라고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