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감천

효감천

[ 孝感泉 ]

요약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에 있는 조선시대의 샘. 1980년 3월 8일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효감천

효감천

지정종목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
지정일 1980년 3월 8일
소재지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 산73번지
시대 조선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주거생활 / 주거건축 / 주거시설
크기 가로 137cm, 세로 129cm, 높이 17cm

1980년 3월 8일 전북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1473년(성종 4) 이 고장의 효자 오준(吳浚:1444-1494)의 효성에 하늘이 감동하여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어려서부터 효자로 이름이 높던 오준은 아버지가 오랜 병환으로 욕창을 앓자 입으로 상처를 빨아내고, 변을 맛보아 병세를 살피었으며, 손가락을 잘라 아버지의 입에 피를 넣어주고, 자신의 허벅지살을 베어 먹이는 등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온갖 정성을 다해 아버지를 간병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는 무덤 앞에 움막을 짓고 정성을 다해 시묘(侍墓)를 하였는데 조석으로 제수(祭水)를 올리기 위해서 먼곳까지 가서 물을 길었다고 한다. 이러한 그의 효성에 하늘까지 감동하였는지 어느날 갑자기 벼락이 쳐 그의 움막 가까운 곳에 맑은 샘물이 솟게 하였다. 이에 고을 현감이 우물을 만들어 주니 사람들이 이를 효성천(孝誠泉)이라 불렀다.

당시 조정에서는 오준의 효행을 널리 알려 귀감으로 삼기 위해 그에게 통선랑군자감직장(通善郞軍資監直長)의 벼슬을 내렸다. 그가 죽은 후 당시 현감이 이곳을 효감천이라 명하고 1748년(영조 24)에는 효감천 뒤쪽에 사당을 지어 창효사(彰孝祠)라 하였다. 그후 창효사에서 매년 그의 후손들이 제를 올리고 있다.

특히 우물(샘)로서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국내에서 이곳 효감천과 ‘호국룡변어정(護國龍變魚井)’ 또는 ‘삼룡변어정(三龍變魚井)’이라 불리는 경주의 분황사 석정(경북문화재자료) 두 곳 뿐이다.

참조항목

고창군, , , 신림면,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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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동영상

효감천 고창군 외화리에 있는 조선시대 샘물 전라북도 기념물 전북 고창군 신림면 외화리에 있는 조선시대 부터 전해지고 있는 우물(샘)로, 1473년(성종4)에 이 고장의 효자 오준(吳浚)의 효성에 하늘이 감동하여 생긴 샘이라고 전해진다.  어려서 부터 효자였던 오준은 지극정성으로 부친을 돌보던중 돌아가시자 무덤 앞 움막에서 시묘를 하였는데 멀리까지 가서 물을 길어 제수를 올리는 것에 하늘이 감동하여 벼락을 쳐서 움막 근처에 샘물이 솟았다고 한다. 샘은 당시 현감에 의해 효성천(孝誠泉)의 우물이 되었고 효자 오준이 죽은 후에는 벼슬을 내리고 효감천으로 명칭을 변경하고 1784년(영조24)에는 우물 뒤쪽에 사당 "창효사(彰孝祠)"를 지어 효자의 귀감으로 삼았다.  출처: doopedi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