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 봉의산성

춘천 봉의산성

[ 春川 鳳儀山城 ]

요약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소양로1가 봉의산에 있는 산성. 1979년 5월 30일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춘천 봉의산성

춘천 봉의산성

지정종목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
지정일 1979년 5월 30일
관리단체 춘천시
소재지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소양로1가 산1-1번지
시대 고려시대
종류/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성 / 성곽
크기 높이 5∼6m, 길이 1,241m

1979년 5월 30일 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춘천시 북쪽 봉의산 8부 능선에 가파른 지형을 이용하여 규격이 일정하지 않게 다듬은 네모난 돌로 지형에 따라 높이를 조절하며 축성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산성의 석축 둘레가 2,463척, 높이가 10척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실측 결과 성의 길이가 1,241.5m, 높이는 5∼6m 내외였다. 그러나 많이 훼손되어서 현재 남아있는 원래 성벽 부분은 길이 19m, 높이 6m이며 복원 후 길이는 170m이다.

성문과 망루가 모두 훼손되었으며 주춧돌로 보이는 부재들이 노출되어 있고 많은 기와조각이 흩어져 있다. 산성의 축성연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고려사절요》〈권15〉에 고려 1217년(고종 4) 거란족의 침입으로 안찰사 노주한이 이 성에서 전사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다. 《고려사》에는 1253년(고종 40) 몽고족의 4차 침입 때 춘천 주민들이 성에 들어가 항거하였고 몽고병의 포위가 오래되자 식수가 없어 소와 말을 잡아 그 피를 마셨다고 하며 조효립은 처와 함께 불길에 뛰어들어 죽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교주 안찰사 박천기는 결사대를 조직하여 뛰어나가 몽고군이 포위하기 위하여 쌓은 목책을 부수면서 싸우다 전사하였다. 몽고군이 성 밖에 파놓은 웅덩이 때문에 성내의 모든 군졸과 주민은 한 사람도 못나가고 모두 순절하였다. 임진왜란 때는 강원도 조방장(助防將) 원호(元豪)의 활동지였으며 6·25전쟁 당시에도 격전지였다.

적 침입에 대비하여 쌓은 수비성으로 추정되며 규모는 크지 않지만 항전의 흔적이 남아 있다. 지세가 험하여 적을 막기에는 좋으나 식수가 부족하고 성역이 작아 장기전은 감당하기 힘들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유물에 1966년 봉의사 밑의 우물을 파다가 발견된 투구가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참조항목

소양동

역참조항목

근화동, 봉의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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