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절요

고려사절요

[ 高麗史節要 ]

요약 조선 전기 문종 2년 김종서 등이 편찬한 고려시대의 역사서이다.  편년체로 기전체인 《고려사》와 함께 고려시대를 연구하는데 아주 중요한 사료이다. 

고려시대 편년체(編年體) 역사서로서 35권 35책의 활자본이다. 1452년(문종 2) 김종서(金宗瑞) 등이 왕명을 받고 《고려사》를 저본으로 찬수(纂修)하여 춘추관(春秋館)의 이름으로 간행하였다. 현재는 전하지 않지만 당시의 편년체 사서로 세종 때 윤회(尹淮)가 편찬한 《수교고려사(讎校高麗史)》와 권제(權踶)의 《고려사전문(高麗史全文)》을 참조하고, 1451년 완성된 《고려사》의 내용을 축약하여 5개월만에 편찬한 것이다. 비록 《고려사》만큼 내용이 풍부하지는 못하나 거기에 없는 사실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고, 또 《고려사》에 누락된 연대가 밝혀져 있는 것도 있어 고려시대의 역사서로 상호 보완적인 사료적 가치가 있다. 

《고려사절요》는 《고려사》를 편찬한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발간하였기 때문에 편찬 당시 원칙을 정하여 범례로 기록하였다. 국가의 치란흥망(治亂興亡)에 관계된 기사로서 귀감이 될 수 있는 기사, 왕이 직접 참여한 제사, 외국의 사신 관련 기사, 천재지변에 관한 기사, 왕의 수렵활동, 관료의 임명과 파면 관련 내용, 정책에 받아들여진 상소문 등 군주에게 교훈을 주기 위한 내용들은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또한 왕과 왕실 관련 용어들은 직서(直書)를 원칙으로 하였으며, 직접 편찬에 참여한 사람들의 사론(史論)은 기술하지 않았으나 고려시대 사신(史臣)과 이제현(李齊賢) · 정도전(鄭道傳) · 정총(鄭摠) 등의 사론은 모두 108편을 기록하였다.

이 외에도 우왕의 즉위년을 원년 혹은 즉위년이라 하지 않고 간지로 써서 표기하였으며, 창왕이 즉위한 해는 우왕 14년, 창왕이 물러난 해는 공양왕 원년으로 기록하여 창왕의 기년은 아예 기록하지 않았다. 고려 말 폐가입진(廢假立眞)의 논리에 의해 창왕을 폐하고 공양왕을 옹립한 신진사대부들의 주장을 그대로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초판본은 1453년(단종 1) 갑인자(甲寅字)로 출판되었는데, 이 때 발간된 책의 완질(完帙)이 일본 나고야[名古屋]의 호사문고[蓬左文庫]에 있으며, 서울대학교의 규장각에는 그 일부인 24책이 낙질(落帙)본으로 소장되어 있다. 이후 중종 때 을해자(乙亥字)로 다시 간행되었는데, 이때의 발간본은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일본에서 소장하고 있는 초판본은 1960년 일본 동양문화연구소(東洋文化硏究所)에서 영인하였고, 이를 1972년 아세아문화사에서 다시 영인 출간하였다. 그리고 을해자로 간행된 규장각 소장본은 1932년 조선사편수회(朝鮮史編修會)에서 영인하였고, 1960년 동국문화사(東國文化社)에서 다시 영인하였으며, 이것을 1968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국역으로 출판하였다. 

카테고리

  • > > >
  • > > >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