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화동

근화동

[ Geunhwa-dong , 槿花洞 ]

요약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에 있는 동.
근화동

근화동

위치 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
면적(㎢) 9.59㎢
문화재 춘천 근화동 당간지주(보물 76), 춘천 봉의산성(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 26), 소양정(강원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1), 춘천 중도 적석총(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 19)
인구(명) 8240명(2008)

면적 9.59㎢, 인구 8240명(2008)이다. 북쪽에 소양강이, 남쪽에 공지천이 감돌아 흘러 북한강에 유입되고, 동쪽에는 춘천의 상징인 봉의산(鳳儀山:301.5m)이 솟아 있으며, 서쪽에 섬으로 된 중도유원지가 있고, 그 남쪽에 의암호가 있어 자연 경관이 아름답다.

춘천군(춘성군) 부내면(춘천면)의 지역으로서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따라 죽전리(竹田里)·수동리(水洞里)를 병합하여 전평리(前坪里)라고 하고, 1931년 춘천면이 춘천읍으로 승격하면서 영락정(永樂町)이라고 하였다가 1946년 일제 잔재 청산의 일환으로 정(町)을 동(洞)으로 고칠 때 근화동으로 개칭하였다. 1993년에 효자동·은의동의 각 일부지역이 편입되었고, 1998년에 호반동을 통합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행정동인 근화동은 법정동인 근화동·소양로 1가·중도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호반동(湖畔洞)은 1939년 춘천읍제 실시에 따라 전평리(前坪里)의 일부 지역을 갈라서 소양통일정목(昭陽通一丁目)이라고 하다가 1946년에 춘천읍이 춘천부로 승격되면서 법정동인 소양로1가(昭陽路一街)로 개칭하였고, 1973년에 춘성군 서면 금산리·현암리의 구역인 중도(中島)가 편입되어 근하1구의 일부 지역과 소양로1가·중도의 3개 구역을 합하여 소(昭)1·근(槿)1·중도동(中島洞)이라는 행정동명을 쓰다가 1974년에 소양강 가가 되므로 호반동이라 개칭하였다가 1998년 근화동에 통합되었다.

중도동(中島洞)은 본래 춘천군(춘성군) 서하일작면(서면)의 지역으로, 소양강과 북한강의 중간에 있는 삼각주이므로 중도(中島)라고 하였는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 때 북쪽 지역은 서면의 금산리(錦山里)에, 남쪽 지역은 현암리(玄岩里)에 편입되었다가 1973년에 춘천시로 편입되면서 중도동(中島洞)이라고 하여 행정동인 근화동1구 지역이 되었다가 1974년 호반동에 편입되었다.

주거에 비해 임야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편이며, 번화가는 서쪽의 근화로와 북쪽의 호반로변에 있다. 서부파출소·역전파출소·사회복지관·상하수도 사업소 등의 공공기관과 하수종말처리장, 하수위생처리장, 화물터미널 등이 있다.

주요 간선도로는 북쪽을 가로지르는 소양강변의 호반로, 서부를 남북으로 관통하는 근화로가 있다. 소양로1가에 있는 봉의산은 춘천시의 진산(鎭山)으로 매우 수려한데, 지형이 봉황이 날아오르는 형상이라고 한다.

문화재로는 '춘천 근화동 당간지주'(보물 76)가 있다. 현재 당간은 없고, 높이 3.52m의 화강암 지주만 남아 있는데, 그 수법으로 보아 고려 중기의 것으로 추정되며, 이 부근의 '갯대배기' 지명도 당간(갯대)에서 유래한다. 봉의산 위에 옛 봉수대와 '춘천 봉의산성'(기념물 26)이 있고, 북쪽 기슭에는 소양정이 있다. 봉의산성은 소양로1가 산1번지에 있는 석성인데, 《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 2,463척, 높이 10척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대부분 헐어져 길이 약 19m, 높이 3m만 남아 있다. 축성 연대는 알 수 없으나 글안·몽고군과 격전을 벌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고려 중기에 쌓은 성으로 추정된다. 소양로1가 봉의산 북쪽 기슭 소양강 가에 있는 정자 소양정(昭陽亭:강원특별자치도 문화재자료 1)은 본래 삼한시대에 창건했다고 전하나 확실하지 않다. 조선 중기에 이요루(二樂樓)라고 하였고, 그 위치도 지금 자리보다 아래쪽인 소양강 가에 있었다고 한다. 1025년(선조 38)에 홍수로 유실되어 1610년(광해군 2)에 부사 유희담이 중건, 1647년(인조 25)에 부사 엄황이 중수하였으나 1773년(정조 1)에 또 다시 홍수로 유실되어 1780년(정조 4)에 부사 이동형이 중건하였으나 6·25 전쟁 때 불에 타서 1966년 옛터 위쪽에 정면 3칸, 측면 2칸, 2층으로 중건하였다.

'비석거리'에는 조선시대 춘천부사 유홍(兪泓)·박장원(朴長遠)·조한영(曺漢英) ·조원기(趙遠期)·오명신(吳命新)·이시원(李是遠)·조병협(趙秉協)· 조최수(趙最壽)·권응기·이범익(李範益)·조종필(趙鍾弼)·이회선·주석면· 김영규(金泳圭)·권직상(權直相)·유헌·김덕함·오정위·엄황의 선정비와 관찰사 유경창(柳慶昌)의 선정비 등이 있다.

중도(中島)의 남쪽 끝 중도동 27번지에 있는 2기의 '춘천 중도 적석총(강원특별자치도 기념물 19)'은 원래 어느 장군의 말을 묻은 '말무덤'이라고 하였으나, 1977년에 국립중앙박물관강원대학교 박물관에서 동쪽 1기를 발굴 조사한 결과 1∼2세기경 춘천 일대의 지배자의 무덤임이 밝혀졌다. 당시 출토된 유물은 짧은 칼·쇠화살촉·못·거멀쇠 등 철기와 목이 짧은 경질의 평저항아리 조각, 물레로 빚어 만든 회청색·회색·갈색 계통의 경질 토기 조각 등 온전한 것 3점을 포함하여 약 1,400점, 청동귀걸이 1점, 뼈 조각들이다. 무덤 형식은 만주·압록강 부근의 고구려 계통의 적석총과 비슷하여, 시체를 목곽에 안치하고 주변을 북한강변의 자갈을 질서있게 쌓아올리고, 사이사이에 진흙을 메워 무너지지 않게 하였다. 발굴 후 지름 14m, 둘레 44m, 높이 5m의 크기로 복원하였고, 미발굴 1기는 둥글게 봉토를 더 올려쌓아 놓았다. BC 2∼3세기 것으로 추정되는 고인돌도 3기가 있는데, 1기는 소양댐 건설로 수몰지구에서, 2기는 중도의 북쪽에서 발굴되어 옮겨 온 것이다.

관광지로는'중도유원지'(국민관광지)가 있다. 중도유원지는 춘천 시내에서 서북쪽 1.5㎞의 의암호 안에 있는 중도(中島)의 세 섬[상중도·하중도·붕어섬(하도)] 지역으로 섬 안 모랫벌 가운데 솟아 있는 고산(孤山) 아래로 호반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관광지이다. 잔디광장·놀이마당·산책로, 수영장-보트장 등 위락·숙박 시설이 마련되어 있고, 특히 수도권 지역의 청소년 야영지로 알려져 있는 관광 명소이다. 우리나라에서 신석기·청동기·초기 철기시대의 유물이 출토된 돌무지무덤·구덩식움집·고인돌 등의 선사시대의 유적도 한눈에 볼 수 있는 유적지이기도 하다.

그 밖에 남쪽 공지천변에 있는 '에티오피아 참전기념비'는 6·25 전쟁 때 참전하여 전사한 에티오피아군(부상 536명, 전사자 112명)의 영혼을 달래기 위하여 1968년에 세운 높이 16m(참전국 16개국 상징)의 탑이다. 북쪽 소양 제2교 입구에 있는 '자유수호의 탑'은 6·25 전쟁 때 연대(7연대)의 병력으로 북한 공산군 2개 사단(제2사단·제12사단)의 병력과 맞서서 3일간 필사적으로 방어함으로써 아군의 전열을 재정비할 수 있게 한 소양강 전투를 기념하여 1975년 6월 25일에 착공하여 세운 기념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