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발레

한국의 발레

8·15광복 이전의 한국의 근대 무용의 대표 무용수는 최승희(崔承喜)와 조택원(趙澤元)이다. 두 사람 모두 일본인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문하에서 공부하였는데 무용가로서의 활동은 최승희가 조택원보다 약간 앞서 있었다. 최승희 무용의 본질에 관해서는 부정적 평가를 가하는 평론가가 많지만 어쨌든 그녀에게 세계의 무대까지도 누비는 절정의 시대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1929년 가을 《어떤 움직임에의 유혹》이라는 작품으로 데뷔했던 조택원은 현역 생활 30년 동안에 수적으로는 불과 40편이라는 과작(寡作)을 보였으나 불모지나 다름없는 한국의 무대를 지키면서 신산(辛酸)을 맛보았다. 8·15광복 전까지 그가 직접 길러낸 무용가는 진수방(陳壽芳) 한 사람뿐이며 최승희의 경우도 김민자(金敏子)·김백봉(金白峰) 등 몇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이시이 바쿠는 회고담에서 “…조택원 무용의 창조력에는 도저히 따르지 못할 그 무엇이 있어 최승희라 할지라도 가볍게 안심할 수는 없는 것이다”라고 증언하였다.

8·15광복을 맞은 직후인 45년 9월 3일 박용호(朴勇虎)·정지수(鄭志樹)·진수방·한동인(韓東人) 등 신진 무용가들이 서울에서 ‘조선무용건설준비위원회’라는 모임을 만들었다. 그러나 이 모임은 이름만으로 그쳤고, 이듬해 6월 전국적인 단일 조직체로서 ‘조선무용예술협회’가 결성되었다(위원장 조택원). 그 중의 한 분과인 발레부(部)는 수석위원에 정지수, 위원에 조익환(曺翊煥)·한동인·진수방 등으로 구성되었다. 8월 5일부터 3일간 국도극장에서 창립공연을 가져 18개 작품을 상연하였으나 성과는 기대 이하였고, 또한 협회 자체도 이렇다 할 행적이 없는 유명무실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무용인들의 집단운동은 침체일로였으나 다만 개인 공연은 활발히 이루어진 편으로 특히 한동인이 이끄는 ‘서울발레단’의 활동은 주목할 만하였다. 《라 실피드》(46),  《민족의 피》(47), 《호두까기 인형》(48), 《꿩》, 《장미의 정(精)》(49), 《인어공주(人魚公主)》(60) 등이 그의 공연 작품이었다. 그러나 마지막의 《인어공주》는 6·25전쟁의 발발로 유산되었다. 전쟁으로 많은 무용인들을 남한에서 잃기도 하였으나 김백봉 같은 유능한 무용인을 월남(越南)하게도 했다.

1·4후퇴 당시 송범계(系)와 ‘현대무용’계 20여 명의 무용인은 ‘한국무용단’을 조직, 국방부 정훈국 소속으로 종군(從軍) 활동을 전개하였는데, 이 한국무용단이 현재 한국 무용계의 실질적인 주류(主流)를 형성하고 있다. 54년 8월, 광복 9주년을 기념하는 무용발표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다. 월남 이후 아직 공식 데뷔를 하지 않았던 김백봉은 이 공연에 불참하였으나, 새로 결성된 '한국무용예술인협회' 소속 회원 전원이 참가한 이 행사는 박진감 있는 공연이었고 신·구 세대의 교체를 반영한다는 측면에서도 한국 무용사상 시사(示唆)하는 바가 매우 컸다. 평론가의 한 사람은 이 공연을 평하여 "국내파인 송범·이인범(李仁凡)·김해송(金海松) 등과 해외파인 임성남(林聖南)·정무연(鄭舞燕) 등의 결전장(決戰場)을 방불케 한다."고 비유했고, 특히 임성남에 대하여 "우리 무용계가 정말 희귀하게 얻은 남성 무용수"라고 격찬하였다. 김백봉은 54년 첫 발표회를 연 데 이어 56년 4월 두 번째 공연회를 가졌는데 이 때의 작품은 무용극 《우리 마을의 이야기》(2막 3장)이었다. 임성남발레단은 56년 6월 한국 최초로 《백조의 호수》(2막)를 공연하였다.

한편, 같은 해 7월에 한국무용예술인협회는 진수방·김백봉·송범·임성남 등의 이탈로 분열된 진통을 겪어야 했는데, 이들이 ‘한국무용협회’(회장 진수방)로 다시 결합한 것은 59년 4월이었다. 이화여대가 제1회 전국 중·고등학교 무용경연대회를 개최한 것은 55년 6월이었고 《동아일보, 東亞日報》 사(社)가 제1회 신인무용발표회를 마련한 것은 59년 10월이었다. 62년에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서울예술고교에 무용과(科)가 신설되었고 66년경부터는 서울의 각 대학에도 무용과가 생겼다. 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해외진출의 길도 모색하기에 이르렀고 그 동안 많은 무용인이 무대를 떠나기도 하였으나, 젊은 예술인들이 한국무용이라는 힘겨운 물줄기 속에 계속 뛰어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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