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양군의 연혁

담양군의 연혁

담양향교

담양향교

대덕면 매산리와 월산면 광암리에서 구석기시대의 뗀석기 등이 발견되었으며, 대전면·무정면을 비롯한 군 전역에 걸쳐 청동기시대의 고인돌군이 분포하여 선사시대부터 담양 지역에 사람이 거주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삼한시대에는 마한(馬韓)에 속하였으며, 삼국시대에 백제에 복속되어 추자혜군(秋子兮郡, 지금의 담양읍·무정면 일대)·율지현(栗支縣, 지금의 금성면 일대)과 굴지현(屈支縣, 지금의 창평면·고서면 일대)이 설치되었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757년(경덕왕 16) 주·군·현의 명칭과 행정체계를 정비하여 추자혜군을 추성군(秋成郡)으로 개편하였고, 율지현은 율원현(栗原縣)으로 고쳐 옥과현(玉菓縣, 지금의 곡성군 옥과면 일대)과 함께 추성군의 영현(領縣)으로 두었으며, 굴지현은 기양현(祈陽縣)으로 개편하여 무주(武州, 지금의 광주광역시)의 영현으로 두었다.

고려가 개국한 뒤, 940년(태조 23) 기양현이 창평현(昌平縣)으로, 율원현은 원율현(原栗縣)으로 개편되어 추성군과 함께 무주의 영현으로 편제되었으며, 창평현은 명평현(鳴平縣)이라고도 불렀다. 995년(성종 14) 추성군은 담주(潭州)로 개칭되어 도단련사(都團鍊使)가 파견되었다가 1018년(현종 9) 전국이 4도호부 8목(牧) 중심으로 재편되면서 도단련사가 폐지되고 지금의 지명인 담양군(潭陽郡)으로 개편되어 나주목(羅州牧)의 속군(屬郡)이 되었으며, 창평현과 원율현은 나주목의 속현(屬縣)으로 편제되었다. 1172년(명종 2) 담양군에 감무(監務)가 파견되어 지방관이 다스리는 주현(主縣)이 되었으며, 1237년(고종 24) 원율현은 '백적의 난'을 일으킨 이연년(李延年)의 본향이라 하여 폐현되었다. 원율현은 이후 복구되었으며, 1391년(공양왕 3) 담양군의 감무가 원율현을 겸임하였다. 특수행정구역인 향소부곡으로는 담양군에 정석부곡(貞石部曲, 지금의 무정면 정석리), 창평현에 갑향(甲鄕, 지금의 대전면 갑향리)·장평부곡(長平部曲, 지금의 수북면 일부)을 두었다.

조선이 개국한 뒤, 1395년(태조 4) 국사(國師) 조구(祖丘)의 본향이라 하여 담양군의 지방관이 감무에서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되었고, 1399년(정종 1)에는 정종의 비 정안왕후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담양부(潭陽府)로 승격되었다. 1409년(태종 9) 원율현과 정석부곡은 담양군의 직촌(直村)이 되고 갑향과 장평부곡은 창평현의 직촌이 되었다. 1413년(태종 13) 8도제(道制)가 시행되면서 담양부는 담양도호부(潭陽都護府)가 되어 창평현과 함께 전라도 장흥도호부(長興都護府)에 소속되었으며, 세조 때 지방군사조직인 진관(鎭管) 체제가 확립되어 담양도호부와 창평현은 전라도 7개 거진(巨鎭)의 하나인 나주진관(羅州鎭管)에 소속되었다. 창평현은 1474년(성종) 고을 사람이 현령을 능욕한 일이 벌어져 폐현되어 광주에 편입되었다가 1478년(성종 9)에 복구되었으며, 담양도호부는 1728년(영조 4) 역적 박미구(朴美龜)의 출생지라 하여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771년(영조 47)에 도호부로 복구되는 등 읍호(邑號)의 승강을 겪었으나 조선 후기까지 유지되었다.

조선 후기에 각읍에서 편찬한 읍지(邑誌)를 모아 엮은 《여지도서(輿地圖書)》에 따르면, 담양도호부는 15면(갈마곡면·고지산면·기곡면·답곡면·대곡면·동변면·마입곡면·목산면·무이동면·산막곡면·서변면·용천동면·우치면·정석면·천동면)을 관할하였고, 창평현은 10면(현내면·갑향면·내남면·동면·동서면·북면·서면·외남면·장남면·장북면)을 관할하였다. 1895년(고종 32) 8도제가 폐지되어 전국이 23부(府)로 개편되면서 담양도호부·창평현은 각각 담양군·창평군이 되어 남원부에 편제되었으며, 이듬해 23부제가 폐지되고 전국이 13도로 재편되어 담양군과 창평군은 전라남도에 소속되었다. 1906년(광무 10) 월경지(越境地) 정리에 따라 견아상입지(犬牙相入地)인 창평면의 갑향면이 장성군에 이관되었고, 1908년(융희 2)에는 폐지된 옥과군의 6개 면과 담양군의 가면·대면·덕면 등이 창평군에 편입되었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창평군 대부분(군내면·가면·고현내면·대면·덕면·내남면·외남면·동서면·북면·서면·장남면·장북면)과 장성군의 갑향면, 광주군의 갈전면·대치면이 담양군에 병합되어 13면(담양면·고서면·구암면·금성면·남면·대덕면·대전면·무면·수북면·용면·월산면·정면·창평면)으로 편제되었으며, 창평군의 옛 옥과군 지역 6개 면(옥산면·겸면·수면·입면·지면·화면)은 곡성군에 병합되었다. 1918년 무면과 정면이 무정면으로 통합되고 구암면이 봉산면으로 개칭되었으며, 1943년 담양면이 담양읍으로 승격되어 1읍 11면으로 개편되었다.

8·15광복 후에도 1읍 11면 행정체제가 유지되었으며, 1976년 영산강 유역개발사업의 일환으로 담양호·광주호 건설이 착공되어 용면의 산성리·청흥리 전역과 도림리·산성리·용연리 일부, 남면의 학선리 일부가 수몰되었다. 1983년에는 봉산면의 강쟁리와 무정면의 반룡리·오계리, 금성면의 금월리·삼만리·학동리, 월산면의 가산리·삼다리·운교리가 담양읍에 편입되었다. 이후 2004년 수북면에 수북리가 신설되었고, 2019년 남면이 가사문학면으로 개칭되었다. 2021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1읍(담양읍) 11면(가사문학면·고서면·금성면·대덕면·대전면·무정면·봉산면·수북면·용면·월산면·창평면) 140행정리 318법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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