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천시의 연혁

이천시의 연혁

신둔면 지석리·소정리 등지에서 출토된 여러면석기·찍개 등의 구석기시대 유물, 갈산동·진리동에서 채집된 신석기시대의 어망추, 신둔면 도암리·수하리 등지에 분포하는 청동기시대의 고인돌 등 선사시대에 이천 지역에 사람이 거주하였던 유적 및 유물이 확인된다. 삼한시대에는 마한 연맹체에 속하여 54개 소국 가운데 노람국(怒藍國)과 자리모로국(咨離牟盧國)의 영역이 지금의 이천 지역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시대에는 먼저 백제에 속하였으며, 475년(장수왕 63) 고구려가 남하하여 한강 유역을 차지한 뒤 지금의 이천 지역에 남천현(南川縣) 또는 남매현(南買縣)을 설치하였다. 551년(성왕 29) 백제가 신라와 연합하여 일시적으로 회복하였으나 553년(진흥왕 14) 신라가 백제를 축출하고 한강 유역을 장악하여 신주(新州)를 설치하였으며, 557년(진흥왕 18)에 신주를 폐지하고 북한산주(北漢山州)를 설치하였다. 568년(진흥왕 29)에는 북한산주를 폐지하고 남천주(南川州)를 설치하였으며, 이천 지역에 군사적 거점인 남천정(南川停)을 설치하여 주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후 604년(진평왕 26) 남천주를 폐지하고 한산주(漢山州)를 설치하여 주치(州治)가 이천 지역에서 지금의 광주(廣州)로 옮겨졌다.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뒤, 757년(경덕왕 16) 한산주를 한주(漢州)로 고치고 남천현을 황무현(黃武縣)으로 개칭하였다. 또한 음죽현(陰竹縣)을 개산군(介山郡, 지금의 안성시·용인시의 일부)의 영현(領縣)으로 두었는데, 음죽현은 지금의 설성면·장호원읍·율면 일대에 해당한다.

고려가 개국한 뒤, 936년(태조 19) 황무현이 지금의 지명인 이천군(利川郡)으로 개편되었다. '이천(利川)'이라는 지명의 유래에 관해서는 태조 왕건이 후백제를 정벌하러 가는 길에 지금의 복하천으로 추정되는 하천에 이르렀을 때 홍수로 물이 불어 건너지 못하던 차에 서목(徐穆, 서희의 오촌당숙)의 인도로 무사히 내를 건너서 후백제를 정벌하고 후에 이를 치하하여 이섭대천(利涉大川;큰 내를 건너 이로움을 얻는다)에서 따온 이천이라는 지명을 하사하였다고 전하는데, 이전의 지명인 남천(南川)과 남매(南買)도 모두 하천과 관련이 있다. 1018년(현종 9) 전국 행정구역이 5도양계로 정비되면서 이천 지역은 양광도(楊廣道)에 소속되어 이천군은 광주목(廣州牧)의 속군(屬郡)으로, 음죽현은 충주목(忠州牧)의 속현(屬縣)으로 각각 편제되었다. 1143년(인종 12) 이천군에 지방관으로 감무(監務)가 파견되었고, 1257년(고종 44)에 영창현(永昌縣)으로 개편되었다. 1390년(공양왕 2) 경기 지역이 좌도와 우도로 구분되어 영창현과 음죽현은 경기좌도에 속하였으며, 1392년(공양왕 4) 영창현이 공양왕의 할머니의 고향이라 하여 남천군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이 개국한 뒤, 1394년(태조 2) 남천군이 이천현으로 개편되었으며, 1401년(태종 1) 지방관으로 현감이 파견되었다. 1413년(태종 13) 전국 행정구역이 8도(道)로 정비되면서 음죽현이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이속되었으며, 1444년(세종 26) 이천현이 이천도호부(利川都護府)로 승격되어 부사(府使)가 부임하였다. 1457년(세조 2) 지방 군사조직 체계인 진관제(鎭官制)가 시행되어 이천도호부와 음죽현은 광주진(廣州鎭)에 소속되었다. 1613년(광해군 5) 계축옥사에 연루된 고장이라 하여 이천도호부에서 이천현으로 강등되었다가 1623년(인조 원년)에 도호부로 복구되었으며, 이후로도 여러 차례에 걸쳐 읍호의 승강이 반복되었다. 1895년(고종 32) 8도제가 폐지되고 23부제(府制)로 개편되면서 이천도호부는 이천군, 음죽현은 음죽군이 되어 충주부(忠州府)에 속하였으며, 이듬해에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시행되어 이천군과 음죽군은 경기도에 소속되었다. 대한제국 시기에 이천군은 신면·둔면·백면·사면·부면·발면·초면·월면·가면·모면·대면·호면·마면·장면·읍내면의 15개 면, 음죽군은 군내면·남면·동면·근북면·원북면·서면·하율면·상율면의 8개 면을 관할하였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이천군과 음죽군의 대부분, 충북 음성군 법왕면·두의면의 일부가 이천군으로 합쳐져 11개 면으로 편제되었다. 1930년 수여선(水麗線)이 협궤열차로 개통되어 근대적 철도 교통이 시작되었으며, 1938년 읍내면이 이천읍으로 승격된 데 이어 1941년에는 청미면이 장호원읍으로 승격되어 2읍 9면 행정체제로 재편되었다.

8·15광복 후에 한동안 기존의 행정구역이 유지되다가 1966년 대월면에 초지출장소가 설치되었으며, 1989년 부발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3읍 8면이 되었다. 1996년 이천군이 도농복합시로 승격되면서 이천읍이 폐지되고 창전동·중리동·관고동이 신설되어 2읍 8면 3동 1출장소로 편제되었다가 같은 해에 대월면의 초지출장소는 폐지되고 단월리·장록리·대포리·고담리 등 4개 리가 중리동에 편입되었다. 2003년 창전동에서 증포동이 분리되어 지금의 행정구역 체제가 갖추어졌으며, 2010에는 공예 및 민속예술 분야의 유네스코 창의도시로 지정되었다.

2018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2읍(장호원읍·부발읍) 8면(신둔면·백사면·호법면·마장면·대월면·모가면·설성면·율면) 4행정동(관고동·중리동·증포동·창전동) 15법정동(갈산동·고담동·관고동·단월동·대포동·사음동·송정동·안흥동·율현동·장록동·중리동·증일동·증포동·진리동·창전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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