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시의 연혁

시흥시의 연혁

계수동·도창동·매화동 등지에서 채집된 여러면석기·찍개 등의 구석기시대 유물, 시흥 오이도 유적(사적 441)에서 발견된 신석기시대의 조개무지(패총)와 빗살무늬토기, 능곡동·목감동 등지의 청동기시대 집터와 계수동·조남동 등지의 고인돌(지석묘) 등 선사시대의 유적 및 유물이 확인된다. 삼한시대에는 마한에, 삼국시대 초기에는 백제에 속하였다. 475년(장수왕 63) 고구려가 한강 유역을 점령하고 한산군(漢山郡)을 설치하여 지금의 시흥 지역에 매소홀현(買召忽縣)과 장항구현(獐項口縣)을 두었는데, 장항구현은 고사야홀차현(古斯也忽次縣)이라고도 한다. 553년(진흥왕 14)에는 신라가 한강 유역을 차지하고 신주(新州)를 설치하였으며, 이후 신주는 북한산주(北漢山州)·남천주(南川州)·한산주(漢山州)를 거쳐 757년(경덕왕 16)에 한주(漢州)로 개편되었다. 한주에 속한 매소홀현은 소성현(邵城縣)으로 개편되어 곡양현(穀壤縣)·공암현(孔巖縣)과 함께 율진군(栗津郡, 지금의 과천시)의 영현(領縣)이 되었고, 장항구현은 장구군(獐口郡)으로 개편되었다.

고려가 개국한 뒤, 940년(태조 23) 장구군이 안산군(安山郡)으로 개칭되었으며, 991년(성종 10) 금주(衿州, 옛 곡양현)의 별호로 지금의 지명인 시흥(始興)이 처음으로 명명되었다. 시흥 지역은 995년(성종 14) 10도제(十道制)가 실시되어 관내도(關內道)에 속하였다가 1018년(현종 9)에 전국이 5도양계(五道兩界)로 재편되면서 소성현은 양광도(楊廣道)에 속한 수주(樹州, 지금의 부천)의 속현(屬縣)으로, 안산군은 안산현으로 개편되어 수주(水州, 지금의 수원)의 속현으로 편제되었다. 이후 소성현은 왕후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숙종 때 경원군(慶源郡)으로, 인종 때 인주(仁州)로 승격되었으며, 1390년(공양왕 2)에는 경원부(慶源府)로 승격되었다. 안산현은 문종이 태어난 곳이라 하여 1308년(충렬왕 34)에 안산군으로 승격되었다.

조선이 개국한 뒤, 경원부는 인주로 강등되었다가 1413년(태종 13) 전국 행정구역이 8도로 정비되면서 경기도에 속한 인천군(仁川郡)으로 개편되었고, 금주는 금천현(衿川縣)으로 개편되었다. 1459년(세조 5) 인천군은 세조의 왕비인 정희왕후의 외향(外鄕)이라 하여 도호부로 승격된 뒤 숙종 때 반역자의 고향이라 하여 현으로 강등되었다가 도호부로 환원되었다. 1795년(정조 19) 금천현은 시흥현(始興縣)으로 개칭되었으며, 1797년(정조 21) 수원부(水原府)에 예속되었다. 1895년(고종 32) 8도제가 폐지되고 전국 행정구역이 23부(府)로 재편되면서 시흥현은 군으로 승격되어 인천군·안산군과 함께 인천부(仁川府)에 편제되었다가 이듬해에 23부제가 폐지되고 13도제가 시행되어 다시 경기도에 편제되었다. 조선시대의 시흥군은 시흥동을 중심으로 하는 지금의 서울 금천구 일대에 해당하며, 인천군에 속하였던 신현면·황등천면·전반면의 3개 면과 안산군에 속하였던 초산면·마유면 전역 그리고 잉화면·대월면의 일부 지역이 지금의 시흥시에 해당한다.

일제강점기인 1914년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시흥군·안산군·과천군의 19개 면이 시흥군으로 통폐합되었다. 이때 시흥군의 군내면·동면이 동면으로, 시흥군의 서면·남면이 서면으로, 시흥군의 상북면·하북면과 과천군의 하북면이 북면으로, 과천군의 상서면·하서면이 서이면으로, 과천군의 주암리를 제외한 동면과 상북면이 신동면으로, 과천군의 동면 주암리와 군내면이 과천면으로, 안산군의 군내면·인화면·초산면이 수암면으로, 안산군의 대월멸·마유면·와리면이 군자면으로 각각 개편되어 종전의 행정구역을 유지한 과천군의 남면과 함께 9개 면으로 편제되었다. 1917년 북면의 영등포리·당산리·양평리가 분리되어 영등포면이 신설되었고, 1931년 영등포면이 읍으로 승격되었다. 1936년에는 영등포읍과 북면의 일부 및 동면의 상도리가 경성부(지금의 서울)에 편입되었으며, 북면의 나머지 지역인 도림리·번대방리 일부와 구로리가 동면에 편입되어 8개 면으로 재편되었다. 1941년에는 서이면이 안양면으로 개편되었다.

8·15광복 후, 1948년 동면의 구로리·도림리·번대방리가 서울 영등포구에 편입되었고, 1949년 안양면이 읍으로 승격되어 1읍 7면 체제로 개편되었다. 1963년에는 동면·신동면이 서울 영등포구에, 동면의 안양리와 서면의 박달리가 안양읍에 각각 편입되었으며, 화성군의 일왕면 일부가 의왕면으로 개칭되어 시흥군에 편입되었다. 1973년 안양읍이 안양시로 승격되어 시흥군에서 분리되고 부천군의 소래면이 시흥군에 편입되어 7개 면이 되었고, 1979년 서면과 남면이 각각 소하읍과 군포읍으로 승격된 데 이어 1980년 의왕면과 소래면이 각각 의왕읍과 소래읍으로 승격되었으며, 1981년에는 광명출장소와 소하읍이 광명시로 승격되어 3읍 3면 체제로 재편되었다. 1983년 화성군 반월면의 월암리·초평리가 의왕읍에 편입되었으며, 1986년에는 과천면이 과천시로 승격되고 군자면·수암면의 일부가 화성군 반월면의 일부와 합쳐져 안산시가 신설되어 시흥군에서 분리됨으로써 3읍 2면 체제로 축소되었다.

1989년 의왕읍과 군포읍이 각각 의왕시와 군포시로 승격되고 시흥군의 나머지 지역인 소래읍·수암면·군자면이 시흥시로 승격되어 9행정동(대야동·신천동·신관동·은행동·매화동·안산동·목감동·거모동·정왕동) 33법정동으로 편제되었다. 1991년 중림출장소와 연성출장소가 설치되어 각각 중림동과 연성동으로 승격되면서 11행정동으로 확대되었고, 1992년 신관동·중림동이 각각 신현동·과림동으로 개칭되었다. 1994년에는 거모동이 군자동으로 개칭되었으며, 6년여에 걸친 공사 끝에 시화방조제가 완공되었다. 1995년 안산동이 안산시에 편입되어 10개 행정동으로 축소되고 무지동이 무지내동으로 개칭되었으며, 1999년 정왕동이 정왕1동과 정왕2동으로 분동되었다. 2002년에는 정왕1~2동이 정왕1~4동으로 분동되었고, 2003년 정왕1동이 정왕본동과 정왕1동으로 분동되었다. 2010년 연성동이 연성동과 능곡동으로, 2014년 연성동이 연성동과 장곡동으로, 군자동이 군자동과 월곶동으로 각각 분동되었으며, 2018년에는 배곧신도시가 조성된 정왕4동이 배곧동과 정왕4동으로 분동되어 지금의 18행정동 체제가 갖추어졌다.

2018년을 기준하여 행정구역은 18행정동(대야동·신천동·신현동·은행동·매화동·목감동·군자동·정왕본동·정왕1~4동·배곧동·과림동·연성동·능곡동·월곶동·장곡동) 30법정동으로 이루어져 있다. 행정동인 대야동이 법정동인 대야동·계수동을, 신현동이 법정동인 방산동·포동·미산동을, 은행동이 법정동인 은행동·안현동을, 매화동이 법정동인 도창동·매화동·금이동을, 목감동이 법정동인 물왕동·신현동·조남동·논곡동·목감동을, 군자동이 법정동인 거모동과 군자동 일부를, 정왕본동이 법정동인 죽율동과 정왕동 일부를, 정왕1~4동과 배곧동이 각각 법정동인 정왕동 일부를, 과림동이 법정동인 무지내동·과림동을, 연성동이 법정동인 하중동·하상동과 광석동·장현동 일부를, 능곡동이 법정동인 화정동·능곡동과 광석동·군자동 일부를, 장곡동이 법정동인 장곡동과 장현동 일부를 각각 관할하며, 신천동·월곶동은 행정동과 법정동이 일치한다.

카테고리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