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어연구회

조선어연구회

[ 朝鮮語硏究會 ]

요약 조선어학회의 전신으로 국어를 연구하고 보급·선전할 목적으로 조직된 학술단체.
구분 학술단체
설립일 1921년 12월 03일
설립목적 국어의 연구와 보급
주요활동/업무 한글의 보급과 선전

선구적 한글학자인 주시경(周時經)의 영향을 받은 임경재(任璟宰), 최두선(崔斗善), 이규방(李奎昉), 권덕규(權悳奎), 장지영(張志映), 신명균(申明均), 이상춘(李常春), 김윤경(金允經), 이승규(李昇圭) 등 15, 16명이 1921년 12월 3일 휘문의숙에서 국어의 정확한 법리(法理)를 연구할 목적으로 조직하였다.

간사장은 임경재, 간사는 장지영·최두선이었다. 역사상 최초의 국어연구학회로 학문연구뿐 아니라 주시경의 학문과 정신을 이어 말과 글을 통해 민족정신을 고취하고자 노력하였다. 이 단체는 1908년 8월 31일 주시경·김정진 등을 중심으로 우리 말과 글의 연구·통일·발전을 목표로 조직된 국어연구학회를 모체로 하여 탄생하였다.
  
국어연구학회는 1911년 9월 3일 '배달말·글모음'으로 이름을 바꾸었고, 1913년 3월 23일 '한글모'로 개칭하였다가 1921년 조선어연구회로 변경·조직되었다. 1931년 1월 10일에는 조선어학회로 이름을 고쳤다가 1949년 9월 25일 이후 한글학회로 정해져 오늘에 이른다.

1926년, 음력 9월 29일을 가갸날로 정하였는데 지금의 한글날에 해당한다. 1927년 2월부터는 기관지 《한글》을 간행하여 한글의 보급과 선전에 힘썼으나 재정난과 일제의 탄압으로 1928년 10월 제9호를 내고 휴간하였다가 1932년 속간되어 오늘에 이른다. 1931년부터 한글강습을 시작해 민족의식 고취에 크게 이바지하였으며, 1933년 10월 29일 한글날 기념식에서 한글맞춤법통일안을 발표하였다.

1936년 표준말의 정리와 체계를 세워 사정(査定)한 조선어 표준말 모음을 발표하였고, 1940년에는 외래어 표기법을 발표하여 혼란된 표기 현상을 통일하였다. 1942년 10월 일제는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을 일으켜 회원 33명을 반일(反日) 독립운동 혐의로 검거하여 8·15광복 때까지 학회활동이 완전히 중단되었다. 8·15광복 후 조선어학회는 '한글학회'로 이름을 고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역참조항목

계명구락부, 신현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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