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노프왕조와 표트르대제

로마노프왕조와 표트르대제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페트로파블로프스크 요새

폴란드의 침입으로 모스크바 대공국이 무너지고 국민군과 젬스키 소보르(zemskii sobor)라는 국민회의체에 의해 새로운 왕으로 옹립된 인물은 이반 4세의 조카인 17세의 미카엘 로마노프였으며, 이때부터 로마노프 왕조가 시작된다. 국민군과 의회의 지지속에서 1613년에 출발한 로마노프왕조는 모스크바 대공국 시절에 형성된 짜리즘  혹은 쯔아리즘(tsarism)으로 불리우는 전제군주 체제로 서서히 복귀하였으며, 1905년의 입헌군주제로 왕조를 유지하다가 1917년 소비에트정권에 의해 멸망하였다. 미카엘의 즉위 10년 뒤에는 왕조가 안정되면서 회의체의 대의기구의 역할이 약화되고 이후의 왕들은 전제권이 강화하면서 폴란드에 의해 점령당했던 영토를 회복하거나 영토를 확장하기 시작하였다.
 
로마노프 왕조의 4대 왕(짜르)인 표트르(피터) 대제(재위 1689~1725)는 대대적인 영토확장 정책을 실시하였다. 처음에는 대대적인 조선사업을 일으키고 크리미아 반도쪽으로 남진정책을 폈으나 성공적이지 못하였고, 이후에 북진정책을 실시하여 스웨덴을 굴복시키고 발틱연안으로 나아가 서구로 나가는 수로를 확보하였다. 그는 다시 서쪽으로 영토를 계속 확장해 나갔다. 그 결과 표트르 대제는 현재의 러시아 영토 대부분을 지배하는 최초의 러시아 황제가 되었다. 그리고 1703년 네바강 하구 부근에 상트페테르부르크(후에 레닌그라드로 바꾼 후 최근에 다시 원래의 지명으로 복귀)를 건설한 뒤, 1713년 제국의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옮겼다.

한편, 표트르 대제는 정치적·경제적·문화적 개혁을 단행하면서 유럽과 본격 교류하기 시작하였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가 외부세계로 진출하는 창구역할을 하였으며, 이곳을 통해 무역이 성행하였다. 또한 이 무렵부터 우랄산맥 일대에 철강과 군수공업시설이 들어서기 시작하였다. 이외에도 해군의 창설과 군의 근대화 및 행정조직개혁 등이 표트르 대제 때 이루어졌다. 그의 대외적인 개혁정책의 핵심은 서구화정책이었다. 대내적으로 1721년 러시아 정교의 교구를 폐지하면서 신성종교의회로 대체함으로서 교회에 대한 국가의 지배를 공고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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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포의 황제

대포의 황제 러시아 모스크바 크렘린. 12사도사원 동남쪽에 있는 대포로서 안드레이 초호프가 1586년에 만들었다. 길이 5.34m, 지름 890mm, 무게 40t으로 사격이 불가능한 대포이다. 출처: cor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