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터

포스터

[ poster ]

요약 시각(視覺)디자인의 기본형식으로서, 일정한 지면(紙面) 위에 효과적 표현을 통해 강한 인상으로 원하는 내용을 전하는 대중전달매체(大衆傳達媒體).
1908년 런던 올림픽경기대회

1908년 런던 올림픽경기대회

주제는 간략한 문안과 효과적인 그림에 의해 조형적으로 표현되며, 건축물의 벽면 및 특설 게시판 등에 일정 기간 붙여진다.

포스터의 기원은 고대 이집트에서 도망친 노예를 체포하려는 포고문이 그 효시이다. 이후 그것은 메소포타미아의 부조간판(릴리프), 그리스의 적판 아쿠소누, 로마의 타베라 등 인쇄과정을 거치지 않은 원시적 제작수법에 의한 전기적(前期的) 포스터의 형태로 발전하였다. 그 후 인쇄술의 발단인 목판인쇄에 의한 최초의 포스터 중의 하나가 1480년경 영국의 W.캑스턴에 의해 제작되었고, 종교주의시대에는 교권(敎權)에 의한 종교적 계급의 포고나 교령(敎令)으로 발전된 형식을 보였다.

이후 르네상스를 거쳐 16세기를 통한 상업의 흥성과 함께 활판인쇄의 제품 포스터가 출현, 17∼18세기에 걸쳐 번성하였고, 프랑스에서는 포스터에 대한 법령이 생겨났다. 그러나 포스터가 광고매체로서 근대적 기능을 갖추게 된 것은 18세기의 산업혁명 및 이와 더불어 인쇄기술이 발달한 19세기 이후이다. 1800년 독일의 A.제네펠더에 의해 개발된 석판인쇄술로 색채복사가 가능하게 되었고, 영국에서는 인쇄산업의 혁신으로 활판술 ·다색인쇄술(多色印刷術)이 크게 발달하였다.

66년 파리에서는 근대 포스터의 아버지로 일컬어지는 J.셰레가 자신의 공방(工房)에서 석판인쇄 포스터를 찍기 시작했고, 로트레크, 보나드 등 당대 일류 화가들이 포스터 제작에 참여, 파리 시민들을 매혹시켰다. 이들 포스터의 주제는 주로 카바레 ·서커스 등의 광고와 상품 ·서적광고 등으로 대담한 색채표현, 뛰어난 데생, 일본판화의 영향에 기인한 단순하고 신선한 구도 등으로 ‘포스터의 황금시대’를 맞이하였다.

한편, 영국에서도 파리 못지않은 포스터 디자인의 개화기를 맞아 베거스타프 형제, D.하디, 비어즐리 등의 작가들이 활약하였으며, 이들 역시 대중 벽화로서의 포스터로 각광을 받았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포스터는 바우하우스의 영향 아래 레터링 ·레이아웃 등의 근대화로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하였다.

특히 근대 포스터가 선전매체로서의 구실을 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 때였다. 모병(募兵) ·방첩 등의 포스터는 그 위력과 중요성이 사회의 큰 관심사가 되었고 전후 상업선전분야에 널리 이용되었다. 포스터가 사회적으로 인식 ·평가되면서 그 제작은 종래 화가의 부업 성격에서 벗어나 전문 디자이너의 손으로 넘어갔다.

프랑스의 카상드로, 사비냐크 등은 ‘핸드 일러스트레이션’ 위주의 유머러스한 표현으로 각광을 받았고, 러시아 태생의 리시츠키에 의한 포트그램기법은 포스터의 분위기를 일신하였다. 1935년 스위스의 H.매터가 제작한 관광국(觀光局)의 시리즈 포스터는 급속도로 발달한 사진술을 디자인과 조형적으로 결합시킨 걸작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급격히 발달한 TV ·라디오 등 전파매체로 인하여 포스터의 대중전달 기능이 상대적으로 많이 약화된 듯이 보이지만, 현대 공간에 맞는 시트 포스터(sheet poster)나 트랜스페어런시 포스터(transparency poster), 슈퍼 그래픽적(的) 포스터의 출현 등으로 새로운 활로를 개척해 나가고 있다.

이러한 표현기법은 스위스나 영국의 지하철 등에서 그 효과를 충분히 발휘하였는데, 영국 지하철의 포스터는 프랭크 픽이 행정책임을 맡으면서 적극적으로 정책화한 결과, 지하의 미술전람회 같은 화려한 공간을 만들게 되었고, 동시에 많은 정보를 제공하는 역할도 하였다.

한편, 60년대 중반의 학생운동과 더불어 대두한 언더그라운드 그래픽 등 분위기 위주의 장식적 포스터들은 예술성의 제고(提高)라는 명제와 함께 주목되었다. 대표적 포스터작가로서는 스위스의 M.브루크만, 프랑스의 J.폴롱, 미국의 M.글레이저, P.맥스 및 일본의 가메쿠라 유사쿠[龜倉雄策]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