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업디자인

상업디자인

[ commercial design , 商業─ ]

요약 상품 ·기업 정보를 주로 시지각(視知覺)을 통해 소비대중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조형표현(造形表現).

개관

신문 ·잡지 ·포스터 ·라디오 ·TV 등 광고매체를 통해 이루어진다. 상업디자인은 조형에 대한 시대적 정신과 기술 또는 그 활동범위의 변천에 따라 여러 가지로 호칭되어왔다.

한국에서 근대적인 의미의 상업디자인이 처음으로 대중과 접하게 된 8 ·15광복 이후부터 1960년대 초까지는 주로 ‘도안(圖案)’이라는 이름 아래 피상적인 개념으로 받아들여졌으며, 그 활동범위 또한 상품의 포장이나 인쇄물 ·출판물과 일부 광고물 등 극히 초보적이고 단편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후 차차 상업적인 목적을 위한 미술이라 하여 상업미술 ·상업디자인 등으로 불리기 시작하였다.

또한 오늘날에는 인쇄기술에 의한 복제효과(複製效果)의 매체가 중심을 이루기 때문에 그래픽 디자인이라고도 부른다. 그래픽 디자인은 상업디자인의 범위 안에서도 평면적인 분야, 즉 포스터 ·신문 ·잡지의 광고디자인, 포장 ·캘린더의 디자인 등을 일컫는다. 최근에는 상업적인 목적뿐만 아니라 공공목적(公共目的)을 위한 정보전달 기능의 비중이 높아지면서 보다 넓은 의미로 시각디자인(비주얼 디자인)이라고도 일컫게 되었다.

상업디자인의 태동

상업디자인의 연원(淵源)은 멀리 선사시대의 알타미라나 라스코 등 동굴벽화에서부터 찾아볼 수 있다. 또한 로마 시대에는 가축이나 노예에게 표지(標識:mark)하여 그 소유권을 나타냈으며, 중세의 유럽 상인들은 자신의 상품에 고유의 표지를 하여 품질을 보장받고자 하였다. 15세기에 들어와 J.구텐베르크에 의한 금속활자 및 활판인쇄술의 발명은 근대적이고도 획기적인 상업디자인의 도래(到來)를 알리는 신호였다. 18세기에는 영국에서 발달한 원색 석판인쇄술에 힘입어 프랑스의 J.셰레, T.로트레크 등이 색채 포스터를 제작, 상업디자인의 황금시대를 이루었다. 이 시대의 순수미술가들이 포스터 제작에 다투어 참여했으며, 그 중에서도 보나르, 앤소르, 부일라드 등은 유명한 포스터 제작자였다.

이와 같은 고전적인 양식에서 벗어나 오늘날의 상업디자인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된 것은 영국에서 일어난 산업혁명이었다. 그것은 기계화에 의한 생산방법의 혁명일 뿐만 아니라, 상품의 대량생산 ·대량판매 ·대량소비 시대와 격렬한 광고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예고였다. 1919년에 시작된 독일의 바우하우스 조형운동의 영향으로 상업디자인은 마침내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게 되었다. 그 결과로 색채와 형태에 의한 전달성(傳達性)의 조형공간이 창안되는가 하면, 미술과 산업 ·상업간의 합리적인 제휴방법이 모색 ·채택되었다.

상업디자인의 현재와 미래

현대의 상업디자인이 진면목을 드러낸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오늘날의 치열한 국제경쟁시대로 돌입하면서부터이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적절한 상품정보를 어떻게 효과적으로 소비대중에게 전달하는가 하는 문제가 산업계의 급선무로 등장하였다. 여기에서 상업디자인이 그 관건이 된 것은 당연한 귀결이었다. 이제까지의 주요 관심사였던 제품 자체의 질적인 향상이나 상품의 외형 ·포장 ·광고 등을 통한 단편적인 디자인 활동에서, 대중이 접하는 이와 같은 모든 요건이 통합됨으로써 하나의 강력한 기업 이미지를 창출하고 그것이 개개의 상품 이미지에 연동(連動)하여 누적상승(累積上昇)의 효과를 가져오는 디자인 이미지의 종합화계획이 대두되었다.

이렇듯 새로운 디자인 계획을 경영전략으로서의 기업 이미지 통합전략(corporate identity program:CIP)이라 일컫는다. 그것은 기업의 여러 인상을 일관된 시각적 조형 디자인을 통해 생산제품, 서비스의 특징, 장점뿐만 아니라 기업의 경영이념, 미래상 등을 집약적으로 알리고자 하는 기업 스스로의 신원표시인 셈이다. 각 기업들은 어떤 형태로든지 기업 이미지를 소비대중에게 전달하고자 생산제품이나 포장은 물론, 광고활동, 기업의 건물, 자동차, 사원의 유니폼 서식류(書式類), 문구류 등에 이르기까지 디자인을 계획하고 있다.

1950년대 후반, 미국의 IBM과 웨스팅 하우스 등이 초보적인 기업 이미지의 통일계획에 착안한 후, 1963년 미국의 이스턴항공사가 CIP를 채택하였다. 1965년에는 영국의 브리티시 레일 컴퍼니가 CIP를 확립하여 기업운영에 크게 성공하였다. 한국의 경우,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OB맥주의 CIP 도입을 필두로 신세계 ·제일모직 ·서린호텔 CIP 등 비교적 대중과 교류가 밀접한 회사들이 이 ‘디자인 코디네이션 시스템’을 도입 ·실천하였고, 많은 기업들이 이를 새로이 도입함으로써 더욱 확산되었다.
 
한국의 상업디자인

한국에서 근대적 의미의 상업디자인이 출발한 것은 8 ·15광복 이후부터라 할 수 있다. 이 때는 ‘도안’이라는 이름 아래 일제강점기시대, 또는 광복 후 미술대학에서 응용미술 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일부 화가들에 의해 주로 상품의 겉포장이나 서적 ·광고물 등 아주 단편적인 범위 내에서 작업이 이루어졌다.

한국 그래픽 디자인계 (界)의 원로 한홍택(韓弘澤) 등에 의해 산업미술가협회 등이 발족되었으며, 아직 수공업적 규모를 벗어나지 못한 산업구조 속에서 각종 포스터 ·광고 ·포장 ·인쇄물 등이 명멸(明滅)하였다. 그러나 1962년 정부가 수출산업입국을 지향하면서 한국의 상업디자인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되었다. 1966년 처음으로 정부가 주최하는 상공미전(현재의 산업디자인전)이 개최되었고, 이 때부터 이 공모전에 의해 그래픽 디자이너의 자격이 공식적으로 결정되었다.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상업디자인은 더욱 활기를 띠게 되어 이제까지 상업미술, 또는 응용미술로 불리던 것이 그래픽 디자인, 또는 시각디자인으로 전문화되었고 각 기업들도 그래픽 디자인의 중요성을 인식하게 되자 광고대행회사들이 창설되기 시작하였다. 1979년에는 한국디자인학회 ·한국현대디자인학회 등이 창립되어 활발한 학문적 연구와 작품활동이 이루어져 산업사회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시각디자인의 분야에서도 점차 그 내용을 구성하는 시각정보의 분석과 과학적 연구가 진행되어 컴퓨터에 의한 정보량의 측정과 도형인식의 연구 등 디자인 메소드(design method)의 과학화를 촉진하였다. 이와 동시에 시각 디자인은 본래의 사명인 시각전달기능을 더욱 중시하게 되어 단순한 상업디자인이나 시각디자인에서 전달디자인에로의 변용(變容)을 보였다. 이에 따라 실험심리학 ·정보이론 ·대뇌생리학 ·기호논리학 ·언어이론 ·경영학 ·인간공학 등 여러 학문 분야의 성과가 필요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연관분야와의 협력에 따라 종합기술로서의 디자인으로 발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