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실

태실

[ 胎室 ]

요약 옛날 왕가(王家)에 출산이 있을 때 그 출생아의 태(胎)를 봉안하고 표석을 세운 곳.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태봉(胎封)이라고도 한다. 조선시대에는 태실도감(胎室都監)을 임시로 설치하여 이 일을 맡게 하였다.

출산한 후, 태는 깨끗이 씻은 후 항아리에 봉안하고 기름종이와 파란 명주로 봉했다. 붉은색 끈으로 밀봉한 다음, 항아리를 큰항아리에 담았다. 이렇게 두 개의 항아리에 태를 보관하였다. 항아리에 보관된 태는 태봉지을 선정하여 묻는다. 이것은 안태(安胎)라고 한다. 태봉지가 정해지면 궁에서는 태봉출(胎奉出) 의식을 행하고, 안태사 행렬이 태봉지로 출발했다. 안태 행렬이 태봉지에 도착하면 그곳의 지방관들은 태를 봉안하는 의식이 끝날 때까지 지원하였다.

태실은 대개 대석(臺石)·전석(磚石)·우상석(湡裳石)·개첨석(蓋檐石) 등으로 만들었다. 왕세자의 태실은 석실을 만들고 비석과 금표를 세웠다가 국왕으로 즉위하면 태실을 가봉(加封)하였다. 국왕 태실은 8명의 수호군사를 두어 관리하였으며 태실 주변은 금표로 접근을 제한하였다.

태봉(胎峰)·태산(胎山)·태봉지(胎封址) 등의 명칭이 있는 지명은 이곳에 태실이 있었다는 의미이다.